어느 웹소설 작가가 <웹소설 시장 현실 기성 관점>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마주쳤다. 글의 요지는 웹소설 작가 대부분이 비참하게 산다는 것이다.
댓글을 보면 동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끼리끼리 논다, 네 주변만 힘든 거다. 별 공감 안 간다. 다른 직장은 안 힘든 것 같냐. (지망생 아니고) 기성 작가 맞냐 등등.
나는 별 것 아닌 사람이지만, 연 1억 작가라고 제목에 어그로 끈 입장에서 주제넘게 말해보자면 이 사람은 기성이 맞을 듯하다. 그리고 글의 내용 대부분도 공감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내가 항상 하는 말과 비슷하다.
1. 웬만하면 겸업하거나, 탈출구를 만들어라.
2. 작가로의 월수익 500과 직장인 월급 500은 절대로 같지 않다. (월수익에서 1/2, 더욱 보수적으로는 1/3을 월급(기본급)으로 생각하는 편이 안심된다……라고 기성 작가들은 말한다.)
웹소설의 현실에 관련해 힘듦을 토로하는 여러 글이 있다. 특히 남성향 후기는 디씨에, 여성향 후기는 더쿠에 포진한 듯하다. 대부분의 내용이 동감된다.
웹소설 작가 중 분명히 많은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내 경력은 이제 10년이 머지않았고, 그렇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연차다. 그러다 보니 굉장한 히트를 친 작품도 내 지인인 경우가 부지기수고, 작가끼리 모이면"연에 얼마 버는데 사업자 낼까", "세무사 공유해 줘라", "이 세무사는 웹소설 작가들이 많이 하던데 별로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고, 내 생각에 웹소설 작가는 어둠의 비율이 다른 직업에 비해 압도적이다. 전업 웹소설 작가 중 20%만이 또래 직장인만큼의 생활을 영유 가능한 것 같다.
우선, 그 20% 안에는 어떻게 진입할 수 있을까. 웹소설을 쓴다는 행위는 결국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의미다. 창작에는 사람의 에고가 반드시 들어간다. 그것을 얼마나 포기할 수 있느냐, 그것이 잘 팔리는 웹소설의 핵심이지 않을까(겸업이나 취미 작가는 에고 살려도 된다. 나도 가끔 에고 살려서 취향껏 쓰는 작품이 있다).
잘 팔리는 웹소설을 쓰는 사람은 시장에 자신을 맞추고, 작가 개인의 취향을 덜어내고, 연구하고, 인풋 하고, 고민한다. 간혹 야생에서 흑화한 지망생이 출현해서 "요새 웹소설은 다 똑같다. 내 소설이 최고인데 저딴 쓰레기들만 잘 팔리는구나. 문피아 투베 1등은 맨날 주작으로 가나, 개노잼. 제목도 거기서 거기. ㅉㅉ"라고 말하지만 그 모든 상업 웹소설은 작가의 성공적 지능의 결과물이다. 재밌기 때문에 클리셰로 자리 잡고, 헌터물이나 선결혼후연애 등으로 명명되며 작품 간의 유사점을 갖는다. 그것을 멸시하기 전에, 오히려 본인이 틀린 쪽이 아닐지 고민함이 낫지는 않을까.
어쨌거나 그렇게 노력해서 상위 20% 수익의 전업 웹소설 작가가 된다면 인생이 편할까?
나 포함 내 주변의 유명한 웹소설 작가를 봐도 대부분이 삶을 힘들어한다. 원래 창작하는 사람이 우울한 경향이 크긴 하다지만.
기록의 쓸모, 이승희.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그렇지만 외적인 요소로도 분명히 힘든 면이 있다.
직장인, 혹은 기술을 가진 프리랜서 대부분은 결국 경력을 인정받는다. 아무리 망해도 자기 입에 풀칠할 정도로는 보장을 받는다(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요).
그러나 모든 웹소설 작가의 미래는, 빌딩 살 돈 벌어놓은 몇 명 정도를 제외하면 불확실하다. 이번 연도에 대박을 쳐도 다음 작품을 꼬라박을 수 있다. 전작 재밌게 읽었으니 다음 작품이 이상해도 전편 사주겠다는 독자는 없으니까. 그렇다. 경력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렇기 때문인지 억 소리 나는 웹소설 작가들에게서 오히려 공포가 심화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나도.
20대에서 전업 웹소설 작가의 수명이 끝난다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만약 내가 40대일 때 웹소설 작가로의 수명이 끝났는데, 다른 할 줄 아는 일이 없다면…… 다시 <웹소설 시장 현실 기성 관점> 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은 여생이 비참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항상 수강생에게 말한다. 탈출구를 만들어 놓으라고. 본인의 웹소설 작가로의 수명이 끊기지 않을지언정, 웹소설 시장이 끝날 수도 있으니까 겸업을 하든지 도망칠 장소를 만들라고.
내가 월요일마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소규모 수업. 시작 자체는 이상한 곳에 사기당한 지망생이 불쌍하고 사기꾼에게 화가 나서였다. 그래서 2년이 지난 지금도 수강료를 1달 19만 원으로 여전히 저렴히 책정하는데, 반면에 난 매주 월요일을 통째로 수업 준비에 바치니 글 쓰는 것보다 당연히 적게 벌린다. 그런데 수업을 하다가 보니, 인세에 비해 유의미한 수입은 아니지만 고정 수익이 깔리니 심적으로 편안한 효과가 생긴다. 멘탈 터질 때 정신과 약 먹는 것보다도 도움이 되는 듯(진짜로).
물론 내 '진짜 탈출구'는 따로 있다. 나는 사범대학을 나왔고, 그에 따른 정교사 2급 자격증이 있다. 여차해서 내 소설적 생명이 끝장나면 중고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단 의미다. 또 있다. 지금은 다른 전문직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저축도, 주식도, 내 허용 가능한 범위에서 추가 이익 실현을 한다.
하물며 입지를 아주 조금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나도 여러 탈출구를 만드는데, 이제 막 지망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배수의 진을 치겠다며 학교를 자퇴하고 웹소설에 올인을 하는 행위가 과연 괜찮을까 의문이 든다.
굳이 대학을 웹소설 관련으로 진학할 필요도 없다. 물론 좋은 분들이 가르치고 있지만, 내가 아는 유명 웹소설 작가들은 웹소설 학과는커녕 국문과와도 연이 없으시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웹소설 학과보다는 다른 학과를 나오며 웹소설로 사용할만한 소재의 전문성도 쌓고, 탈출구도 만들고, 겸업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루트가 너무 괜찮다고 생각한다.
만약 본인이 웹소설 작가가 하고 싶다면, 축하한다. 본인이 원하는 일을 발견했으니까.
그렇지만 배수의 진을 치고 다른 능력 없이 전업 웹소설 작가로 올인하고 싶다면, 걱정된다. 100명 중 1명만이 살아남을 길이니까. 백세 인생이다. 실패한 나머지 99명은 남은 생을 어떻게 할까. 본인이 정말 1%에 들까. 창작은 생각과 고뇌의 연속이고, 그것은 결국 지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본인의 지능이 작가 중 1%에 드는가? 그렇게 확신하기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겐) 어렵지 않은가.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했나? 웹소설 작가는 2개의 직업 중 하나로 선택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느낀다. 본인의 리듬에 맞춰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도 있고, 다른 직업 때문에 바쁘면 원고를 줄일 수도 있고,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다작할 수도 있고. 휴가를 떠나 하와이에서도 작업 가능하고, 배낭여행 중에도 폰만 있으면 되고.
웹소설 작가 짱짱.
웹소설 작가. 월요일마다 소규모 웹소설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blog.naver.com/class_webnovel). 협업, 강의, 심사 등 glegoo999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