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면 비울수록 더 채워진다.
나는 말로인해 상처받는 날이면,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찾아나선다.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을 찾고나서도 내가 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초라해지는 게 싫어서, 위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곤 했다. 하지만책 하나를 읽고나서 나의 생각이 뒤집혔다.
바로 김유나 작가님의 '말그릇'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읽던 순간에도 나는 상처를 안고서 위로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책을 추천해 준 사람은, 매번 상처받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내게 말했다. 나는 말을 담는 방식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이미 그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방법을 몰라서 그런 거니까 이 책 한번 읽어보라며 내 손에 쥐어줬던 책이 바로 '말그릇'이었다. 그의 말대로,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아, 내 잘못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고... 두 번째 읽었을 때는 나를 마주할 용기를 가지게 됐다. 세 번째에서는 관계의 시작은 나로부터 시작되며,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말과 상대방의 말을 담는 나의 말그릇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렇게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방법을 책을 통해 배우게 됐다. 그 이후부터 나는 종이책을 사서 읽고 또 읽으며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키우고 있다.
세상에는 만나기 싫어도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고집스럽게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식의 비난을 하는 사람 또는 내 생각이 맞고 넌 틀렸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사람들. 이는 오히려 가까운 관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다 너를 생각하니까 하는 말이야", "나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라며 일방적으로 뾰족한 말을 내뱉는다. 특히 부부, 친구,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자주 드러나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관계 속에서 생긴 말의 상처야말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정작 그 말을 뱉은 사람은 금세 잊어버리고 돌아서지만, 그 말을 듣고 소화시키지 못한 사람에게는 깊은 뿌리를 내려 오래도록 흔적을 남긴다. 편하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정과 말을 다듬어야 할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필요성을 느꼈다면 가까운 사이에 더욱 조심하고 상대방의 감정과 입장을 고려해서 말했을 테니 말이다.
이처럼 만나기 싫어도 만나거나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나는 말로 인한 상처를 어떻게 극복할지는 진짜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처를 받고 이겨내며 스스로의 말그릇을 다듬어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 보면 상처도 꼭 나쁘게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 바라보는 시선, 느끼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라 여러 가지의 방식이 있을 거다. 나 같은 경우에는 상대방에게서 받은 상처의 말을 일기장에 쓴다. 그리고 그때의 상황 분위기 상세하게 적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이 감정을 잘 다독여 흘려보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생각과 감정이 분리한 다음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쉽게 답이 내려진다. 그럼 나는 편안하게 두 발을 뻗고 잠에 든다.
나는 '말'은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형체가 보이지 않아 제대로 만질 수 없기에, 나조차도 그저 흘려보내는 존재재가 되어 버렸던 거니까. 이 생각은 말그릇의 한 부분을 읽으면서 더 강하게 자리 잡게 됐다. 그래서 말에 대한 글을 쓸 때 '뾰족한, 다듬지 않은, 둥그스름하게'라고 모양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말그릇에서 작가님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씨를 뿌려 열매를 맺기도 하고,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히기도 한다. 말을 당신과 함께 자라고 당신의 아이들에게로 이어진다.'라고 말씀하셨다. 말에도 모양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작가님의 문장이 확신을 줬고 그래서 더 위로가 됐다. 그래서 작가님의 경험과 생각을 믿고, 책에 쓰인 대로 하나씩 실천해 보았다. 그렇게 나만의 속도로 차근차근 나아가는 사이, 어느덧 3년이 흘렀다. 하지만, 난 아직도 가끔 내 감정에 지배 당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해버리거나 상대방의 말을 내 고집대로 해석하고 힘들어할 때도 있다. 그래도 이 문장을 만나기 전에 나와는 다르다고 확신할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자질을 찾아 단단하게 나만의 말그릇을 만들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에 휘둘려 길을 잃었다거나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상처를 받아 힘들어하고 있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당신의 말그릇에 담긴 말들을 하나씩 꺼내어 차근차근 정리한 다음,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잘 다듬어서 다시 담아보자.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어떤 말에도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당신도 이미 그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방법을 몰라서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