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마스크
출근길 보도를 걸을 때마다 내 발걸음은 묘하게 무겁다. 아침 공기가 얼굴을 스치지만, 마음 속에서는 오늘 마주할 사람들의 얼굴과 말투가 이미 스쳐간다. 고객의 불만, 상사의 요구, 동료의 미묘한 시선까지, 하루를 견디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감정의 마스크가 하나둘 떠오른다.
보도를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살핀다. 사람들의 발걸음, 자동차 소리, 멀리서 들리는 새 소리까지, 사소한 풍경들이 마음을 잠시 덮는다. 하지만 마음속 긴장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보도 위 가로등 아래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다. 그 모습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웃음을 준비하는 표정, 예의를 준비하는 눈빛, 이 얼굴은 나를 닮아지만 동시에 하루를 버티기 위해 만들어진 '가면'이기도 하다.
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보며, 그들 역시 자신만의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고 있음을 떠올린다. 각자의 하루가 이미 시작됐고, 누군가는 오늘도 마음을 숨기며 연기를 하고 있을것이다.
출근길은 모든 사람들이 묘하게 닮아 있다. 똑같은 신호등 앞에서 함께 멈추고, 다시 같은 불빛에 발을 내딛는다. 옆 사람의 표정을 굳어 읽지 않아도,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도 힘 내야지.' 라는 말이 속으로 흘러가는 듯하고, '벌써 지친다'는 탄식도 공기 중에 섞여 있는 것 같다.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가지만, 묵묵히 같은 리듬을 공유한다. 웃음보다는 무표정이 더 자연스러운 시간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객를 살짝 돌리면서도, 같은 피곤함과 같은 무거움을 나누고 있다. 말없이 함께 걷는 이 행렬 속에서, 마치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가 도시를 따라 움직이는 듯하다.
감정노동이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특정 직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고객을 상대하는 사람뿐 아니라, 사무실에서 동료와 상사 사이에 서 있는 사람들, 심지어는 가정 안에서 역활을 지켜내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한다.
아침의 얼굴이 유난히 무겁게 보이는 이유는 단순한 수면 부족 때문이 아닐 것이다. 사실은 하루 종일 써야 할 여러개의 가면을 미리 떠올리는 순간, 이미 긴장이 시작된다. 출근길의 발걸음이 느려지는것은, 사실 그날 하루의 감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아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한번 보도 위에서 스치는 얼굴들을 떠올려 본다. 각자의 삶은 다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비슷한 가면을 쓰고 있다. 너무 지쳐 보이지 않으면서도, 과하게 밝지 않은 얼굴.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 얼굴. 사회가 요구하는 '표준' 표정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리고 이젠 보도 옆 건물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다시 본다. 매일 마주하지만, 여전히 낯설다. 웃는 듯하지만 웃지 않은 얼굴,담담한 듯하지만 사실은 긴장으로 얼룩진 얼굴. 그 표정은 나를 닮았으나 동시에 내가 아닌 듯하다. ‘어느 얼굴이 진짜일까.’ 사람 앞에서 웃는 내가 진짜인지, 혼자 있을 때 지쳐 있는 내가 진짜인지. 그 질문은 여전히 길 위에 남겨져 있다.
마스크 뒤에서 나는 속으로 마음을 조율한다. 오늘 마주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친절함과 예의를 유지할 힘을 모은다. 첫 직장에서 겪었던 실수와 상사의 질책이 떠오른다. 그때 울고 싶었지만, 웃음을 억지로 지으며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그 기억은 아직도 마음 한편을 짓누르지만, 동시에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매일 자신을 단련하며 목소리 톤과 표정을 관리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척하면서도 내 마음을 지키는 법을 배워나간다. 그리고 흔들릴 때는 오늘 아침 보도 위 사람들의 발걸음을 기억해낸다. 그들과 함께 나도 오늘을 살아낼 것이다.
우리가 쓰는 마스크는 단순한 거짓이 아니다. 삶을 버티기 위해 꼭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둔 진심을 잊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하다. 출근길마다 비치는 낯선 얼굴도 결국은 ‘나’를 지켜내기 위한 작은 몸부림일 것이다. 또한 마스크는 우리를 보호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괜찮다'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억지로 웃을 때, 마음 한쪽에서는 작은 균열이 생겨나지만, 티 나지 않게 보호를 해준다.
이직도 출근길에 세워진 건물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어색하고 매일 마주하지만 여전히 낯설다. 웃는 듯하지만 웃지 않은 얼굴, 담담한 듯하지만 사실은 긴장으로 얼룩진 얼굴. 그 표정은 나를 닮았으나 동시에 내가 아닌 듯하다. 어느 얼굴이 진짜일까.’ 사람 앞에서 웃는 내가 진짜인지, 혼자 있을 때 지쳐 있는 내가 진짜인지. 그 질문은 여전히 길 위에 남겨져 있다.
우리가 쓰는 마스크는 단순한 거짓이 아니다. 오늘 하루를 그리고 삶을 버티기 위해 꼭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둔 진심을 잊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하다. 출근길마다 비치는 낯선 얼굴도 결국은 ‘나’를 지켜내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니까..
언젠가는 그 마스크조차 필요 없는 시간이 오리라 믿고 싶다. 억지로 그린 웃음 대신, 스스로 흘러나오는 미소를 품은 얼굴로 길 위를 걷는 날.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보도를 따라 걷는다.
어멋! 예약 발행한줄 알았는데, 안됐네요! 이런 실수를 하다니, 기다려주셨을텐데...죄송합니다.
"오늘, 나의 감정을 지켰는가."는 매주 월, 수, 금 연재됩니다!
모두에게 위로가 닿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