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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Park May 12. 2024

039 Netflix의 실험과 포기

Jailbreak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다." (돌궐의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 中에서)


한 고객이 자주 반복적으로 사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해 봐.


MIT 에서 MBA를 할 때 핵심은 '혁신'과 '리더십'이었다.
MIT가 기술 기반의 혁신적 스타트업들을 많이 배출해 내는 학교답게
Innovation과 Enterpreneurship 관련 수업이 많았다.
관련해서 많은 Case Study를 하게 되었는데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걸 깨달았던 건 Netflix Case였다.

Netflix가 지금은 세계 최고의 OTT 서비스가 되었지만 처음엔 아니었다.

Netflix의 Iconic CEO였던 리드 헤이스팅스는 창업자라기보다는 투자자다.

Netflix의 원래 창업자는 마크 랜돌프라는 사람인데 전형적인 몽상가였다.

뭐라도 내 사업을 하고 싶다, 인터넷으로 뭔가를 팔고 싶다.
딱 이 두 가지 생각만으로 계속 사업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맞춤형'에 필이 꽂혀서
맞춤형 샴푸, 맞춤형 야구베트 등 엉뚱한 사업구상을 시작했으나
리드 헤이스팅스의 조언 하나로 방향을 틀었다.

"여러 고객이 이따금씩 한 번만 사는 것 말고
한 고객이 자주 반복적으로 사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해 봐."

맞춤형 샴푸나 치약, 야구베트, 서핑보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비디오테이프가 비교적 크기도 작고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돌려보는 상품이라는 것에 착안을 하게 되었다.

리드 헤이스팅스가 블록버스터에서 '아폴로13' 비디오를 빌렸다가
연체료 $40을 내고 억울한 마음에 Netflix 사업을 구상했다는 탄생신화는
마케팅적으로 사후에 만들어진 스토리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마크 랜돌프가 수만 가지 아이디어를 쏟아 내다 얻어걸린 것이다.
양이 질을 만들어 냈다.

시중에 출시된 926 종의 DVD를 모두 사모으고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비스 개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컴퓨터가 다운되어 버렸다.
주소를 뽑는 스티커도 바닥나고 프린터도 고장 났다. 배송봉투도 다 써버렸다.
이 모든 게 출시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업은 원래 그런 것이란 걸...
사업에서 사전에 계획했던 일을 처리하는 비율은 가득 찬 양동이 속의 물 한 방울 정도였다.
나머지는 순간의 판단과 실행으로 돌파해야 하는 것이었다.
  
Netflix 사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몇 번의 전략적 의사결정이었다.
 
첫 번째 전략은 블록버스터에 대항한 단순한 서비스 차별화였다.
블록버스터가 주로 VHS를 대여할 때 DVD만을 공략하기로 했다.
온라인에서 주문받고 UPS로 배송을 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블록버스터처럼 대여와 판매를 함께 진행했었는데
판매에서만 매달 $10만 매출이 나와서 Netflix의 숨통을 틔여주고 있었다.
아직 DVD가 생소하던 시절이라 대여 사업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Amazon의 Jeff Bezos를 만나 인수 제안을 받았을 때
결국 DVD 판매는 Amazon 같은 공룡과의 출혈경쟁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장기적 생존을 위해 판매 사업을 버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온라인 DVD 대여 서비스'로 고객의 가슴에 단순하게 포지셔닝해야 했다.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 일본 대형 전자회사들을 설득하였고
그들이 DVD 플레이어를 팔 때 'DVD 3장 공짜 대여' 쿠폰을 끼워줄 수 있었다.
가격은 DVD 한 개당 대여를 $4로 책정하여
블록버스터 최신 영화보다는 싸게, 오래된 영화보다는 비싸게 책정하였다.

하지만 그런 전략적 선택들이 잘 못되었음을 금세 알게 되었다.
가장 결정적인 이슈는 이거였다.
고객들은 영화를 그렇게 빌려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영화를 대여하는 건 매우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그들은 금요일 퇴근길에 충동적으로 블록버스터에 들려 눈에 보이는 것 중 영화를 고른다.
주말에 볼 영화를 며칠 전부터 미리 고민하지는 않는다.
주문 후 받기까지 며칠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우편 배송 모델의 치명적인 한계였다.
조그만 스타트업이 고객의 행동 패턴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다 보니 DVD 하나당 회전율도 매우 부족했다.

영화의 판권을 사는데 대략 $200을 내야 했기 때문에

하나의 DVD를 최소 50번 이상 대여해야 산술적으로 라이선스 비용이 커버되는데

실제로는 반복 대여 횟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DVD를 구매할수록 손해는 커져갔다.
쿠폰을 뿌리는 마케팅에도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얼마 버틸 수 없었다.

생존을 위한 첫 번째 전략적 의사결정은 비즈니스 모델 전환이었다.
Netflix는 개당 대여 모델에서 월간 구독 모델로 바꾸었다.
월정액 구독료를 선납하기만 하면 DVD를 무제한으로 대여할 수 있는
"All You Can Eat" 모델이 된 것이다.  
파격적으로 대여 개수와 횟수, 대여 기간에도 모두 제한을 풀어버렸다.   
자연스럽게 연체료라는 개념도 사라졌다.
동시 소장 DVD 개수를 3개로 한정한 것이 유일한 제한이었다.
4번째 DVD를 보고 싶으면 3개 중 하나는 반납을 해야 하는 것이다.
'Unlimited' 마케팅의 파워는 대단했고 고객들은 열광했다.
이제 보고 싶은 영화는 DVD를 미리 빌려 놓기만 하면 언제든 볼 수 있게 되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거실 TV 위에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계속 놓여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모델 전환을 통해

'주문 후 받아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최대 약점을
'보고 싶은 영화를 항시 소장할 수 있다'는 최대 장점으로 전환시켰다.
혜택이 분명해지자 고객은 자발적으로 행동 패턴을 바꾸기 시작했다.
구독료가 들어오니 회사에는 돈이 돌기 시작했다.
미리 주판알을 튕겼다면 할 수 없었던 결정이었을 것이다.
고객 관점에서 먼저 의사결정을 하자  
문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단 문제는 계속 남아 있었다.
여전히 고객들의 선택은 신작 영화에 몰려 있었고
신작들의 판권을 구매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고 있었던 것이다.
수익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했다.  

두 번째 전략적 의사결정은 추천 서비스 추가였다.
Netflix 추천 엔진을 만들어 개인 맞춤형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추천 알고리즘의 기본은 과거 대여했던 영화와의 유사성이었지만  

실제로는 재고가 있어서 현재 대여 가능한 DVD 중심으로 추천을 했다.   
고객이 주문하는 것마다 'Out of Stock'이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고객들의 선택을 기다리기만 하지 않고 추천이라는 게 가능해지자
Netflix는 비용이 높은 신작 DVD 구매를 무한정 늘리는 대신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수작 DVD들을 싼 값에 구해서 추천을 하기 시작했다.
DVD 3개를 동시에 빌릴 수 있었기 때문에
딱 하나만 빌려 볼 때는 선택하지 않았을 법한 영화들까지 고객들은 보기 시작했고
의외로 재미있는 영화를 발견하면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영화를 좋아하는 고객들에게 숨겨진 보물 같은 영화를 소개하는 서비스가 된 것이다.
덕분에 Demand Balancing 효과가 나타났고

전체 대여 중 신작 DVD가 70%, 잘 알려지지 않은 DVD가 30%까지 되었다.

'롱테일' 개념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Netflix는 롱테일 사업을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여기에 더해 아예  Queue 개념을 추가했다.

Queue는 쉽게 말해 고객들의 Wish List였다.

고객들이 다음에 보고 싶은 영화들을 미리 Queue에 입력해 두면

대여했던 3개의 DVD 중 반납을 한 숫자만큼
그 Queue 상위에 있는 영화 DVD를 자동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고객들은 DVD 반납 후 다음 영화를 고르고 신청하는 수고가 필요 없어졌고

Netflix는 고객들의 Queue를 보며 DVD 재고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고객들은 틈만 나면 Netflix Site에 들어가서
다음에 보고 싶은 영화를 Queue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이익으로 움직인다.

혜택이 분명해지자 고객들은 스스로 본인의 정보를 앞다투어 입력했다.

공짜라고 생각했지만 본인의 시간과 정보라는 돈을 기꺼이 지불한 것이다.

고객이 더 많이 입력할수록 Netflix는 고객의 선호도를 더 잘 알 수 있었고
더욱 세분화하여 영화 추천 및 새로운 영화 타이틀 구매에도 활용할 수 있었다.   

고객들은 Netflix 서비스에 점점 Lock-in이 되기 시작했고
경쟁 서비스로 갈아타는 Switching Cost도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이런 고객 만족도의 획기적인 개선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었다.

운영상의 문제였다.

배송이 오래 걸리는 것은 온라인 DVD 대여 모델의 태생적인 숙제였다.


Netflix가 내린 세 번째 전략적 의사결정은 인프라 투자였다.

고객이 더 많이 모이면 모일 수록 배송 문제도 점점 더 커졌다.

DVD 창고가 있던 캘리포니아 산호세 근처의 고객들은
주문 후 하루면 UPS로 DVD를 받아볼 수 있었지만
플로리다에 있는 고객들은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신기한 건 양쪽 지역 고객들의 탈퇴율이 비슷하게 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데이터만 보면 괜히 일을 키울 필요가 없겠구나라는 유혹이 굴뚝같았으나
장기적 관점에서는 반드시 검증을 해봐야 했다.
하지만 그 실험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창고를 지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신 직원들이 새크라멘토까지 매일 대여섯 시간씩 운전을 해서 오가며
그쪽 우체국에 DVD를 직접 가져다주고 고객들이 반납한 DVD를 수거하는 일을 반복했다.
로컬 배송센터 창고를 애써 몸으로 에뮬레이션 한 것이다.
정말 스타트업 다웠다.
몇 달의 실험 결과 새크라멘토 고객들은 익일 배송 서비스에 대해 극도로 만족했고
그들의 입소문으로 새크라멘토 지역의 신규 고객이 급속히 늘어남을 확인했다.
탈퇴율에는 영향이 적었지만 신규 고객 유치에는 결정적이었다.   
실험으로 효과가 검증된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지역 별로 나눠서 익일 배송서비스를 위한 로컬 배송센터 창고들을 짓기 시작했고
시작한 지 6년 만에 미국 전역에 44개까지 늘려 나갔다.
그리고 효율성 개선을 위해 트럭의 배송 루트까지 세밀하게 컨트롤했다.
이렇게 운영 고도화를 통해 서비스 품질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졌고
신규고객들이 유입되면서 Netflix는 OTT의 대표 서비스가 돼 가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서비스가 안착되는가 싶었는데
온라인 스트리밍이라는 파도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수년간 쌓아온 비즈니스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큰 쓰나미였다.


이때 Netflix는 마지막으로 중요한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온라인 스트리밍에 올라타기로 한 것이다.  

1997년에 DVD 대여 사업을 시작한 뒤 10년 만이었다.

VOD(Video On Demand)라고 불리던 스트리밍이 조금씩 늘어나자
Netflix는 어떻게 대응할지 수위를 정해야 했다.  

가장 쉽고 안전한 방법은 전략적으로 VOD 서비스를 밀고 있는
대형 케이블업체들과 협업하여 최소한으로 대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경우 서비스 전면에 케이블업체가 나서게 되기 때문에
브랜드 헤게모니를 빼앗길 게 뻔했다.

Netflix는 과감하게 사내에 스트리밍 사업부를 독립적으로 만들어
케이블업체 및 다른 OTT 서비스와 정면승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DVD 대여 사업과 스트리밍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과정에서

분사를 한다거나, 두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분리 과금을 한다고 발표했다가
고객들의 반발에 부딪쳐 주가가 반토막 나며 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Netflix는 실수를 빠르게 시인하고 결정을 번복했다.
우왕좌왕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객 요구에 무뎌지는 걸 부끄러워했다.
2007년 자체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2012년 Netflix가 직접 제작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Original Contents라는 OTT 업계의 새로운 Game Rule을 만들었고
덕분에 Netflix는 2020년 가입자 2억 명을 돌파하며 OTT의 최강자가 되었다.
2023년 하반기 DVD 배송 서비스는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창업 당시의 핵심 사업을 과감히 버린 것이다.
철학도 중요하고 명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흐름을 파악하고 올라타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수시로 Netflix 신작들을 넘겨보는 습관이 생겼다.
주말에는 찜한 영화 중의 한 편을 돌려 보기도 하고
연휴에는 오래전에 찜했던 드라마 시리즈를 몰아서 보기도 한다.
90년대 후반 산호세에서 인터넷에서 뭔가를 팔고 싶다며 시작했던 작은 아이디어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고객들의 미디어 소비 방법을 바꿔 버렸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큰 깨달음을 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첫 째는 실험의 중요성이다.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서 좋거나 나쁘거나 하지 않다.
그것을 좋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주는 어떤 조건이나 환경이 있을 뿐인데
이는 직접 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마크 랜돌프는 모든 아이디어를 직접 실험하고 검증하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를 보면서 계속 과감하게 전략적 Pivoting을 해나갔다.
실험은 빠를수록 좋다.
가령 Site에 어떤 아이디어를 실험할 때 맞춤법이나 디자인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디어가 좋으면 오타가 나도 고객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나쁘면 아무리 디테일이 멋져도 고객은 외면한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려고 시간을 소모할 게 아니라
더 많은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에 시간을 써야 한다.
 

둘 째는 포기의 중요성이다.

Netflix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계속 버려왔다.
서비스 개시 후 당시 매출의 97%를 차지하던 DVD 판매 사업을 포기했다.    

구독모델을 시작하면서 DVD 개당 대여 모델도 포기했다.
중간엔 생존을 위해 함께 동고동락하던 일부 동료들을 포기해야 했다.
마지막엔 DVD 대여라는 창업 사업모델도 포기하고 스트리밍에만 집중했다.
Netflix 서비스의 궁극적인 목표를
'온라인 DVD 대여' 같은 수단에 두지 않고
'좋은 콘텐츠를 고객에게 소개하는 것'이라는 본질에 두고 나니
본질이 아닌 수단들은 모두 포기할 수 있었다. 

Netflix 역사 상 가장 위대한 포기는 마크 랜돌프의 자신의 사임이었다.
어느 정도 회사가 자리를 잡고 규모가 커지게 되자
자신과 같은 몽상가, 행동가보다는
자신감과 영감이 넘치는 비저너리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리드 헤이스팅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CEO 자리를 포기했다.

내가 낸 아이디어로 내가 일구어 온 회사인데 그만두라니...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크 랜돌프는 그 어려운 포기를 해냈다.

성공을 버리고 인생의 다음 챕터로 넘어갔다.

그 위대한 마지막 포기가 있었기에
Netflix는 지금 이렇게 최고의 OTT 서비스로 존재하는 것일지 모른다.


회사를 많이 알게 될수록 서비스가 좋아진다.
오늘은 Netflix를 좀 봐야겠다.
'삼체'냐 '기생수'냐 그 것이 문제다.


(Netflix Meeting, Powered by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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