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lbreak
"Every question possessed a power that was lost in the answer." (Elie Wiesel)
망했다고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사를 망하게 하는 법'이라는 책이 있었다.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실제 내용은 CIA의 방해공작에 관한 책이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극비문서로 만들어졌던
'손쉬운 방해공작 매뉴얼'이 여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것이데
내용의 유사성과 연관성 때문에
현대적인 조직관리 매뉴얼로 둔갑하여 크게 유행을 했었다.
내용은 그리 파격적이거나 대단하지 않다.
- 모든 것을 Process화 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위한 예외를 허용하지 마라.
- 과거 의사결정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근거를 요구하라.
- 회의록에 사용될 문구와 단어에 대해 실랑이를 벌여라.
- 회의체를 가능한 많이 만들어서 운영하라.
- 연설을 하되 자주, 길게, 개인적인 경험을 장황하게 이야기하라.
- 매사에 서두르지 말고 실패할 가능성을 계속 주의하라고 강조하라.
- 관련성 적은 사안들도 가능한 자주 언급하라.
언뜻 보면 맞는 말도 있고 다소 심하다 싶은 말도 있다.
그게 포인트다.
너무 대 놓고 방해하는 건 금방 티가 나서 소용이 없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은밀하고 사소하게 교란해야 한다.
'회사를 망하게 하는 법'
이런 제목으로 책으로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렇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조직이 망가지니 미리 따져보고 조심하자는 것이다.
뻔한 것인데 굳이 이렇게 거꾸로 말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의외로 이런 역발상의 방식이 먹힌다.
사람의 두뇌라는 것이 그렇게 동작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손실회피' 경향이 있다.
얻을 수 있는 것의 가치보다 잃을 수 있는 것의 가치를 더 크게 느낀다.
금연을 하면 건강하게 십 년을 더 살 수 있습니다 보다
흡연을 하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십 년 먼저 이별해야 합니다가 더 잘 먹힌다.
시험에 통과하면 백만 원 줄게 보다는 보다는
백만 원을 먼저 준 후 시험에 떨어지면 그걸 돌려줘야 해가 더 잘 먹힌다.
똑같은 말을 거꾸로 바꿨을 뿐인데 두뇌가 다르게 반응한다.
질문을 일부러 Manipulation 했다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 중에 그리 한다.
맞다 틀리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새로운 제품, 새로운 서비스 등 신사업 개발을 주로 해오면서
언젠가부터 난 거꾸로 질문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렇게 모든 걸 걸고 준비했지만 처절하게 폭망 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질문을 그렇게 던지는 순간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제품을 망하게 해야 했다.
품질 이슈가 터져서 전량 리콜을 해야 해서.
부품이 갑자기 단종되어서.
예상치 못했던 특허소송에 걸려서.
국가별로 다른 규제 이슈에 대응을 못해서.
고객사가 요구한 인증 획득이 늦어져서.
고객들에게 알릴 마케팅 비용이 모두 소진되어서.
SNS에 악플이 넘쳐나서.
전혀 다른 폼팩터로 시장의 판도가 바뀌어서 등등.
이 상상 리스트에 나왔던 모든 항목들과 그 근본 원인들은
이제 내가 이 제품을 성공시키기 위해 피해나가야 하는 위험이 되었다.
망하지 않기 위해 미리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렇게 대비하는 것은 실제 발생할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와 같겠지만
성공의 간절함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인 것이다.
이런 역발상의 지혜는 단지 사업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떠나갔다. 무엇 때문이었겠는가?"
"부모로서 아이들과의 관계가 망가졌다. 무엇 때문이었겠는가?"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떨어졌다. 무엇 때문이었겠는가?"
마음속에 정말 간절한 무언가가 있다면 거꾸로 질문해 보라.
당장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마음속이 분명해질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포기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부러 맞은 예방주사에 정말 앓아누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가게 하는 방법이 수만가지라 해도
그러니 앞으로는 절대 사랑하지 않겠어라고 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가 실패하는 방법이 수만가지라 해서
아예 그런 시도를 하지 말자고 해서는 안된다.
애당초 더 잘해보자는 것이다.
하나라도 미리 따져보고 대비해서 성공률을 높여보자는 것이다.
손실회피 본능에 무릎 꿇어서는 안 된다.
역발상의 지혜를 활용해야 한다.
실패를 미리 상상하여 성공을 가속할 수 있다.
ps.
오래전에 LG에서 혁신을 프로세스화 시키라는 어려운 미션을 받고
장장 8개월을 오직 그것에만 매달린 적이 있었다.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그렇게 나온 아이디어를 우선순위화 한 후
단계별 진행 경과에 따라 프로세스로 걸러내고...
사람들을 모아 여러 번의 Ideation 세션을 운영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전문 강사를 통해 배운 게 하나 있다.
고정관념을 깨고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방법.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는 두 가지를 기억하세요.
첫 째, 문제와 솔루션을 분리해서 아이디어를 내세요.
문제는 너무 많이 쏟아 낼 수 있지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솔루션 아이디어와 Pair로 아이디어를 내려다보면
수많은 문제는 솔루션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묻히게 됩니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는 솔루션이 마땅치 않은 문제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솔루션이 없더라도 문제를 쏟아내세요.
둘째, 아이디어를 낼 때는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를 떠올리세요.
그리고는 모두 그 친구한테 시킨다는 마음으로 아이디어를 내세요.
여러분이 직접 해결한다는 마음으로 아이디어를 내면
실행이 어려운 것은 무의식중에 두뇌가 알아서 걸러줍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시킨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장해제가 되면서 엉뚱한 아이디어들이 샘솟게 됩니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는 실행이 어려운 것들이 많아요.
아이디어는 원석과도 같아서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닦고 다듬고 깎는 과정에서 보석이 됩니다.
원석을 함부로 흘려보내서는 절대 다이아몬드가 나올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시킨다고 생각하니 정말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실제 여러 세션을 해보니 숫자로 증명이 되었다.
이 또한 역발상이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