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팔 옷을 찾기 급급하다. 더위가 하도 길어 추석이 지나도 옷은 짧았고, 긴 옷일랑 입을 날이 있을까 의심도 했다. 이렇게 갑자기 추워질 거였음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지 선선하다 못해 쌀쌀한 바람에 아이얼굴에는 콧물이 쭈욱 나왔다 들어간다. 비타민C 두 알을 연거푸 먹인다.
중국 최대명절 국경절이다. 7일을 연달아 쉬는 긴 연휴라 국내로 국외로 나가 노는 경쟁에 바쁘다. 평소 그득그득 차던 아파트 주차장은 늦은 밤이 되어도 헐렁헐렁했다. 연휴인데도 맘편히 놀지 못하게 아이의 숙제가 많다. 특히 연휴 기간 동안 뭘 했는지 묻는 숙제가 있는데, 우리 집처럼 특별한 계획이 없는 가정은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극장에 영화라도 보러 가야 한다.
옷장에서 긴팔 옷을 꺼내놓으며 작년엔 뭘 입고 살았나 싶다.
긴 연휴 집에서 놀면서 작년 이맘때는 뭘 했었나 생각해 본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동공이 커졌다. 이걸 잊을 수 있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휴대폰을 열고 내비게이터의 목적지에 양청호수(阳澄湖)를 입력하고 거리와 시간을 급하게 확인한다. 그러면 그렇지. 평소 1시간 반정도의 거리는 3시간 반의 거리로 둔갑해 있었다. 누가 머래도 연휴는 연휴다. 사람들 생각은 거기서 거기로 비슷했다. 실망한 아이의 얼굴에 나는 안 되는 이유만 만들어 댔다. 소파에 주저앉은바람빠진 얼굴에 튀어나온 입은 들어갈 기미가 없었다.
안 가기로 마음먹으나 특별히 할 것도없었다.
그러고보니 안 갈 이유도 없었다.
(아이가 한김 식고나니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떠났다.
10월과 11월에 절정을 이르는 털게 철이 되면 상해 근처의 이 작은 소도시는 1년 게 농사의 전시장이며 판매장이 되어 들썩들썩하다. 따자시에(大甲蟹)라고 부르는 민물 털게는 상해 지역의 특산물로 그 맛이 녹진하고 구수하여 중국 전역의 미식가들로부터 굉장한 환영을 받는다. 10월은 알이 꽉 찬 암컷을, 11월은 투명한 젤리 같은 내장이 맛있는 수컷이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꽁꽁 묶여 대령한 따자시에의 빛깔이 가을을 닮았다.
꽁꽁 묶여 대령한 따자시에의 빛깔이 가을을 닮았다. 뾰족한 다리 3쌍과 털 달린 앙망스런 집게 1쌍을 360도로 회전하며 위협하는 아우성을 주인장의 카리스마로 몸통옆에 나란히 묶어 둔다. 곧장 찜통으로 향할 게들이 쌓여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꼼짝없이 익어가는 게를 보며 그들의 예정된 출생부터 운명까지를 기억하며 잠시 죄책감을 잊어보았다. 눈앞의 가을 한 접시에 황홀했다. 열기를 피해 조심히 지푸라기를 풀어내고 맨 몸을 드러낸 게의 풍만한 모습에 모두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알을 품느라 자신의 몸뚱어리는 돌보지 못한 암케는 작지만 묵직했다. 그 작은 몸체의 곳곳을 가위로 자르고 꼬챙이로 벌려 한 점 살을 맛보려는 인간의 탐욕이 그 큰 공간을 가득 채웠다. 대목을 맞아 장소는 붐볐지만 의외로 조용했던 그곳에서, 각자의 입은 말하는 기능을 잃은 듯했다. 꼬챙이가 껍데기 사이의 살을 찾아내고 파내어 입에 가져다 넣는 일련의 반복된 동작에 집중하는 눈의 초점들이 또렷했다. 게딱지를 들어내면 드러나는 노랗고 기름진 내장과 알은 1년의 기다림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녹인 버터 같은 식감에 치즈 같은 구수한 내장은 빨간 알을 석류 알처럼 싸고 있었다. 이 빨간 보석의 맛을 굳이 표현하자면 '우리가 아는 그 맛'이다. 그런데도 알은 그 자체로써 가지는 프레스티지가 있다. 혀의 구석구석에 미세한 파편들을 보내어 미로를 자극하는 일에 미각이 잔뜩 흥분한다.
어느새 각자의 마릿수를 끝낸 입술에 노란 내장 기름이 립라인을 벗어나 코 끝까지 침범해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식구의 얼굴이 오랜만인 것처럼 반가웠다.
제철의 즐거움을 찾아 먹으며 삶이 풍성해진다.숫케가 제철인 11월까지 황홀한 미식의 세계가 이어질 예정에 흥분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손끝에 남은 게의 비릿한 흔적이 밤새 나를 끌어안고 떠나지 않았다. 잠잠했던 입맛이 다시 살아난다. 바야흐로계절 리추얼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