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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상작가 해원 Jul 02. 2024

5-1. 두 번째 화살을 쏘지 마라

제5장. 부활, 어둠의 끝은 빛으로 통한다


“야, 현해원! 뭐? ‘토사구팽 兎死狗烹’이라고? 그럼 네가 토끼 잘 잡는 개 정도는 된다는 거야?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야. 너는 개만도 못해 아니 휴지 한 쪼가리만도 못하다고. 왜 그런지 알아?”     


나를 위로한답시고 술잔을 기울이던 동기 한 녀석이 술에 취해 지껄인 말이었다. 평소에는 말 한마디 없이 책만 읽는 그는 술에 취하면 참아두었던 과격한 성격을 드러내곤 했다.     


“야, 죽어가던 미국 회사 살려놨더니 전 비서 새끼가 날름 처먹고, 이제 들어와서 제대로 해외 사업 한번 해보나 했더니 현 비서 새끼가 날름 훔쳐 가고. 그래 그 새끼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라고 치자. 그럼 해원이 너는 뭐냐? 개처럼 끌려 들어왔으면 더는 속지 말아야지. 도대체 어떤 새끼 좋아하라고 그 잘난 사업계획은 만들어 바치냐고? 네 간이랑 쓸개가 무슨 도깨비방망이 만드는 재료라도 되는 줄 아냐? 그러니까 네가 또 당하고 또 당하고 하는 거야. 그 새끼들한테 너는 필요할 때 쓱 뽑아서 코 한번 팽 풀고 버리는 휴지쪼가리란 말이야. 그러니까 해원아, 그 더러운 양심에 기댈 생각하지 말고 그냥 살아. 화살 한 번 맞았으면 됐지,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란 말이다. 내 말이 뭔 말인지 알겠지?”     


두 번째 화살이라는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들고 있던 술잔을 던지듯 내려놓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알 수 없는 기쁨이 저 깊은 내면에서 솟구쳐 올랐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화살 한 번 맞지 않는 사람 없다. 수십, 수백 번의 화살을 맞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 더 크고 아픈 화살을 맞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화살에는 독이 없다. 그저 아플 뿐이다. 정작 독이 든 화살은 내가 나에게 쏘는 화살이다. 정작 내가 쓰러지는 건 밖에서 날아든 화살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면에서 내가 쏜 화살에 의해서다. 만약 그들이 쏜 화살에 맞아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바라는 일일 것이다. 나는 결코 내가 쏜 두 번째 화살에 맞아 쓰러지지 않으리라. 독이 퍼지기 전에 화살을 뽑아 그 화살을 그들을 향해 쏘리라. 그들의 화살 하나에 두 번 쓰러지지 않으리라. 반드시 일어서리라!’     






새해와 함께 경기도의 작은 도시로 발령을 받았다. 이것도 자유라면 자유일 수 있을까? 온몸에 가시가 돋친 나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나의 마음은 호수처럼 잔잔해졌지만 나를 대하는 사람들은 나를 마치 시한폭탄처럼 취급했다. 어쩌면 그들이 옳을지도 모른다. 겉으론 잔잔해 보이는 내 마음속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폭발적인 자유 에너지가 들끓고 있었다.     


새롭게 시작된 영업 현장은 다시 나를 살아나게 했다. 노조 위원장을 지낸 지사장은 나의 처지를 잘 이해해 주었다. 비록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노조 위원장을 지낸 카리스마와 폭넓은 식견으로 우리는 금방 하나가 되었다. 부장 승진에 실패한 나를 배려해 지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영업기획부장으로 임명했다. 미국에 가기 전 내가 보여준 전무후무한 영업실적을 그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사장과 나는 같은 아파트 다른 동 사택에 거주하며 자주 진솔한 얘길 나누곤 했다. 어느 날 거나하게 취해 지사장이 나에게 물었다.     


“현 부장님, 왜 진작 노조에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이건 인사가 아니라 직장 내 차별에 해당합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승진을 시키지 않았다는 게 명백하단 말이죠. 물론, 부장님 성정에 이런 일로 노동부와 법률까지 개입시키시지 않을 거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더는 이렇게 당할 순 없지요. 올해는 제가 절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지사장님, 지금 대표이사랑 사장이 있는 한 승진 안 하겠습니다. 제가 노조에 이야기하지 않는 건 저의 오만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늘 경영자라는 생각으로 회사생활 했습니다. 그리고 동기 중 가장 먼저 사무소장이 됐고요. 지사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사무소장은 노조원에서 자동으로 제외되잖아요. 실지로 미국으로 가면서 노조비 자동이체도 해지가 됐더라고요. 아무튼, 저 인간들 밑에서 다시는 승진 구걸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 자리 천만년 갈 자리 아닙니다. 설령 승진을 시킨다 해도 그 후에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그냥 ‘와신상담 臥薪嘗膽’하며 좋은 세월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미국에 있는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맞이하자 그사이 안면마비와 녹내장 증상이 심해진 아내가 병원 진료 차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2년 전, 간첩 이철진이 미국을 다녀가며 시작된 저주가 아직 풀리지 않은 걸까. 내가 출근한 사이 혼자 병원을 가려고 사택을 나서던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여보, 지금 아파트 앞으로 잠깐 와 줄 수 있어? 혼자 일어나려고 해 봤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 발목을 심하게 삐었나 봐!”     


급하게 차를 몰아 도착한 아파트 현관 앞 계단, 아내의 발목은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나의 힘으로도 어찌해 볼 수 없을 정도로 돌아가 버린 발목, 결국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도착한 다음 으스러진 뼈를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돌려 맞춘 뒤 아내는 고통의 비명을 멈췄다. 잠시 후 엑스레이를 찍어 상태를 확인한 의사의 말에 우리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높은 데서 떨어지셨어요? 아니면 혹시 차바퀴에 발목이 들어갔나요? 골절이 심각합니다. 이걸 ‘삼과 골절’이라고 하는데요. 발목뼈 3개가 모두 조각이 날 정도로 심하게 부러졌습니다. 당장 수술하셔야 합니다. 혹시 골다공증 진단받으신 적 있으세요?”     


딱 한 계단, 살짝 미끄러지며 넘어진 발목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내의 발목은 으스러져 있었다. 코로나로 병원 출입이 제한되던 시절, 수술과 입원 기간 2주를 꼬박 아내와 함께하며 나는 천 번, 만 번을 돌이켜 생각했다.     


‘왜 하늘이 내리는 형벌은 죄지은 자들에게 가지 않는 걸까? 죄가 있다면 나에게 있을진대 왜 사랑하는 가족에게 벌을 내리는가? 하늘 아래 한점 죄 없이 사신 나의 어머니에게는 소뇌위축증이라는 지독한 형벌을,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아내에게는 얼굴이 뒤틀리고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형벌을, 도대체 그 형벌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쁜 짓을 하는 것보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죄가 더 큰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벌을 받을 사람은 나다. 신이시여! 혹시 계신다면 그 벌을 나에게 내리소서, 차라리 나에게 내리소서!!’     


여름이 다 가도록 온전하게 한 걸음조차 떼지 못하는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미국으로 데리고 갔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아내의 부러진 발처럼 무거웠다. 애써 웃으며 나를 보내는 아내의 비틀어진 입과 감기지 않는 눈에 고인 눈물이 나를 붙잡았다. 세 아이와 함께 나란히 놓인 목발이 모두 나의 가슴을 쥐어뜯었지만 나는 돌아서야 했다. 지난해 여름 공항의 이별이 분노였다면 이번의 이별은 슬픔이요, 눈물이었다. 가장으로서의 무능한 죄는 그렇게 온 가족에게 형벌이 되어 돌아왔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누굴 위해 이 발길을 돌리는가?’     






여름이 지나 한 해는 벌써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승진과 동시에 해외사업부를 맡은 서두신 부장은 서둘러 차지한 승진과는 달리 10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사업실적 하나 만들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의 악화로 컨테이너 확보가 힘들어지면서 제품 조달에 문제가 생긴 국내 기업들은 급한 나머지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국내, 외 인맥을 동원해 가장 시급한 회사에 제품을 공급하자 소문은 금세 전국으로 퍼졌다. 서두신이 컨테이너 5개로 1년을 ‘허송세월 虛送歲月’하는 사이 나는 수백 개의 컨테이너를 대가 없이 공급하고 있었다.     


급기야 그해 자회사 인사본부장으로 부임한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앞으로의 사업 방향을 묻는 그에게 나는 가장 먼저 진화식의 교체를 요구했다. 손민수 법인장은 이미 진화식의 농간에 넘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해외사업부에는 경험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자들이 모여 하늘에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이사와 사장이 만든 ‘오합지졸 烏合之卒’ 행진곡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마지못해 진화식의 교체를 위한 주재원 공모가 또 한 번 진행되었고 나는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준비한 카드를 뽑아 들었다. 그동안 지사에서 나를 도와 영업 기획을 담당하던 믿음직한 후배 박유신, 처음엔 해외 근무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였지만 진화식의 행실에 분노하여 정의감을 불태웠다. 최종 면접관이 된 나는 인사본부장인 동기와 함께 박유신을 최종 주재원으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복진타락 福盡墮落’ 하늘을 향해 솟구치던 화살도 힘이 다하면 바닥으로 떨어지듯, 인간이 누리는 그 어떤 복도 결국은 끝나기 마련이다. 진화식에게도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박유신이 진화식의 후임자로 확정된 후 차기 대표이사 인선이 그룹 내 가장 큰 이슈로 떠올랐다. 다시 한번 그룹 대표이사에 도전하는 김주환 사장은 신임 회장의 신뢰를 얻으며 가장 강력한 후보로 약진했고 대표이사의 심복이자 경쟁자인 현재 자회사 사장을 여론에서 압도했다. 김주환 사장이 누구인가. 그 누구보다 나의 억울함을 잘 이해하는 사람 아닌가. 그가 대표이사가 된다면 나에게는 다시 한번 꿈을 펼칠 기회가 오는 것이다. 나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해외사업부의 1년간의 행적에 대해 화를 내며 말했다.     


“야 그런 놈들이 앉아서 회사 다 말아먹는 거 아냐? 일 년간 고작 한 짓이 컨테이너 5개 수입한 일이라고? 그것도 팔아먹은 데가 그룹 내 다른 자회사라면서? 그것도 잘한 짓이라고 기자들 불러서 사진이나 찍고 말이야. 그런 게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정 아냐?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말이야. 어린놈들이 열정적으로 일할 생각은 안 하고 그따위 짓이나 하고 있으니 그룹이 제대로 돌아가겠어? 내가 가만두나 봐라, 이놈들. 못된 놈들 같으니라고!”     






다시 찬 바람은 불고 인사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에게 우호적인 지사장은 모든 힘을 쏟아부어 나를 지지해 주었고, 같이 근무하던 박유신의 미국행은 확정되었다. 그리고 김주환 사장은 차기 대표이사직에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즈음,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진화식이 귀신같이 전화를 걸어왔다. 미국에서의 10년, 아직도 그에겐 모자랐을까?     


“법인장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헤헤!”     




<P.S>


기존 브런치북 <미국 주재원의 비극>의 목차가 30화로 최대분량이 초과되었습니다. 

부득이 <미국 주재원의 비극, 부활>이라는 제목의 브런치북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해당 브런치북으로 마지막 5장 '부활'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 기존 작품은 해당 브런치북 또는 아래 첨부된 링크를 통해 접속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주재원의 비극 1-30화>

https://brunch.co.kr/brunchbook/american-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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