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부활, 어둠의 끝은 빛으로 통한다
“법인장님, 박유신이 제 후임으로 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들어가면 해외사업부에서 의무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법인장님께서 부장님으로 오시면 저랑 또 근무하게 되겠네요. 미국 땅에서 같은 주재원으로 일하는 건 형제의 인연보다 더 깊은 거라고 말씀하신 거 잊지 않으셨죠? 저는 처음부터 법인장님을 큰형님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법인장님, 헤헤!”
“어 그래? 인사야 나 봐야 아는 거지. 너 들여보낸다고 말한 게 벌써 몇 번째냐? 그리고 나도 내 코가 석 자다. 나야말로 언제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사람인데 잘 부탁은 무슨? 아무튼 들어오게 되면 연락해라. 그래도 얼굴은 한 번 봐야지!”
지난해 법인장인 나와 진화식을 동시에 교체한다는 말이 돌았을 때 진화식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원수진 사람이라도 필요할 땐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이익 앞에서는 도무지 부끄럽거나 창피함을 모른다. 자기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 앞에서는 언제든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이용 가치가 없는 사람에겐 과감하게 등을 돌린다. 양심이나 의리 따위는 그의 삶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인 듯하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게 가장 단순하고 쉽게 한평생을 살아가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네 법인장님, 자세한 얘기는 들어가서 말씀드리겠지만 뭐 딱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간절하게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진화식은 아이처럼 몸을 비꼬며 이렇게 질문형으로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나는 그런 말투가 너무 유치하고 싫어 몇 번이고 고치길 원했다. “부탁드려도 될까요?”가 아니라 당당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라고. 하지만 그는 아직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너 또 나한테 뭐 아쉬운 거 있구나?”
“헤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들어가서 열심히 근무하면 2년이나 3년 안에 법인장으로 다시 나올 방법이 있을까요? 앞으로 미국 법인 인사는 법인장님께서 다 하실 거라고 이미 소문이 다 났습니다. 박유신이 제 후임으로 미국에 오는 것도 다 법인장님께서 하신 거라면서요?”
“야! 헛소리하지 마라. 내가 그런 능력 있었으면 이렇게 비참하게 살겠냐? 부정 타는 소리 그만하고 들어오거든 연락해. 끊어!”
진화식의 말은 모든 걸 포기하고 들어올 채비를 하는 것 같았지만 뒤로는 어마어마한 인맥을 동원해 국내 복귀 연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진화식으로 인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수많은 청탁에 골머리를 앓던 인사 차장의 귀띔이 아니었더라면 이번에도 나는 그의 시커먼 속내에 속아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다시금 잔인한 인사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진화식의 부정 탄 전화가 마치 새로운 비극의 도화선이 된 양 김주환 사장의 대표이사 인선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현 대표이사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지금의 자회사 사장이 점점 힘을 얻어가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떡하니 차기 대표이사 자리를 차지하고 만 것이다. 제대로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끝나버린 인사에 김주환 사장만을 믿었던 나는 다시 ‘망연자실 茫然自失’ 무심한 하늘만 바라보았다.
지난여름 휠체어를 탄 아내를 데려다 주기 위해 미국에 갔을 때 대표이사의 측근인 손민수 법인장을 만나 술김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대표이사랑 사장한테 구걸해 승진할 바엔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겠다!”
대표이사의 임기는 끝났지만, 그의 측근 중의 측근인 자회사 사장이 대표이사가 되었다. 나를 승진 순위에서 밀어내 결국 지난해 승진자 명단에 올리지 않았던 바로 그 사람, 컨테이너를 비행기에 실으라고 했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바로 그 사람, 나에게 나이 어린 서두신 부장 밑에 1년을 더 일하라고 해 막말로 대들며 저항했던 바로 그 사람, 그 사람이 대표이사가 되었다. 노조 위원장 출신인 지사장이 나의 승진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상왕이 된 전 대표이사와 나를 경멸하는 새로운 대표이사의 막강한 힘을 당할 수 있겠는가? 나는 모든 걸 포기했다. 마지막 카드로 회사를 그만둘 생각도 있었지만, 코로나가 한창이던 그때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죽은 사람처럼 코로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게 나와 가족을 위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즈음 가뭄에 단비 같은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현 부장님, 노조 위원장입니다. 부장님 승진과 관련해 문제가 많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살펴본 결과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건 말도 안 되는 경영자 측의 횡포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노조가 인사에 개입하는 건 원칙에 어긋나지만, 이유 없는 직장 내 차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하겠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이 인사에 반영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죠. 올해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습니다. 아무튼 힘내세요. 부장님!”
승진 인사를 발표하기 바로 전날 밤 11시, 입사 동기인 그룹 인사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해원아. 너 승진하면 어디로 갈래? 아직 승진 확정은 안 됐지만 말이야, 만약 승진하게 되면 어디로 가는 게 좋을지 물어보는 거야.”
“야, 승진 참 어렵다. 나한테 뭐 선택권이 있기는 한 거냐? 나야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냥 자회사에서 지금 하는 영업이나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해외사업부를 나한테 줄 리는 없을 거고, 아무튼 1년에 한 번 가족들 들어오면 집에서 한 달이라도 같이 지낼 수 있게 서울이나 경기도면 좋겠어.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 아니면 지금 있는 곳도 좋아. 집사람이 여러 가지 문제로 병원을 자주 다녀야 하니까 방학 때만이라도 내가 데리고 다닐 수 있게 좀 해주라. 부탁할게!”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을까? 2016년 말, 사업실적 우수직원 특별 승진에 지원한 이후 장장 5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 승진했지만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2017년 1월 1일 자, 세계에서 가장 먼 사무소인 미국 법인에 법인장으로 발령받은 나는, 5년 후 1월 1일, 승진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 전라도의 땅끝에 있는 사무소 팀장으로 유배발령을 받았다. 그동안의 나의 경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 직원 모두가 가기 싫어하는 실적 최하위 사무소, 자본 잠식의 적자기업을 살려낸 경험이 있는 나에게 또다시 적자에 시달리는 사무소를 구하라는 특명이 내려졌다. 황당한 나머지 나는 웃음에 욕을 섞어 혼잣말을 지껄였다.
“씨X놈! 어디 가고 싶냐고 묻지나 말던가. 그렇게 어려운 사무소라면 잘난 너희들이 가서 살리지 왜 나한테 지랄이야, 지랄이. 허허! 개만도 못한 새끼들. 흐흐흐~~~”
그렇게 나를 지방으로 날린 사이 해외사업부 서두신은 서둘러 자회사를 떠나 그룹 본사로 복귀했다. 맛도 모른 채 날름 처먹어 본 해외사업부에 이렇다 할 먹거리가 없었나 보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드디어 반가운 손님이 돌아왔다. 바로 진화식이었다. 10년 만에 돌아온 고국이 얼마나 낯설었을까. 대부분 직원은 그간의 그의 못된 행적을 간파하고 있었다. 말 붙일 곳 하나 없는 그가 굳이 전라도에 있는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무얼까? 주말을 맞아 서울로 올라간 나는 1년 반 만에 다시 진화식을 만났다. 평소와는 달리 비장한 얼굴을 한 진화식이 나에게 물었다.
“법인장님,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최소한 3년 안에 미국에 법인장으로 갈 가망이 있겠습니까? 법인장님이 도와주신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제가 미국 법인장이 되면 법인장님께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사업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도와드릴 수…”
“야, 10년이다. 10년! 인사에도 형평이라는 게 있지. 10년이나 주재원으로 있었던 사람을 또 법인장으로 보내겠냐?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인사과에서 너 좋게 보는 사람 하나도 없어. 헛꿈 꾸지 말고 조용히 회사나 다녀!”
그것이 진화식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회사로 돌아간 진화식은 그날로 퇴사를 결정했다. 해외사업부를 맡았던 서두신은 1년 만에 서둘러 본사로 도망갔고, 10년간 해외 사업 경험을 쌓고 돌아온 진화식은 출근 하루 만에 미국으로 도망갔다. 당연히 해외사업부는 1년 만에 공중분해 되었고, 업무를 담당하던 애꿎은 직원 두 명만 다른 부서 아래로 편입된 채 서러운 더부살이 신세가 되었다. ‘인사는 만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말도 안 되는 인사는 결국 그들의 어리석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책임지는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쓰레기가 된 해외사업부의 남은 업무를 맡은 담당 부서의 부장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불만을 토로했다.
“아 씨X, 인사가 이게 뭐야? X 같은 놈들이 X 같이 인사를 하니까 아주 X 같은 일만 생기는구먼. 진화식이만 믿고 있다가 아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게 된 꼴이지, 뭐야 이게? 진화식이 그 새끼는 인수인계는커녕 인사도 안 하고 바람처럼 사라졌어. 그런 개새끼한테 속아 10년이나 그 중요한 자리를 맡겼으니 병신들이 따로 없지. 정작 죽어라 고생만 하고 이제는 제대로 일해야 할 현 부장은 저 전라도 땅끝에 처박아 놓고 말이야. 이게 말이나 돼? 아주 이 회사는 망해서 없어져 버려야 해, 씨X!.”
그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언젠가 내가 때를 기다리며 ‘와신상담 臥薪嘗膽’하겠다는 말을 설마 듣기나 한 걸까? 나는 정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 섶에 누워 쓰디쓴 짐승의 쓸개를 씹어먹고 있었으니 말이다. 인간의 목구멍에 들어가기 위해 하루에도 수천의 생명이 도륙되는 살생의 현장에서 나는 일에 대한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채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미국에 있는 정해진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법인장님, 큰일 났습니다. 법인장님 오시자마자 저희에게 원료공급을 두 배로 늘려주었던 R 사의 도널드(Donald) 아시잖습니까? 지금은 저희 원료 70%를 공급하고 있는데요, 그 도널드랑 진화식이 손잡고 새로운 회사를 하나 차렸습니다. 당장 모든 원료공급을 중단하겠답니다. 실지로 원료공급이 중단되면 우리 회사는 바로 문 닫아야 합니다. 어떡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