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부활, 어둠의 끝은 빛으로 통한다
“뭐 진화식이 도널드랑 손잡고 회사를 차렸다고? 그리고 원료공급을 전면 중단한다고? 그런데, 손민수 법인장은 지금 뭐 하고 있어? 내가 진화식이 믿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결국 꼬임에 홀딱 넘어가선, 아휴! 이제 점령군이 된 진화식 나리를 받들어 모시게 됐구먼.”
“아니 진화식이 와서 뭐라고 말 한 줄 아십니까? 정말 기도 안 찹니다.”
“뭐, 진화식이 직접 왔었다고? 뻔뻔스럽게?”
“네~~에! 직접 계약 서류 들고 와서 손 법인장 앞에 사인하라고 들이밀었습니다. 근데 그 계약서 내용이 더 웃깁니다. 우리 보고 자기네 제품만 생산하는 조건으로 원료를 주겠다는 겁니다. 그냥 하청회사를 만들려는 거죠. 근데 더 큰 문제는, 주겠다는 생산비 단가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생산비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왜, 진화식이 생산비 원가라면 이 바닥에선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잖습니까. 노예계약도 이런 노예계약이 없습니다. 이제 당장 공장 문 닫지 않으려면 진화식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산조건은 또 얼마나 까다로운지 모릅니다. 자기가 와서 일일이 검수하기 전에는 제품을 컨테이너에 실을 생각도 하지 마랍니다. 아주 대놓고 갑질을 하시겠다 이거죠. 참 내!”
“정 과장, 잘 됐다. 이번이 오히려 우리한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 한국 본사에 보고해서 진화식과 도널드가 만든 회사 제품이 국내에 유통되지 못하도록 우리 관계사 모두에 협조 문서를 띄우라고 해. 그리고 설령 출혈이 있더라고 가격 면에서 그들에게 뒤져선 절대 안 된다.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너랑 박유신이 함께 다니면서 도널드를 대체할 다른 공급처를 찾는 일이야. 그동안 그렇지 않아도 도널드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어. 우리에게도 다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온 거지.”
나는 나도 몰래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해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론 ‘우리’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릴 때마다 입안 가득 씁쓸한 무언가가 토해져 나오는 듯했다.
“그리고, 지금 미국 법인의 금융 상태라면 현금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거야. 거래대금 일부를 현금으로 선지급하면 중, 소규모 건실한 공급처 몇 군데는 쉽게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이참에 도널드에게 아예 정확하게 우리 뜻을 전달해. 원료 공급 정상적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그동안 우리가 보상 차원에서 맡겼던 트럭운송과 장비수선 계약도 모두 중단하겠다고. 우리를 배신하고 진화식을 선택한 죄가 얼마나 큰 건지 도널드에게 꼭 보여주라고. 이건 그룹과 진화식의 싸움이야. 이것도 못 이긴다면 그건 그룹도 아니야. 미국 법인은 그냥 문 닫고 들어올 각오 해야 돼, 알았어?”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손민수가 땅을 치고 후회하는 사이 정해진과 박유신은 하늘을 훨훨 날았다. 마치 이런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특히 그동안 진화식의 억압에 눌려 죽은 듯 지냈던 정해진은 대를 이은 앙갚음이라도 하듯 모든 인맥을 동원해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했다. 더 재미있는 건 국내 거래처의 반응이었다. 그룹에서 협조 문서가 나가자 대결 구도는 금세 한국 기업과 배신한 미국 기업의 싸움으로 번졌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개중에 친분을 핑계로 진화식을 도와주던 일부 회사도 결국 여론에 못 이겨 손을 들었다. 봄에 시작된 전투는 원료가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인 초여름이 되기도 전에 싱겁게 끝이 났다. 정해진의 통쾌한 압승이었다.
“잠재력은 여름작물과 같다. 비가 오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Potential is like a summer crop. If it don't rain, it don't grow.”라고 한 미국 NBA 농구선수 찰스 오클리(Charles Oakley)의 말처럼 기회가 주어지자 정해진과 박유신은 마치 여름비에 작물이 자라나듯 그들의 잠재력을 쏟아 냈다. 머지않아 도널드 사장의 후회 어린 재협상이 들어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들은 이미 도널드의 도움 없이도 원료를 조달할 수 있는 모든 거래처를 확보한 이후였다. 소문은 금세 자회사와 그룹에 퍼졌고 급기야 관련 업계에까지 파다하게 알려지면서 사내는 물론 업계 전체에까지 잘못된 인사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 이상하게도 5년 전 그때처럼 한국으로 반입된 수입 물품이 검역에 통과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검역에 통과하지 못한 컨테이너가 미국으로 반송된다면 돌아가는 해상운임의 손실은 물론이거니와 미국으로 돌아가 재활용되지 못하고 폐기해야 하는 비용은 법인의 1년 사업을 모두 망칠 수 있는 규모였다. 그리고 그 일을 처리해 본 사람은 단 두 명 나와 진화식이다. 하지만 진화식은 이미 경쟁회사의 공동창업자가 되어 있었고 결국 그룹 내에서 이 일을 경험한 유일한 사람은 나 하나였다. 아니나 다를까 정해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법인장님, 이번에도 5년 전이랑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지금 진화식의 회사를 심하게 압박하고 있잖습니까. 국내 영업도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근데 딱 이 찰나에 5년 전 그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니까 진화식 그 인간을 도무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엔 그때보다 물량도 더 많아 보통 난처한 상황이 아닙니다. 제값 받고 정상적으로 판매하는 건 꿈도 꾸지 않습니다. 그저 통관만이라도 시켜서 제발 반송되는 일만이라도 막아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법인장님!”
나를 이곳까지 보낸 괘씸한 자들을 생각하면 해외 사업과 관련해서는 ‘일언반구 一言半句’도 관여하고 싶지 않은 나였지만 나를 끝까지 믿고 따라 주었던 정해진과 또 나를 믿고 미국으로 건너가 최선을 다하는 박유신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의 기억과 기록을 더듬어 관련 공무원과 협의한 결과 결국 제품의 용도를 바꾸어 검역을 승인하는 걸로 결정했다. 컨테이너를 비우고 반납하기까지의 시간을 단축해 엄청나게 불어나던 연체료를 최소화하는 것까지 역할을 하고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만약 반송되었더라면 회사가 감당해야 할 손실만도 나의 몇 년 치 연봉을 상회하는 금액이었다. 돈이라는 건 참 이상하리만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그저 일을 마쳤을 뿐 나의 일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그걸 돈으로 환산해 헤아릴 때의 허탈감과 배신감은 변방에 쫓겨난 나의 처지를 더욱더 우울하게 했다.
초임지 근무로 1년을 보낸 후 24년 만에 돌아온 전라도 땅, 사람과 음식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승진과 동시에 격상된 나의 지위 또한 만족스러웠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서 수십 명의 직원과 많은 협력사를 거느리며 지금껏 직장생활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내내 나는 스팀 빠진 증기선처럼 무력감을 느꼈다. 본사에서 출장차 내려오는 많은 사람이 한결같이 나에게 했던 말은 “미국까지 갔다 온 사람이, 쯧쯧”하고 혀를 차는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태양은 여름을 지나 가을을 향하고 있었다.
“야! 현 부장, 니 거기서 뭐 하노? 인자 살살 올라올 준비하그래이. 니 같은 사람이 거가 있으모 우짜노? 내 대표이사님이랑 사장님한테 다 이야기해 놨데이. 니 지금 해외사업 개판 되뿐 거 알제? 전문가가 없으니 이리 되뿐 거 아이가? 내년에는 마 올라와서 본격적으로 사업 한번 해 봐라. 니가 올라온다카모 내 니 원하는 대로 다 해준다 카이께네.”
그룹 본사에 근무할 때부터 막역하게 지냈던 자회사 전무였다. 이미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 엉망이 된 해외사업부를 다시 살려 향후 시장 개방에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몇 년 후 다가올 시장 완전 개방에 대비해야 한다고 그토록 목놓아 말할 땐 콧방귀도 뀌지 않던 자들, 권력의 단맛에 취해 마음대로 인사권을 남용하던 그들이 이제야 나에게 돌아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건 돌아오라는 게 아니라 새롭게 무거운 짐을 지고 가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다시 전쟁이 시작되자 앞서서 희생당할 총알받이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그런 속내를 뻔히 아는 나는 그들이 받아들이기에 다소 어려운 제안으로 그들을 시험했다.
“좋습니다. 전무님, 제가 돌아가겠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해외사업부를 일개 부가 아닌 본부나 단으로 승격시켜 주십시오. 아시다시피 부서 단위에서 신사업을 이끌려면 해당 본부장뿐만 아니라 경영본부장, 감사, 전무, 사장에 대표이사까지 층층시하 아닙니까. 저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일 못 합니다. 제가 해봤잖습니까. 그러니 해외사업부를 해외사업단이나 해외사업본부로 승격시켜 전무님 직속에 둬 주십시오. 그나마 전무님 같이 사업을 경험하고 이해하시는 분이라야 제가 맘 놓고 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습니다. 해외 사업추진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해외를 다녀야 합니다. 해외 출장비 예산을 별도로 확보해서 그 예산 범위 내에서는 저를 포함한 직원들이 자유롭게 해외를 다닐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경쟁사들은 해외고 어디고 필요할 때마다 바로바로 움직입니다. 우리처럼 해외 나갈 때마다 시시콜콜 승인받느라 시간 다 보냈다간 사업 말아먹기 딱 좋습니다. 이 두 가지만 약속해 주신다면 다시 한번 저의 모든 걸 바쳐 일해 보겠습니다. 이 사업 제대로만 되면 그로 인해 직원들 수십 명이 전문가가 될 겁니다.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돼서 해외를 넘나들 겁니다. 또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 유럽, 동남아까지 신설 법인을 설립하면 사업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매출 1조 원이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반드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화식 같은 개 XX들 제가 씨를 말리겠습니다. 정의가 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배은망덕 背恩忘德’한 새끼 같으니라고!”
설마 이 조건을 수용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기다리던 나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온 건 인사철이 점점 다가오는 11월이 다 되어서였다.
“현 부장, 아니 이제 현 단장이라 불러야겠네. 니가 말한 조건 다 들어주기로 내 윗분들이랑 다 이야기했다. 인자 이사회 승인만 받으모 되는데, 니 내 알제? 내가 이사님들 구워삶는 거는 도사 아이가. 그러니 니는 내년도 사업 우찌 할 낀지 잘 구상해 갖고, 언제 윗분들 보고나 한번 하게끔 해라. 알았제?”
내 삶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화였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을 확신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의존해 일한다는 건 늘 끝이 나기 전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하시라도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틀어지기 마련이다. 새로운 사업단의 신설과 그 사업단의 단장으로 나의 이름이 강력하게 거론되던 그 무렵, 진화식은 또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간파했을까? 귀신같이 전화가 걸려왔다.
“법인장님, 진화식입니다. 헤헤! 그동안 전화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야, 너 내 전화, 카톡, 일 년간이나 대놓고 씹더니 무슨 낯짝으로 전화야 전화가?”
“아닙니다. 법인장님, 제가 그동안 연락드리지 못한 사연을 모두 알려드리겠습니다. 다 들으시고 나면 제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법인장님 한가한 시간에 꼭 다시 전화해서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법인장님!”
이제 마지막 인사발령만을 남겨둔 시점, 다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회사 인사부장이었다.
“현 부장님, 죄송한데 해외사업부를 단으로 승격하는 건 사내에서 반대가 많아 진행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여론의 흐름을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일단 사업부로 시작한 다음에 부장님이 오셔서 사업 규모를 먼저 키워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업 규모가 합당해지면 그때 단이나 본부로 승격시키겠다는 거죠. 전무님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셨는데 결국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부장님, 그럼 내년엔 다시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그 전화를 끝으로 나는 26년간의 회사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직서, 아직 한창 일할 나이, 그 어떤 미래도 보장되지 않았지만 나는 자유를 택했다.
초나라 위왕은 글재주와 언변이 뛰어난 장자를 재상으로 삼고자 예물을 잔뜩 실린 수레와 함께 장자를 설득할 사신을 보냈다. 그러자 장자가 사신에게 꾸짖으며 말했다.
“천금(千金)이라면 막대한 돈이며, 재상이라면 존귀한 지위인 줄 나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대는 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하였는가? 그 소에게 몇 년 동안 좋은 음식을 먹여 살이 보기 좋게 오르면 드디어 화려하게 수놓은 옷을 입혀 제사장으로 끌려가지 않는가? 제사장에 이르러서야 나는 소가 아닌 하찮은 돼지라고 울어본들 죽음이 면해지겠는가? 그대는 빨리 돌아가 더는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거워할지언정(아녕유희오독지중자쾌, 我寧游戲污瀆之中自快)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구속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자 한다.”
나 역시 사직서를 내며 가슴 깊이 다짐했다.
‘직장에서의 26년도, 결국은 지구라는 별에서의 한평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결국 뒤집힌 꿈을 좇아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만, 그 끝인 퇴사나 죽음에 이르러 삶을 돌이켜보면 정작 빈 몸뚱어리조차 남지 않는 것, 허명에 속아 사는 삶은 결코 부활을 꿈꿀 수 없을 것이다.’
‘애벌레가 누에를 거쳐야 나비로 부활하는 것처럼 모든 것은 지금의 자기를 버려야만 비로소 새로운 것으로 부활할 수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육신을 버림으로써 부활했고, 석가모니는 왕자의 지위를 버림으로써 깨달음을 얻은 부처로 부활했다. 나는 미국 주재원이라는 나의 지위를 버림으로써. 직장에서 주는 알량한 허명을 버림으로써 비로소 새롭게 부활할 것이다.'
'진정한 부활은 새로운 무언가를 얻음으로써가 아니라 본래의 순수함으로 돌아감으로써 시작된다. 예수님처럼, 부처님처럼 또는 장자처럼 위대한 성인은 되지 못할지라도 더 이상 누군가의 노예로 살진 않으리라. 시골의 더러운 도랑(오독 污瀆)에서 붕어를 잡다 죽는 한이 있어도 스스로 기뻐하는(자쾌 自快) 삶으로 돌아가리라! ‘오독자쾌 污瀆自快’ 하리라!‘
그동안 <미국 주재원의 비극>을 구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이다 같은 사이다 한 번 제대로 먹여드리지 못하고 작품을 마무리하게 되어 못내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우울했던 이 작품을 끝으로, 앞으로는 사이다가 나이아가라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작품으로 여러분과 함께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마지막 화 연재를 이곳 뉴욕에서 마무리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 편에서는 작품 외로 저와 진화식의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퇴직 후 저의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전해드리겠습니다. <미국 주재원의 비극>의 실질적 마지막 편이 될 「에필로그」는 이 글의 배경이 된 오리건주로 돌아가 연재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2024년 7월 9일 뉴욕에서 천상작가 해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