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이야기 2. 미국 이민 45년, 스티브의 엄마 찾은 사연
"엄마! 진짜 엄마야? 살아 있었어? 왜 날 버렸어? 왜 날 안 찾았어? 아빠는 엄마가 죽었다 그랬어. 진짜 내 엄마 맞아?"
컴퓨터 영상 너머로 엄마가 보이자 스티브는 오열했다. 한국말을 잘못하는 스티브였지만 '엄마'라는 발음만큼은 보통의 한국 사람 그대로였다. 미국 이민 45년 만에 처음으로 불러보는 단어 엄마, 엄마라는 그 가슴 시린 이름만으로도 그날 밤, 그 자리는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다.
스티브(Steve)를 처음 만난 건 미국으로 발령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한국에서 중학교 2학년을 마친 나의 아들은 미국으로 오면서 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영어가 서툴러 도움이 필요했던 아들은 몇 명 되지 않은 한국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 친구 중 한 명이 바로 스티브의 아들 토니(Tony)였다. 서로 친해진 아들과 토니는 양쪽 집을 오가며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부모들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처음 만난 스티브는 3살 때 아버지를 따라 이민해 한국말이 매우 서툴렀다. 아주 기본적인 대화 내용만 알아들을 수 있었고 말은 거의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반면에 그의 아내 제시카(Jessica)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미국으로 온 데다 할머니를 비롯한 전 가족이 이민해 어려운 단어가 아니라면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몇 번의 만남을 가진 뒤 우리는 가벼운 술을 곁들인 저녁을 함께했고 서로의 나이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티브와 나는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라는 사실 알게 되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스티브에게 말했다.
"스티브, 한국에서는 같은 해에 태어났어도 생일이 빠르면 형님이라고 불러줘야 해요. 나는 1월생이라 아마 나한테 형님이라고 불러야 할 거예요."
"네? 1월생이라고요? 저도 1월생이에요. 1월 11일이요."
"뭐라고요? 11일이요? 저도 11일이에요. 111. 그럼 우리는 같은 날 태어난 거네요. 세상에 이런 우연이? 저는 저와 생년월일이 모두 같은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만나 봐요. 정말 신기합니다. 그것도 미국에서 말이죠."
우리는 서로의 면허증을 꺼내 정확하게 일치하는 숫자를 보며 신기해했다. 아내들도 그 모습을 보며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스티브와 나는 금세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티브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와 부탁이 있다며 꺼낸 그의 이야기는 감추어왔던 출생의 비밀과 가슴 아픈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한국에서 미군과 관련된 일을 했던 그의 아버지는 스티브의 어머니와 결혼해 스티브를 낳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둘의 관계는 지속되지 못했다. 결국 스티브의 어머니는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집을 나갔고 상심에 빠진 아버지는 어린 스티브를 데리고 미국에 이민했다. 그 후로 아버지는 어머니에 관한 모든 흔적을 지웠고 심지어 스티브에게 엄마라는 단어를 포함한 그 어떤 한국말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세 살 무렵부터 어머니의 존재와 철저히 차단된 스티브는 아버지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며 아버지와 만나는 다른 여자들로부터 멸시를 받았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지금의 한국인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엄마의 존재는 그에게서 완전히 사라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날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사무쳐왔고 단 한 번만이라도 엄마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늘어 갔다. 견디다 못한 스티브는 거의 의절하다시피 한 아버지를 다시 찾아 어머니의 소식을 물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그를 더욱 깊은 슬픔으로 몰아 넣었다.
“너의 엄마는 이미 10년 전에 죽었다. 그쪽 집안에서 나에게 연락이 왔는데 너에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어. 핏덩이 같은 너를 버린 사람인데 찾아서 뭐 하려고 그러냐. 이젠 그저 엄마에 대한 미련일랑 모두 버리고 그냥 열심히 네 새끼들이나 잘 키우며 살아라!”
이제 다시는 자기를 낳아 준 엄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스티브는 헤아릴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 무거워진 발걸음을 돌리며 그는 다짐했다.
‘엄마의 죽음마저 알리지 않은 비정한 아버지, 엄마의 죽음에 슬퍼할 기회마저 주지 않은 아버지, 그 아버지를 이제 다시는 찾지 않으리라.’
하지만 문득 아버지의 말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아버지의 말이 거짓이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는 엄마의 죽음만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의 엄마를 찾는 시도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 후로 스티브는 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 대사관에 요청했다. 하지만 대사관에 요청한 지 수개월이 지났음에도 엄마에 대한 소식은 감감했다. 마지못해 그는 그 사실을 나에게 털어놨고 엄마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라면서 나에게 슬며시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가 엄마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간직해 온 그것은 바로 엄마의 ‘호적등본’이었다. 색이 바랠 대로 바랜 그 호적등본에는 옛날 서기가 손으로 쓴 글씨체 그대로 스티브의 엄마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의 이름 석 자를 보며 그는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했을까. 그 서류에는 그간의 설움과 외로움의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슬픔에 빠진 그의 얼굴을 보며 나의 가슴도 미어져 왔다.
뒤이어 그 서류를 보면서 나는 또 한 번 화들짝 놀랐다. 그의 엄마와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는 나이와 태어난 달이 같았다. 그리고 성도 같았고 이름도 끝 한자만 달랐다. 그의 엄마는 박순덕, 나의 어머니는 박순남, 그 이야기를 듣자 스티브도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게 운명일까? 나는 그 서류를 보면서 뭔가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45년간 가슴에 품고 있던 스티브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 엄마 없는 이역만리 외로운 땅, 미국에서 그가 겪어야 했던 설움을 생각하면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있다면 의외로 쉽게 엄마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스티브의 엄마를 수소문했다. 그렇게 안테나를 가동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스티브의 어머니는 살아계셨다. 너무도 잘 살아계셨고 직업도 매우 안정적이었다. 스티브의 간절한 사모곡이 하늘에 가 닿았을까? 나는 모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호소해 스티브 어머니의 전화번호까지 단숨에 알아내게 되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제 문제는 그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나는 스티브에게 어머니의 생존을 알리기 전에 그의 어머니와 통화를 시도했다. 혹시라도 새로운 가정을 일구고 있다면 45년이나 소식도 없었던 아들의 존재는 자칫 ‘평지풍파 平地風波’가 될 수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스티브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걸걸한 목소리의 노년 남성이었다.
“뉘시오? 자꾸만 해외 전화로 전화가 오는데 거참 이상하네. 요즘 TV에 ‘보이스피싱’인지 뭔지 난리던데 그런 사기 칠 생각일랑 하지 말고 전화 끊어요.”
그 후로 해외 전화번호가 찍힌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아 나는 방법을 달리했다. 그 번호의 카카오톡으로 사람을 찾고 있다는 간단한 메시지와 나의 명함을 사진으로 보냈다. 다음 날이 되자 젊은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간단한 가족관계를 물어보고서야 비로소 모든 상황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스티브의 엄마는 아직 혼자였고 전화를 받았던 노년의 남성은 스티브의 외삼촌이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온 여성은 외삼촌의 딸 그러니까 스티브의 외사촌 여동생이었다. 그들은 스티브 엄마의 최종 의견을 물어본 후 다시 연락하겠노라 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연락이 왔다.
“고모가 오빠를 너무 보고 싶어 합니다. 죄송한데 시간을 정해서 화상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저희도 너무 오랫동안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께서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오빠는 한국말할 줄 아나요?”
“스티브의 한국어가 매우 서툽니다. 대신 스티브의 아내 제시카가 한국 사람이라 어느 정도 소통은 됩니다. 아무튼 제가 이 모든 상황을 스티브에게 전달하고 화상 통화 일정을 잡아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기다릴 스티브에게 이 모든 소식을 전했다. 그는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45년의 세월, 자기를 버린 엄마,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현실이 그를 주저하게 했다. 제시카와 상의 끝에 화상 통화 날짜를 잡았고 45년 만의 모자 상봉 장소는 우리 집으로 정했다. 한국말과 문화에 익숙지 않은 그들은 나의 도움이 간절했다.
45년 만의 모자 상봉을 앞두고 나는 파티를 준비했다. 넉넉하게 술과 음식을 준비했고 그들의 가족 4명과 우리 가족 5명이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이 되자 나는 준비된 컴퓨터를 열어 화상 전화를 걸었다.
“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