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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상작가 해원 Aug 09. 2024

목놓아 불러보는 그 이름 '어머니'

못다 한 이야기 3. 뒤집힌 진실, 뒤집힌 생각


“엄마! 진짜 엄마야. 살아 있었어? 왜 날 버렸어? 왜 날 안 찾았어? 아버지는 엄마가 죽었다 그랬어. 진짜 엄마 맞아? 엄마, 엄마, 엄마~~~”     


50에 가까운 나이에도 스티브는 다시 3살의 아이가 되어 있었다. 자기를 버린 엄마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하염없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홀로 남겨진 설움은 오랜 세월 응어리가 되었고, 응어리는 눈물이 되어 마치 피고름처럼 그의 뺨을 타고 흘렀다.     


“명이? 네가 내 아들 명이니? 지천명? 그래, 명이구나. 명아, 명아, 내 아들 명아~~~”     


“엄마”하고 부르면 “명아”하고 대답하고, “명아”하고 부르면 “엄마”하고 대답하며 모자는 서글피 울었다. 45년 모자의 한은 그렇게 깊고도 깊었다. 그 깊고 메마른 슬픔이 어찌 일순의 눈물로 해갈될 수 있을까. 눌렀던 슬픔은 끝내 오열이 되어 터져 나왔다. 그 슬픔은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스티브와 엄마의 눈물은 금세 태평양을 건넜다. 태평양을 건너고 하늘을 가로질러 가족들에게도 전해졌다. 지켜보던 아내 제시카는 스티브의 눈물을 닦아주며 울었고 한국말을 모르는 그들의 아이들도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울었고 나의 아내도 울었다. 나의 아이들도 덩달아 울며 집안은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헤어짐보다 만남이 더 슬플 수 있다는 것을, 눈물보다 더한 슬픔의 말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어머니의 존재는 눈물이라는 것을. 태어날 때도 눈물로 만났고 헤어질 때도 울었다. 다시 만나서도 울었고 영원한 이별에도 울었다.      




그렇게 45년 만의 극적인 모자 상봉은 끝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티브와 그의 아내 제시카는 한국을 방문했다. 하마터면 살아서는 만나지 못했을 어머니, 존재조차 몰랐던 많은 친척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밝혀진 이별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돌아온 스티브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내밀며 나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사진에 있는 젊은 시절 스티브의 어머니는 큰 키와 준수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미인대회 수상 경력이 있는 그녀는 당시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던 스티브의 아버지를 만났다. 사랑에 빠진 그들은 서둘러 결혼했고 스티브를 낳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들은 오래지 않아 이혼했고 어린 스티브와 아버지는 미국에 이민했다. 그리고 스티브가 자라는 동안 아버지는 늘 스티브에게 말했다.      


“네 엄마는 바람피운 여자야. 그래서 너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쳤어. 그러니 엄마에 대해서 알아볼 생각도 하지 말고, 찾을 생각은 더더욱 하지 마라. 엄마라는 이름도 절대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돼, 알았어? 그리고 우리는 절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한국말도 배울 생각 하지 마.”     


아버지의 뜻에 따라 스티브는 엄마라는 존재를 지웠고 한국말과 한국에 대한 모든 기억도 지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성 편력이 심했고 이민 후 4명의 여자와 결혼했다. 마지막 4번째를 제외한 세 명의 새엄마는 스티브를 학대했다. 친엄마 없이 늘 주눅 든 아이로 자란 스티브는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렇게 성인이 된 스티브는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고 마땅한 직업이 없었던 그는 한국행을 결정했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던 중, 우연히 한국을 찾은 제시카를 만나게 되었고 둘은 금세 사랑에 빠졌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그들은 가정을 꾸렸고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날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그 그리움은 어쩌면 자기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그리움 이면에 감춘 엄마에 대한 원망도 엄마를 찾고자 하는 그의 욕구에 불을 지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엄마 찾기는 결국 나를 만나며 그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들려준 진실, 그것은 아버지의 말과는 너무나 달랐다.

          



미군 부대에 근무하며, 당시 한국의 상황에 비해 경제력이 좋았던 아버지는 바람기가 다분했다. 스티브의 아버지는 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웠고 그 모습에 질투하는 아내가 못마땅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에 이르렀고 이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버지는 어린 스티브만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다.     


졸지에 이혼 당해 쫓겨난 엄마는 심한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아들만은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아들을 되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어느 날, 어린 아들이 이미 미국으로 떠났음을 알게 된다. 그 시절 미국은 멀고도 먼 나라였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고 아들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졸지에 이혼녀가 되고 아들까지 잃은 그녀는 비통함을 견디지 못한 채, 모든 걸 버리고 성직자가 되었다.      


성직자가 된 그녀는 신앙의 힘을 빌려 모든 걸 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어떤 기도로도 자신의 몸 안에 있던 생명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었다. 자신의 유일한 핏줄 아들에 대한 그리움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먼발치에서라도 한 번 아들을 보고 싶었다. 생사만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수소문 끝에 몇 차례 미국을 찾았지만 일은 허사로 끝났다. 45년이라는 세월은 참 무심하게도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간절한 기도와 아들의 애타는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스티브는 아버지를 버렸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어머니를 거짓 죽음으로 위장한 아버지를 더는 아버지라 부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를 버린 대신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그를 버린 적이 없었고 단 하루도 잊은 날이 없었다.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온 스티브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어머니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고는 죽어도 차마 눈을 감지 못하겠다던 그는 분명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행복함 뒤에 숨어있는 그림자를 보았다.           



<단상>     


삶에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결국 사람 아니면 물질이다. 스티브는 어려서부터 친엄마의 사랑이 간절했다. 의붓어머니들로부터 핍박을 받으며 그 간절함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나는 그런 스티브의 모자 상봉을 도우면서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뿌듯함은 금세 걱정이 되어 돌아왔다. 완전히 다른 문화에서 45년을 지낸 그들은 분명 잠시간 행복했다. 하지만 모자지간이라도 가치관이 다르면 반드시 갈등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동안에 가져보지 못한 관계 역시 갈등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아름다운 만남에 왜 초치냐고?      


어머니와 재회 이후 스티브 부부는 이혼했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새로운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일 거다. 아니면 모성애를 자극하던 스티브의 가여움이 어머니를 만난 후 사라져, 제시카의 모성 본능이 더는 작동하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중요한 건 스티브가 엄마를 만나면서 아버지와는 완전히 의절했고 아내와는 이별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마지막 모습은 아닐까?     


평생토록 '사람 아니면 물질'을 구하는 우리, 하지만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고, 얻은 물질은 반드시 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를 다 알면서도 평생 헛된 것을 구하며 산다. 결국 나 아닌 사람, 나 아닌 물질을 통해서는 궁극적 행복을 얻을 수 없다. 기쁨의 원천은 밖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쁨의 원천은 어머니도 아니요. 돈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쁨의 원천은 오직 나 자신의 내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이유도 어머니라는 그 사람을 찾기 위함이 아니다. 어머니의 존재를 통해 결국 나를 찾기 위함이다. 어머니를 통해 나를 찾고 물질을 통해 근원의 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뒤집힌 우리의 생각과 관념, 즉 '전도몽상, 顚倒夢想'을 바로잡는 유일한 길이다.     




가슴에 슬픔이 한가득 일 때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아무도 없고,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엄마'하고 부르며 목놓아 울고 싶다. 이제 더는 나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이제 더는 세상에 속고 싶지 않다. 이 탐욕과 슬픔, 어리석음을 모두 내려놓고 참회의 눈물을 어머니께 바치고 싶다.      


“어머니여! 오늘은 당신이 날 낳은 게 아니라 내가 눈물로써 당신을 낳습니다.”


“우주 대기에 가득 찬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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