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최종, 못다 한 이야기 5. 삶이 괴로운 단 하나의 이유
삶이 괴로운 이유를 내가 확실히 알려줄게.
그 이유는 딱 하나야.
아직 잃을 게 남았다는 거야.
그던데 말이야.
잃을 게 남았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야.
살아있다는 뜻이거든.
살아있다는 것,
그것보다 아름다운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살아있다는 건 이런 거야.
오늘의 태양이 있고,
지금 방금 들이쉰 숨이 있어.
밟고 일어선 땅이 있고,
온도가 남아 있어.
아직도 내 몸에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말이지.
삶이란 모든 있음을 점점 잃어가는 체험이야.
결국 모든 걸 잃고 났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게임이라고.
그 누구도 어쩔 수 없어.
모든 잃어가는 것들을 사랑할 수밖에!
“안면마비”
고통을 호소하던 아내를 데리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미국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증상을 느끼기 시작하고 이미 하루가 꼬박 지난 후였어요. 심각한 표정으로 의사가 말했습니다.
“IT’S TOO LATE AND IT’S TOO SERIOUS”
심각한 마비는 아내의 그 아름답던 미소를 앗아갔어요. 그리고 그 일이 마치 신호탄이 된 듯 저에게 비극이 닥쳐오기 시작했습니다. 평생토록 소중하다고 여겼던 직장이 사라졌고,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무엇보다 26년간 노력의 결과가 그 짧은 순간 모두 사라졌을 때, 사라진 물심(物心)의 인연과 함께 저의 영혼도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가족들에게 미안함은 허무보다 더한 괴로움이었습니다. 비극은 그렇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미국 주재원의 비극> 그건 저에게 작품이 아니라 삶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 더는 희망이 없다고 느꼈을 때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자기야! 하늘 참 예쁘지? 당신은 저 하늘보다 더 예뻐. 내 남편이어서 고맙고, 내 아이들의 아빠여서 고마워. 난 당신만 있으면 돼, 당신만 무너지지 않으면 돼. 그러니까 힘내!”
그 순간 저는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
“여보, 예전에는 당신보다 내가 먼저 죽기를 바랐어. 당신은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게다가 남자가 오래 사는 것보다 여자가 오래 사는 게 훨씬 보기 좋으니까. 혼자되신 시골 아버지랑 장모님만 비교해 봐도 금방 알 수 있잖아.”
“근데 지금은 아니야. 마음이 바뀌었어. 내가 죽는 모습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당신의 우는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싫어. 예쁜 수의 입혀서 마지막 매듭짓고 예쁜 꽃 한가득 관에다 넣어줄게. 그렇게 당신 먼저 보내고 난 딱 하루만 더 살고 죽을게.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거 같아. 그래야 당신에게 지은 내 죄를 용서받을 거 같아. 그리고 이건 내가 당신에게 남기는 마지막 편지야.”
내가 복학했을 때 당신은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어린 소녀였었지. 성인식날 내가 준 첫 꽃다발 기억나? 그땐 왜 그렇게 싸웠는지, 꽃다발은 피가 되어 땅바닥에 쏟아졌지.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어. 오늘 이 꽃은 이번 생에서 내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야. 앞으로의 생은 꽃길만 걸으라고. 아프지 말고 슬프지 말라고. 부디 환하게 웃음 지으라고.
여보, 그거 알아? 당신의 미소는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더 아름답고 그 어떤 보석보다 빛나는 내 인생 최고의 미소였다는 거. 그동안 고마웠어. 사랑해 여보, 잘 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상실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생의 끝자락에서 누구나 모든 걸 잃게 됩니다. 이곳에 와서 얻은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하지만 모든 게 사라진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을 저는 믿습니다. 그 사랑이 진리임을 저는 믿습니다.
<미국 주재원의 비극>을 쓰면서 제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제가 과연 글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부족함도 저이기에 그저 쓰려고 합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고자 합니다. 채우려는 삶보다 비우려는 삶으로, 복잡함보다 단순함으로 살고자 합니다.
공교롭게도 오늘 이 글을 끝으로 저는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비극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제 손으로 그 비극을 끝냅니다. 비극은 알고 보니 모두 제 탓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극은 모두 한낱 꿈에 불과했습니다. 오늘 이 글로 제 꿈은 그 상영을 마칩니다. 이제 저는 이 비극의 꿈에서 깨어납니다. 진정한 부활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레드썬”
그동안 부족한 제 글을 사랑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로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늘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천상작가 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