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며 늘 부러웠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밥을 짓지 않는 친구들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과 살림을 병행하는 일은 나를 ‘슈퍼맘’으로 만들어주는 필수 요소였다.
하루하루 밥을 짓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를 끓이고, 정성을 다해 김치를 담그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부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집밥에 집착했다.
아니, 사랑했었나 보다.
“엄마, 밥 좀 더 줘!”
아이들의 이 말 한마디는 내게 끝없는 힘을 주었다. 그 말을 들으면 비로소 오늘도 엄마로서의 하루를 온전히 살아냈다는 안도감이 밀려들곤 했다. 그것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내 방식이었나 보다.
그렇게 지지고 볶으며 살던 날들이 지나, 드디어 내가 부러워했던 ‘밥을 짓지 않아도 되는 날’이 찾아왔다. 지우는 어느덧 성인이 되었고, 현우는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떠났다.
그리고 나는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혼자’라는 말은 이 상황을 온전히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수술 후 무너진 몸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호르몬 변화는 차가운 식은땀과 함께 온몸은 두들겨 맞은 것처럼, 그리고 모든 관절이 쑤시고 아팠다. 그러는 동안 내 마음은 점점 어둡고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아이들이 없는 빈집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은 편안함이 아니라 공허함이었다.
늘 곁에 있던 사람들, 나를 위로하던 따뜻한 말과 손길들이 모두 사라진 듯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소중히 품고 살았던 아이들도, 내 곁에 머물던 사랑도 이젠 없어진 것 같았다.
부엌에서 아이들을 위해 끓이던 찌개 냄새, 밥을 푸는 손끝의 온기, 그리고 “엄마, 밥 좀 더 줘!” 하던 그 사랑스러운 목소리. 그것들이 내 삶을 지탱했던 힘이었다는 걸.
집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사랑이었고, 내가 품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