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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Apr 10. 2024

남편이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이사 액땜

아내의 시선


쿠알라룸푸르에서 쿠칭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2015년. 제주도에서 남편의 교통사고 이후로 가슴 철렁 내려앉는 일이 일어났다. 남편은 여느 때와 같이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보통은 회사에 잘 도착했다고 연락한다. 이상했다. 그날따라 한 시간 동안 연락이 없었다. 왜인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바빠서 깜박한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때 남편한테 첫 문자가 왔다. 그리고 다음 문자가 연 이어 왔다. 


나 갇혔어.

엘베에.


문자만 봐도 긴급 상황이 느껴졌다. 그때의 기억. 남편의 교통사고 트라우마가 떠오른다. 잠시 뒤 남편한테 카카오 톡으로 전화가 왔다.


"자기! 괜찮아? 어디에 있는 엘리베이터야?"

"집에 있는 엘리베이터!"


당장 전화를 끊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남편이 걱정되었다. 큰 소리로 어디 있냐고 말했다. 생각보다 남편 목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다시 한번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남편은 조금 당황했지만 폐쇄공포증 같은 느낌은 없었다고 했다. 다행이다. 얼마나 안에서 소리를 쳤는지 남편 목소리가 다 쉬었다. 누군가가 남편의 소리를 듣고 경비실에 이 상황을 알렸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기사가 오는 중이라서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남편은 애써 괜찮은 척을 했지만 쉰 목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긴급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자기 나오면 뭐가 제일 먹고 싶어?"

"음.....짜장면!?"


평소처럼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는 어떤 일이 생기면 일단 침착함을 유지하는 방법이 살 길이라는 것을 남편의 교통사고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기사님 두 명이 도착했다. 황급히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이제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기사님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건물에 있는 엘리베이터 문을 오픈했다. 정확히 층과 층 사이에 멈춰있었다. 우리가 있는 층까지 엘리베이터를 끌어올리는 데까지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남편이 있는 엘리베이터 문은 어떤 방법을 해도 열리지 않았다. 한 명의 기사님만 계단을 통해서 왔다 갔다 하면서 또 다른 기사님에게 상황을 알렸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실시간으로 남편한테 상황을 설명했다. 많이 지쳐 있을 남편에게 조금만 더 버티자고 말했다. 그 사이 30분이 흘렀다. 마음이 초조해졌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기사님이 손으로 힘껏 문을 열어 보는데 문이 열리고 있다. 남편은 웃으면서 나온다.


'응? 이 상황에서 대체 왜 웃는 걸까?'


어찌 되었든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남편의 시선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한다. 여느 때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고 2~3초쯤 지났을까. 갑자기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꺼졌다. 앞이 안 보인다. 당황스럽다. 재빨리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 앞에 보이는 비상벨을 눌렀다. 내 상황을 관리실에 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만 엄청 크게 "삐이이이" 사이렌 소리가 난다. 화재수신기를 점검할 때 사이렌 소리와 같았다. 좁은 공간에서 들으니 귀가 따가웠다. 누군가는 사이렌 소리를 듣기를 바라면서 10분 동안 비상벨을 눌렀다. 아무도 반응이 없다. 일단 이 방법은 멈췄다. 아내한테 연락하고 싶은데 휴대폰 수신이 안 잡힌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들방이 가장 가깝다.


"은찬(가명)아~~~은찬아~~~"


젖 먹던 힘까지 소리 질렀다. 안 들리는 걸까. 곤히 자는 걸까. 아무런 반응이 없다. 또다시 10분이 지났다. 등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위급 상황이다. 다시 힘을 내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 


"Help Me. Help Me"


주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와달라는 말을 외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20분이 지났다. 여전히 휴대폰 수신은 안 잡힌다. 답답하다. 점점 더워진다. 털썩 주저앉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는 알아채지 않을까. 아내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자기야! 새벽에 배고프면 이거 꼭 챙겨 먹어!"


가방 안에는 아내가 챙겨준 삼각김밥이 있다. 잠깐이지만 '사람 올 때까지 삼각김밥으로 버텨야 하나?' 이런 생각도 했다. 아니다. 힘을 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다시 일어났다. 다시 비상벨을 눌렀다가 도와달라고 소리도 쳤다가를 반복했다. 10분이 더 지났다. 할머니 목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목이 쉬었지만 엘리베이터에 갇혔으니 경비실에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는 중국어로 말한다. 영어를 못하시나 보다. 발걸음이 점점 멀어진다. 말이 통했는지 모르겠다. 5분 뒤에 경비가 찾아왔다. 다행이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아침이나 돼야 누군가가 알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얼굴은 모르겠지만 참 감사한 분이다.


휴대폰 시간을 보았다. 도움을 요청하느라 잊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쯤 회사에서 왜 안 오냐고 계속 연락이 왔을 터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엘리베이터 문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손을 뻗고 휴대폰을 올렸다. 약하게 신호가 잡힌다. 드디어 수신이 터진다. 아내한테 문자도 보내고 회사에 보고도 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린다. 역시 아내 밖에 없다. 이제야 안심된다. 아내가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본다.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맛있는 짜장면이 생각났다. 신경 써준 아내가 고맙다.  엘리베이터 기사님이 왔다. 30분을 더 기다렸다. 어차피 해결될 일이니 별 걱정이 없었다. 빛이 조금씩 보인다. 드디어 문이 열린다. 웃으면서 나갔다. 


'살다가 살다가 별일을 다 겪는구나!'


어찌 되었든 나왔으니 다행이다.


그날 이후


남편은 1시간 30분 동안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었다. 신축 콘도여서 2023년 8월에는 입주가 많이 되어있지 않았다. 그때는 빈집이 더 많았다. 아마도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남편은 새벽 내내 갇혔을지도 모른다.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그날 남편은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사 액땜했다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 아들한테 아빠가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2023년 1월. 아들한테 엘리베이터가 안에 갇히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엘리베이터에 갇히면 어떻게 해야 될까?
 
1. 절대 당황하지 않을 것
2.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하지 않을 것
3. 비상벨을 눌러서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할 것
4. 관리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휴대폰으로 신고할 것


일단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달랐다. 비상벨을 누르면 관리실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만약에 남편이 아니라 아들이었다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다. 아들에게 안전교육을 다시 했다. 이번 기회로 안전에 더 각별히 신경 쓰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층과 층 사이에 멈춘 엘리베이터. 위로 조금씩 올라오는 중이다.
올리는 데까지 성공했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기사님이 손으로 문을 열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1시간 30분 만에 안전하게 나오는 남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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