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복이는 우리 집 셋째 아들이다. 아들, 아들을 낳고 또 낳은 아들. 셋째라 더 귀하디 귀한 우리 아들. 아기 때 아기띠를 앞으로 하고 품 안에 포옥 안고 나가면 보물을 안은 듯 마음 부자가 됐다.
아이는 믿지 않지만 넷째 복실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달복이는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막냇동생을 형들도 얼마나 사랑해 줬는지 모른다.
‘동네 사람들 우리 아들 좀 보세요. 얘가 우리 셋째랍니다.’
성격이 조금만 더 활발했더라면 저리 떠들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큰아이들에게는 못해줬던 대화도 눈을 맞추며 최선을 다해줬다.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아이와 같이 컸다. 첫째, 둘째 때는 몰랐던 아이 키우는 재미가 있었다. 육아도 학습이 되는 것일까? 그저 사랑의 힘이었을까? 아이컨택의 힘이었을까 아이는 유독 말이 빨랐다. 일찍부터 말로 에너지를 많이 쏟아서 그런가 아이는 키가 작다. 빼빼 말랐다. 동생에게 신체 사이즈를 따라 잡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이지만 먹는 것을 귀찮아한다. 심지어 먹을 때조차 말이 많다.
달복이가 씻으러 간다. 윗옷은 파랑 잠옷, 아래옷은 외출용 털바지, 속옷까지 잘 챙겨 들고 간다.
‘이 야밤에 두툼한 밍크기모 털바지를 입고 어디를 가려고?’
화르륵!! 정지!
둘러보니 소파에는 매일 자동 재생산되는 빨래가 고이 쌓여 있다. 바지를 못 찾은 모양이다. 얼른 씻으러 들어가라 하고선 달복이 바지를 찾아 소파를 기웃거렸다. 엄마라고 찾기 수월할까.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바지를 가져다줬다. 여동생 복실이 바지다.
달복이가 씻는다. 거센 샤워기 물줄기를 뚫고 흥얼흥얼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놈 목청도 가늘다. 몸통이 작아서 그런가 목소리가 아빠 닮았다. 물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시골집 기름보일러 온수를 좍좍 틀어 쓴다.
빠직!
말끔히 씻고 나와 엄마가 준비해 고이 모셔둔 옷을 입었다. 위에는 파랑 잠옷, 아래는 분홍 잠옷. 웃음이 튀어나왔지만 꾹 참았다.
다음 날 아침 머리에 까치집을 이고 밥 먹으러 나온 아이의 몰골이 귀엽다. 달복이 모르게 얼른 사진을 찍었다. 파랑과 분홍의 조화로운 색깔만 보이게 사진에 담았다. 엄마의 비밀 웃음을 아이는 알까?
우리 달복이가 분홍 바지를 언제까지 입어줄까. 잠옷으로 겨울 털바지도, 여동생 분홍 잠옷 바지도 거리낌 없이 입어주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오래 남아 있어 주면 좋겠다.
그런 달복이가 요즘은 까칠하다. 주먹질을 한다.
복실이는 몰랑몰랑 얼굴을 가졌다. 볼을 만져주면 좋아한다. 볼 만지기도 좋아한다. 오빠 볼 만지기를 유독 좋아한다. 그런데 오빠 볼을 만지면 요즘 들어 달복이 오빠가 주먹을 휘두른단다. 그렇게도 친하던 남매가 주먹다짐을 한다.
그래서 달복이에게 물었다.
”달복아, 복실이가 볼 만지면 싫어? “
”응, 정말 싫어! “
”달복아, 그럼 엄마가 볼 만져도 싫어? “
”..... 응. “
“복실아 오빠가 남자가 되어가나 보다. 오빠 볼 만지지 말자. 우리는 우리 볼만 만지자.”
아이가 크나 보다. 우리 귀염둥이 달복이는 엄마한테 뽀뽀도 잘해주고, 형들과 다르게 때때로 전화를 해 ”사랑해. “ 말도 잘해주는데... 우리 달복이가 크나 보다. 엄마가 볼 만져주는 게 싫다니. 유독 유대감이 좋다고 생각했던 셋째 아들의 성장은 엄마의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그래도 커야지. 살도 찌우고 키도 커야지. 비록 지금은 두 살 아래 여동생과 같은 사이즈 옷을 입지만 멋진 까칠남으로 쑥쑥 클 테다.
여동생의 분홍 잠옷 바지를 선뜻 입어주는 우리 아들 달복이가 커 간다.
오늘은 엄마의 특별한 정리 비법을 물려받아 엉망인 아이의 서랍장을 같이 정리해야겠다. 아이는 부모에게 배운다. 나부터 정리정돈을 하자.
그리고 정리를 좀 덜 하고 살면 어떤가. 괜찮다. 괜찮다. 나도 좀 내려놓고 아이의 정리도 좀 내려놓자. 대신 유연함을 좀 더 키우면 될 일이다. 사회에 나가서는 고생 좀 하게 될까? 그건 그때 가서 아이가 고민할 일이다. 모두 줄 수 없으니 조금은 내려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