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복동이는 엄마를 닮아 섬세한 성격입니다. 그래서 작은 벌레의 움직임에도 격한 반응을 보입니다. 아빠는 엄마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100퍼센트 맞는 말입니다. 복동이 엄마는 벌레를 무서워합니다.
어느 날 저녁 화장실에 들어간 복동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심각한 소리가 투닥거리더니, 물소리와 불안하게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지요. 아빠가 없는 상황이라... 차마 엄마는 문을 열어주지 못했습니다.
뜨거운 물을 한참 뿌려댔는지 뿌연 수증기 속에서 잽싸게 뛰쳐나온 아이는 책을 한 권 가지고 들어갑니다. 화장실 바닥을 내리치는 ‘WHY' 책의 찰진 소리가 납니다. 상황이 대충 정리된 듯 기진맥진한 녀석이 나오며 바닥에 깔린 낮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리바이어던 건들지 마! ”
폭발이지요. 아이의 화는 어찌 정지를 시켜야 하나요.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그렇게 며칠을 화장실 바닥에 있었습니다. 홉스의 그런 책이 있었는지 몰랐네요. 와이 시리즈에 인문학고전을 몇 권 사줬던 기억은 있는데, 아무튼 이번 기회로 이름을 확실히 알게 되어었습니다.
그날 이후 화장실 문에는 복동이의 창의력과 섬세함을 담고, 영혼을 갈아 넣은 창작물이 내걸렸습니다. 아이는 유아기 이후 자신의 그림을 내걸지 않았어요. 그러나 생존의 문제가 걸린 일이라 어쩔 수 없었겠지요. 늦게 퇴근하는 아빠에게 뒤처리를 은근 부탁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그림입니다. 귀여운 화풍의 그림에 아이의 절절함이 드러납니다. 다리가 두 개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상상하기 싫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합니다.
2023년 11월 중2 복동이의 섬세한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
산골마을 우리 집은 겨울날 며칠을 제외하고늘 벌레와 전쟁 중입니다. 요즘은 곱등이와 전쟁을 치르고 있어요. 그동안 활개를 치던 벌레들이 한동안 잠잠하더니 안 보이는 곳에서 서열 가르기를 하고 있었나 봅니다. 벌레 세계의 승자는 곱등이입니다. 이제 인간과 맞짱을 뜨러 나왔나 봅니다.
“벌레 대 인간으로 붙어보자. 승리하리라! “
“아들아! 엄마가 너를 외면한 것은 엄마의 잘못이지. 급박한 상황에서 너를 구해주지 못한 점 너무 미안하게 생각해. 그러나 엄마의 힘이 닿지 않는 곳, 여력이 안 되는 부분이 있더구나. 이해해 주겠니?
지난번 화장실에 지네가 나왔을 때 너의 행동을 생각해 봐. 너도 엄마를 외면하고 심지어 동생들을 모두 불러다 얼마나 웃었니. 세상은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거란다. 그게 세상 이치란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마찬가지지.
다음번에는 두툼한 벽돌책 한 권 건네줄 수 있는 강한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우리 잘 지내보자.”
이 글은 2023년 11월 ‘책보나’의 블로그 발행글입니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복동이는 한동안 엄마를 원망했다. 자신을 외면한 엄마에게 화가 났을 테다. 아이에게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전한다. 덧붙여 세상은 혼자 힘으로 부딪혀 보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새봄을 맞아 어제도 곱등이 친구가 화장실에 찾아왔다. 아이는 기겁을 하고 뛰쳐나왔다. 모든 가족들이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잠시 화장실 문은 폐쇄 상태로 방치되었다. 두툼한 벽돌책은 늘 화장실 근처에 준비되어 있다.
“아들아! 네 용기를 어찌 좀 해봐라.“
“여보! 아이에게 용기를 어찌 좀 불어넣어 줘 보세요.“
엄마가 어찌해주지 못하는 일도 있다. 아이의 쪼그라든 간은 엄마에게 받았으나, 담력 키우기는 아빠에게 맡기자. 어찌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엄마와 아빠 모두의 아이. 서로를 보완해 아이를 키울 의무가 있다. 아빠에게 떠넘기기를 주저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