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맞으며 종종거리다 실내에 들어오니 노곤하다. 가만히 앉아 눈을 반쯤 감고 사물을 노려보지 않으니 눈이 감긴다. 안쪽으로 점이 박힌 것처럼 꺼끌꺼끌하던 눈두덩이가 편안하다. 잠시의 쉼을 허락받으니 알겠다.
‘응시한다는 것이 참 고단한 일이구나. 그래서 눈을 그리도 자주 깜빡이며 찰나의 쉼을 수시로 허락받은 것이구나.’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구름 가득 머금은 회색빛 하늘에 잠시 머무르다 허공으로 떨어지는 빗줄기에 시선이 간다. 가느다란 빗방울이 하염없이 떨어져 내린다. 빠르게 떨어지는 비를 눈이 따라가지 못한다. 그 속도를 따라가려면 머리를 위아래로 정신없이 흔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눈에게 허락된 범위 안에서 눈동자를 부산하게 움직여 본다. 떨어지는 순간을 잡아채지 못해 가만히 한 곳을 바라보았다.
눈으로 비를 잡아 보겠다고 이 난리다.
내리는 비는 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만 처마에 모여 떨어지는 굵은 빗물만이, 유리창에 기대어 흘러내리는 빗물만이, 뾰족한 나뭇잎 끝자락에 맺힌 물방울만이 순간을 허락한다.
시선을 거두어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펴고 비를 맞이해 보라. 눈으로 잡을 수 없던 비가 손으로 곤두박질치며 스스로 잡힌다. 고작 몇 발자국 걸어 나가 비를 잡았다. 가느다란 빗방울의 순간들이 손바닥을 향해 쉼 없이 떨어진다. 비가 떨어지는 순간을 잡으려 이 비를 맞는다. 투명하고 빛나며 도도한 빗방울을 맨손으로 잡았다. 기쁨이 쉼 없이 살을 때린다. 비가 내미는 손과 내 손이 맞잡았다. 서늘함과 따뜻함의 화해. 비와 나누는 악수는 차디찬 환희다. 허상과 같이 떨어지는 가느다란 빗방울을 눈으로 잡을 수 없어 맨손으로 잡았다. 잡아서 무엇하게.
나뭇가지에 앉았던 새가 날았다.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고음으로 울부짖으며 쉼 없이 날갯짓한다.
저 새는 왜 비를 맞을까. 겨울새는 겨울비를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겨울비가 첫눈이 되어 내리고 있다.
2023년 첫눈이 내리던 날.
화가 나는 순간을 잡아 정지시키려는 노력이 아무 쓸데없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찬 겨울비를 맞아 보아야 그 온도를 안다. 화나는 순간도 온전히 나의 것이니 화의 온도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겨울비와 맞닿은 손의 온기가 화해를 한 것처럼, 용암 처럼 뜨거운 화도 내 피와 살을 휘저으며 따뜻한 온기를 가지기를 바란다.
전깃줄에 앉아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를 즐기며 사색에 잠긴 새 한 마리를 본 적이 있는가. 전깃줄을 오늘부터 올려다본다 한들 겨울새가 있을까. 이제는 봄이니 다가오는 겨울을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