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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n 11. 2024

도망은 망하고 망 씌우다



큰 놈 복이는 일요일에 수업이 있다. 매주 일요일 오후 시간 그래서 농부 아낙은 아들을 태우고 나간다. 공식적인 토낌, 줄행랑이다. 농사일이 중할까 아들 수업에 태워주는 게 먼저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수업이 없다. 아쉽게도 아무것도 없다. 공식적인 외출이 없어져 밭으로 가게 생겼다. 그렇다고 얌체 농부 아낙 밭에 나가 하루 종일 일을 할까. 느지막이 아침을 해 먹고 설거지는 밀어 두고 한잠 늘어지게 잔다. 점심을 건너뛰고 해가 지기 가까워지는 시간 느긋하게 일어나 밭으로 간다.


일을 할 때는 전문가답게 복장을 갖추고 고무망치를 휘두르며 지휘를 한다. 진딧물이 보인다며 농부 아빠에게 코치도 한다.


일요일 하루 고작 두세 시간 일하는데 할 일이 태산이다. 농부 아빠가 이미 예초기를 돌린 밭두렁을 둘러가며 낫 휘두르기. 생강밭에 거름을 뿌리는 게 쉬워 보이면 또 가서 하겠다고 손을 걷어붙인다. 고추 고랑에 제초매트 까는 복동이와 복이 옆에 가 고무망치질을 한다. 터널 망 씌운 데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일조했다. 혼자 하기 힘드니 농부 아낙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작물들 뿌리 옆에 난 작은 잡초도 제거해 주었다. 고추와 토마토 곁가지도 제거해 주었다.


쪼그리고 앉아 두어 시간 일을 했다고 온몸이 아우성이다. 아이고 삭신이야. 도망을 갔다면 농부 아빠 혼자 다 했을 일. 농사일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일 잠깐 하고 혼자서 뭘 다한 것처럼.


농사짓는 부모 밑에서 자라 농사라면 이력이 나는 농부아낙은 농사가 못마땅하다. 지난해  잠시 다니러 온 언니와 고추를 따면서 우리가 자발적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 줄은 몰랐다며 서로 하소연을 했다. (언니도 주말 농부다. 우리만큼 작물을 키운다.) 사람 사는 게 다 늘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끌려가는 농사이니 농부 아낙의 손은 늘 농부 아빠보다 느리다. 마음도 늘 부족하다. 공부도 부족하다.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열심히 해보자 다짐도 해보지만 쉽지 않다. 그러나 내가 택 하였으니 어쩌겠나. 순간의 선택이 중요하다. 시골살이를 하자고 한 것도, 농사를 짓자고 한 것도 내 선택이었다. 고개 한 번의 끄덕임, 긍정으로 주말 인생이 결정된다.


순간의 선택이 주말을 결정한다.
시골 행은 신중히!
농사는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밭에 나가 땀 흘리며 바람을 느끼며 새소리 들으며 하늘을 무한대로 살피고 흙내음을 맡는 일이 결코 싫은 건 아니다. 밭에 나가면 그 나름의 매력을 한껏 흡수한다. 그 맛에 또 나간다. 몸을 구부리고 작물에게 애정을 쏟는다. 얼굴을 적시는 땀방울과 시원한 바람의 어울림은 농부의 특권이다. 토마토는 열매뿐 아니라 토마토 줄기 자체에서 토마토 향이 난다. 작은 풀들을 손가락으로 쏙쏙 뽑는 느낌은 어린아이 장난 같고 낫을 휘두를 때면 세상을 다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망치질을 할 때면 비록 작은 고무망치지만 토르가 된 기분이 든다. 하늘을 향해 망치를 들고! 이러면 안 된다. 농사일을 좋아하는 게 분명한 농부 아낙. 그러나 도망가고 싶은 농부 아낙. 마음이 한 가지만 존재하는 게 아니니 괜찮다.


밭에서 도망가고 싶으나 밭에 나가면 좋은 농부 아낙 이런 타이틀도 괜찮다.




고추  씌우다


지난주 농부 아빠는 주말까지 참지 못하고 아침 출근 전 짬을 이용해 고추 망을 씌웠다. 고추를 심는 순간부터 걱정 근심을 내려놓지 못한다. 늘 날씨 정보를 확인하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단다. 비는 무슨 바람은 무슨. 파이프 50개 산 것이 모자라 50개를 더 사 와서 박았다. 파이프가 많이 들어가서 그렇지 나중에 고추줄 하나씩 묶어주는 것보다 편할 것 같다. 고춧대가 흰색 플라스틱 망 사이를 통과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고 한다.


줄에 묶여 있을 때는 비좁은 공간에 몸을 웅크리고 있어 보기 안쓰러웠다. 해마다 고추 끈은 총 세 번에 걸쳐 묶어 주었는데 그래도 넘어지고 쓰러지고 부러지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었다. 끈으로 묶어주어 모여 있는 가지들은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수확량도 적고 병충해도 많다고 한다. 사람도 그렇지만 식물도 그들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작물 사이의 식재 거리도 중요하지만 가지와 가지 사이 잎과 잎 사이 바람이 통할 공간이 필요하다.

고추망



고랑에 제초매트 깔다


흙을 뒤엎고 제초 매트를 깐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제초매트와 제초매트 사이로 고랑 좁은 공간에 빼곡히 풀이 올라온다. 풀이 더 크기 전에 제초매트를 깔아 주었다. 파릇한 풀이 지금은 예쁘지만 곧 무섭게 올라올 테다. 싹이 더 올라오기 전에 밟아놔야 한다. 맘이 아프지만 주말마다 바랭이 풀과 씨름을 안 하려면 어쩔 수 없다. 연두색 새싹이 올라와 보기 좋았는데 온통 깜장 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작물들이 빨리 자라서 깜장 매트를 얼른 초록으로 덮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고무망치를 들고 자유자재로 팔을 휘두른다. 시작점에 고정핀을 박고 둘둘 말아놓은 제초매트를 끝까지 편다. 끝을 당겨서 박아놓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양쪽으로 고정핀을 박아 나간다. 하루 이렇게 해 놓으면 가을까지 풀 걱정이 없다. 까만 밭이라 작물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주말 농부도 좀 살자.


까만 밭이랑에는 쇠막대기를 잔뜩 박아 놓고, 고랑은 쇠로 된 핀을 마구 박아 넣었다. 고추밭이 침침하고 살벌하다.

고랑에 50센티미터 제초메트 깔기




터널  씌우다


호박 크는 속도가 빠르다. 오이도 덩굴손을 뻗어 올라가야 한다. 참외, 복수박도 터널에 심었다. 토마토는 덩굴 순은 없지만 키다 많이 자라는 작물이다. 덩굴손이 잡고 올라가라고 터널에 망을 씌웠다. 처음과 끝을 찾느라 헤맸지만 다행히 멀쩡하게 씌웠다. 뭉쳐있을 때는 대략 난감했지만 어찌어찌 실타래가 풀린다. 술술 풀리고 짱짱하게 자리를 잡아매고 끝!

터널 망 씌우다

끝일까? 설마.




생강 모종 관리


농부 아빠는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돌본다. 생강모종에 물을 주고 밭을 갈고 풀을 정리한다. 생강 잎은 다 안 나왔고 비닐하우스 온도는 올라가고. 급기야 비닐하우스에 선풍기를 달아줬다. 작물들이 나중에는 에어컨을 쐬어야 하는 건 아닐까. 얘들아 농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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