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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화수집 15화

데자뷔, 복실이 드러눕다

by 눈항아리

인생은 회전목마, 쳇바퀴, 수레바퀴, 돌고 도는 인생사. 복실이가 또 드러누웠다.


2회전


복실이가 두 번째로 드러누운 날. ‘이것이 데자뷔로구나.’ 생각했다. 언젠가 있었던 것 같은 일. 매일 새로운 오늘을 맞으며 새로운 경험을 하지만 전에 한번 겪은 듯 어제와 다른 그런 일.


한 번의 경험이 있었던 터라 처음부터 단호하게 아이를 대했다. 눈을 감은 복실이는 듣는지 마는지 엄마의 태도가 바뀐 것을 아이가 안 것일까. 느리지만 혼자의 힘으로 밥상 앞에 앉았고 스스로 양치질을 했으며 스스로 옷을 입고 등교 준비를 했다. 한 번의 큰 소리도 내지 않고 처음 복실이가 드러누운 날과 같은 9시 5분에 교문에 골인을 했다. ‘얘들아, 화수집을 하더니 엄마가 드디어 성인의 경지에 오르나 보다.’ 그랬다. 가게 마당 목련이 첫 꽃망울을 터뜨린 날이었다.




3회전


그러나 인생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화신이의 장난일까. 오늘아침 복실이가 또 눈을 안 뜬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에서 꼼짝을 않는다. 어쩔 것인가. 화신이는 장난기 가득한 운동 코치 같다. 될 때까지 반복 훈련을 시키는 유치한 녀석. 반말을 해서 미안하다. 한 번으로 끝내자.



어젯밤 운동은 포기했다. 복실이를 위해서, 사실은 다리가 아파서. 시녀 정신으로 무장하고 공주님 모셔다 곱게 씻겨 머리까지 단장을 해 주었다. 소원하던 ’ 소파에 나란히 앉아 책 읽기‘를 하고 이른 시간 아름답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너는 왜 잠이 모자라다고 하는 것이냐.


고통은 반복된다. 삶의 굴곡도 반복된다. 화신이의 유치한 장난 같지만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배우는 길인지도 모른다. 내 몸과 마음이 체득할 때까지 나를 굴릴 작정인가 보다.


복실이가 안 일어나니 나도 누웠다. 잠도 왔다. 5시가 안 되어 눈이 떠졌으니 엄마도 잠이 올 시간이다. 손베개를 하고 주방 책상에 앉아 밥을 떠먹든지 말든지 10분 안에 해결하라고 하였다. “너의 지각이고 너의 배고픔이니 네가 행하여라.”우아하고 고운 말로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화르륵!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가며 말했다. 딱 하나 그게 잘못이다. 외치는 날 보고 남편이 릴랙스를 하라며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쓸며 신호를 보내줬다.


빠직!


화신이가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았는데 그게 보이겠는가. 더 크게 소리쳤다. “알아서 해!” 책상에 손베개를 하고 엎드려 잠깐 졸았던 것도 같다. 나야 정신 차리자. 아침이잖냐. 밥그릇을 정리하며 굳은 목소리로 이것저것을 명령했다. 한숨 잤다고 그 사이 화신이가 좀 얌전해진 것일까. 잠깐의 손베개 잠자기가 도움이 된 것일까. 이후 순조롭게 준비를 마치고 9시가 되기 3분 전 교문을 통과했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복실이 발을 질질 끌고 뒤로 걸어간다. 나도 발을 질질 끌고 출근을 했다. 아! 아침이 길다.


가게 마당 목련이는 묵은 겨울눈을 떨어뜨리고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도 고운 자태를 뽐내고 싶다. 어제는 바쁘다며 양말색깔 고를 시간도 없었다. 손에 먼저 잡힌 파랑 줄무늬 양말을 신고 출근을 했었다. 좀 덜 바빠지면 고와질 수 있을까. 덜 마른 머리에 수건을 싸매고 드라이기를 챙겨 오기도 하니 말 다했다. 나도 고운 귀부인 목련이면 좋겠다. 하얀 눈을 맞고도 우아한 달항아리 같은 곡선미를 뽐내는 한 떨기 꽃이면 좋겠다.



화신이 파악

조용하다 싶으면 수시로 찾아온다.
뜬금없이 찾아온다.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다른 이의 조언은 못 본 척 싹 무시한다.
반복 학습을 좋아한다. 공부를 잘할 것 같다.
같은 상황을 여럿 만든다. 좀 게으른가 보다. 같은 상황에 다른 반응을 즐긴다.
화신이는 회전목마를 좋아하는 게 확실하다.
또 모른다. 놀이기구를 다 좋아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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