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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화수집 17화

화는 수만 가지, 구르는 인생살이

by 눈항아리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근심만이 화의 원인이 될까. 매일 쏟아지는 화의 근원은 수만 가지나 된다.


남편의 서운한 한마디에 속이 상하기도 하고, 쏟아진 김칫국물에 열불이 나기도 하며, 엄청난 할 일에 한숨이 쏟아진다. 정리 안 되어 어수선한 거실 바닥을 볼 때, 빨래산을 볼 때도 그렇다. 빨간 기름이 잔뜩 묻은 그릇이 주황 물을 철철 흘리면서 쌓인 설거지 그릇 맨 위에 자리하고 있을 때는 천불이 난다. 친근한 벌레를 만났을 때는 왜 남편에게 원망 섞인 울음이 나오는지.


가족 속에서 집 안에서 나오는 화도 수두룩한데 친정, 시댁, 친구 등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마음의 불편함이나 화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때로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나무에게도 화를 내고, 내 발목을 잡는 날씨에게도 화를 내고,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지 않고 숨어버린 달님에게도 화가 난다. 밭일을 하며 눈을 감게 만드는 매서운 바람은 단골 화풀이 대상이고 따라오는 흙먼지는 상대도 하기 싫다. 황사로 뿌연 하늘은 그저 밉다. 지난겨울 하염없이 내리는 눈은 또 얼마나 원망스러웠던가.


자연에게만 그러할까. 무생물에게도 화를 내는 나다. 걸려 넘어뜨린 돌부리에 화를 내고, 허벅지를 콕 찍은 탁자 모서리에게 화를 내고, 앞치마 뒤를 늘 잡아채는 문고리에게 화를 낸다. 이렇게 반복되는 황당한 상황에도 화가 난다.


화를 수집한다는 것은 끝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근심, 걱정, 불안, 원망, 짜증 등 마음의 불편함을 만드는 모든 화의 모든 근원들을 나열하고, 수집하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없애는 것은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런 미세먼지 하늘 뒤로 파랑 하늘이 더 반가운 것처럼 불편한 마음 뒤 화를 내고 마음을 다스리며 진정한 삶을 배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치를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한숨을 내 쉬는 복이. 김치를 몇 번 뒤적이더니 몇 입 욱여넣었다. 밥을 다 먹고선 바로 자전거를 끌고 튀어버렸다. 9시가 넘어 10시가 되어가는데도 오지 않는 복이. 전화를 받지 않는 복이. 헬멧도 없이 나간 복이 자식.


엄마 퇴근 전 가게로 태연하게 돌아온 아이는 해맑다. 헬멧 안 쓰면 벌금이 20만 원이라고 얘기해 주니 귀를 기울인다. 법을 들이대는 심리가 그것이구나. 사실은 2만 원인데 너무 뻥튀기를 했나? 아무튼 법을 공부해야겠다. 권위가 막 올라간다.


경포호수에 갔었단다. 달밤에 호수 구경도 하고 참 좋았겠다. “사람이 있었냐, 차는 있었냐 “ 일상적이고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을 안전한 질문을 던졌다. 하고 싶은 말이 많기도 많지만 참아야 했다.






화신이는 내 마음에 자리를 잡고 나를 단련시키는데 힘쓰고 있다. 나 매일 이렇게 굴림을 당하는 거였나? 화신이는 화를 통해 삶을 배워가는 나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사악한 녀석. 역시 녀석은 웃음을 좋아한다. 삐딱웃음. 삶이란 삐딱선인지도 모른다. 치사한 삶. 주면 거저 줄 것이지 굴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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