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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화수집 19화

폭력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 1

by 눈항아리

폭력에 폭력으로?

폭력에 강압으로 무력 진압?

폭력에 벌을 내려라.

폭력에 반성문을 쓰게 하라.

폭력에는 대화로 풀어라.

폭력에는 비폭력으로 대하라.

자녀 간 폭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날은 폭력에 폭력으로 맞섰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이었다. 주먹다짐은 늘 힘들다. 피하고 숨죽이다 도망갔다. 아이들의 폭력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위세를 부리다 도망가 울어버린 엄마의 이야기.




아침 식사 시간, 사 남매의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둘째는 넷째의 손을 꽉 쥐었고, 그 와중에 첫째는 둘째의 다리를 손으로 툭툭 쳤다. 넷째는 셋째를 마구 때렸고, 셋째는 넷째의 가슴을 때렸다.


폭력 사태의 마지막, 가슴을 맞은 복실이가 운다. 엄마는 폭발했다. 가슴을 때리다니!


화르르륵!



때린 사람을 찾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며 “손들어!”를 시전 했다. 위엄을 주기 위한 무기도 하나 들었다. 밀대 걸레. 그 순간 네모난 밀대로 내리치면 고장이 날까 걱정이 되었던 것일까. 긴 장대 끝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한심한 엄마라니. 폭력 사태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엄마는 화신이에게 잠식되었다.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내리치듯 기다란 걸레 막대기로 바닥을 힘차게 때렸다. 걸레 꽁무니가 딱 소리를 내더니 맥없이 부러져 날아갔다. 이만한 힘에 부러져버리다니 힘없는 작대기 덕분에 화가 더 올랐다. 폭력 사태는 몹시 참기 힘들다. 내 폭력적인 모습에 더 화가 난다. 실망스럽고 복잡한 심경이다. 그러나 꿋꿋하게 밀대 걸레를 들고 서있었다.


폭력사태의 주범은 아이들에게서 엄마로 옮겨갔다. 어불성설이지만 당시에는 이 사태를 해결해 주지 않는 남편에게도 화가 났다. 나가기만 하면 일하느라 우리는 뒷전인 아빠. 그저 일하기만 바쁜 아빠. 화에 잠식당하면 모든 것에 불평불만이 생기고 암울해진다. 밥을 차리다 말고 소파에 가 앉았다. 유일한 도피처엔 빨래가 가득이다. 옆으로 밀어버리고 한 자리 차지하고 귀퉁이에 앉았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느라 제 길을 잃은 처량한 신세. 빨래와 나는 나란히 앉아 농촌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수선한 마당을 이리저리 다니며 구슬땀 흘리는 남편이 보인다. 밥을 먹으라고 한지가 언제인데, 마음먹은 일을 끝내기 전에는 절대 오지 않는다.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잡동사니, 소파 위 빨래, 어수선한 마당, 싸우는 아이들. 하루 쉬는 일요일은 뒤죽박죽이다. 나도 좀 아름답게 살고 싶었다. 아이들의 싸움은 이제 뒷전이다. 이 사태의 중심에 서게 된 나 하나를 수습하기 바쁘다. 화신이가 밉다.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살아보려고 처량한 내 신세와 똑 닮은 빨래를 갰다. 산처럼 쌓인 빨래를 다 개키고 나면 팔이 아플 테지만 꾸역꾸역 반듯하게 갰다. 꺼억꺼억 울음을 삼키며 조금씩은 뱉어내며 빨래를 갰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억울하고 억울한 빨래. 쌓여 있는 할 일만큼이나 많이 쌓인 빨래. 이것을 치우고 아름다워지리라. 복실이가 엄마 왜 우냐며 앞에서 옆에서 알짱거린다. 눈길도 주지 않고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 울면서 빨래를 갰다. 나갈까? 도망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 갈 데가 없다. 마음 쉴 곳이라고는 하나 없는 불쌍한 내 신세야. 신세타령을 한참 하고선 힘이 빠졌다. 오늘은 픽업도 무엇도 안 하겠다 선언을 하고선 들어가 누웠다. 저녁까지 내리 몇 시간을 잤는지 모른다.






글을 쓰며 목놓아 울던 그날이 또 생각났다. 또 울었다. 폭력의 현장에 홀로 내던져진 불쌍한 한 인간의 비애. 삶이라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던지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빨아 입고 다니는 내가 늘 가엾다.


그 옆에 있는 아이들은 당시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을 고민하고 내 화를 들여다보고 나서야 아이들 생각이 났다. ‘아차. 애들이 싸웠지. 난 뭘 한 거지?‘ 아이들은 항상 다툰다. 때리기도 한다. 맞기도 한다. 엄마는 사태 해결이 어렵다. 매번 아빠에게 넘기기도 어렵다. 폭력은 엄마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애초에 엄마가 해결하려는 것이 잘못일런지도 모른다.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아이들 저녁을 준비했다. 마트에 가 장을 왕창 봐왔다. 힘은 좀 빠졌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밥을 했다.






다음 날도 같다. 하지만 사회봉사 대신 묵묵히 가정봉사를 하고 있고 매일 자녀교육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자녀의 다툼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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