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화신이는 낮잠을 잔다. 엄마가 펑펑 울다 몸져눕자 집은 정적 속에 멈춰버렸다. 오후를 지나 저녁이 되며 먹다 남은 밥상은 그대로 보존이 되었다. 밥그릇과 수저엔 말라비틀어진 밥풀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시뻘건 김칫국물이 냄비 바닥을 드러낸 채 거실 공기와 한 몸이 되었다.
거실 문을 활짝 열었다. 밥상만 빼고 밥상째로 설거지 통에 넣었다. 물 샤워를 시켰다. 물에 한참 불려야 설거지가 가능해 보인다. 부러 김치국물이 철철 흘러넘치지 않게 배려한 것은 아닐 테고. 이번엔 굳어버린 음식찌꺼기에 울화가 터진다. 그러나 정말 묵묵히 설거지 그릇들을 옮겼다. 화신이가 잠을 자는 건 결코 아니다. 재운 척 굳은 얼굴로 마트에 다녀왔고 괜찮은 척 또 나의 할 일에 열중했다. 하루가 참 길기도 길었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아이들의 다툼에 대해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선에서 해결이 어렵다면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 유튜브를 열어 검색을 했다. 형제의 난리가 많기도 하다. 아이들이 전쟁터에서 사나 보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 싸움에 끼어들지 마라. 잘잘못을 가리지 말라. 편들지 말라. 단지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어라.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충분히 들어주어라. 부모는 다리 역할만으로 충분하다. 무엇보다 아이의 불편한 마음을 서로에게 표현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는 무게 중심을 잡으며 모두의 말을 들어주라고 한다.
맞다. 나는 다리만 놔주면 되는 거였다. 개울 물에 풍덩 뛰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 주객전도의 느낌이 있었다. 풍덩 드문드문 돌을 던져 놓고선 한가하게 개울물 흘러가는 소리나 즐기는 징검다리가 되는 거다.
편애는 안 되는데 티도 많이 나게 막내만 이뻐하니 여동생이 귀엽다가도 얄밉게 보였을지 모른다. 엄마가 잘못했다. 편애라니. 내 이쁜 새끼들 편애라니 백번 잘못했다. ‘내 감정 표현이니 어떠랴.’하며 나태하게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평등의 금이 깨지는 순간 부족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엄마는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일 전쟁터에 뛰어드는 아이들의 주먹다짐을 더 눈여겨보게 되었다. 다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평소 습관대로 ‘손들어!’를 먼저 시전 했다. 손은 왜 들으라는 건지 원. 총든 군인도 아니고. 소리치기 전에 자각을 하고 우선 두 아이를 분리시켰다. 사각 탁자 오른쪽 왼쪽에 각자 앉히고 엄마는 중간에 자리 잡았다. 복실이의 말을 들어주었다. 듣기만 했다. 그리고 달복이의 말도 들어주었다. 생각 외로 아이들이 평화롭다. 치고받고 울고 불고의 상황이 아니어서 그랬던 것일까? 다음번 전쟁 상황을 지켜봐야겠다. 아이들 서로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을 이야기하고 알아서 사과를 하더니 끝났다. 엄마의 중재도 필요 없었다. 중간 대장자리에 앉았으니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한마디 해주었다.
엄마는 평화가 좋아.
부모 교육은 일회성이다. 들어도 뒤돌아서면 또 잊는다. 생겨먹은 대로 또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를 테다. 그러나 기억하자. 엄마는 징검다리 역할만. 말은 줄이자. 그저 귀를 열어두면 될 뿐이다. 사랑을 가득 담은 그윽한 눈으로 아이를 쳐다보며 들어주자.
네 마음을 말해봐.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 구경 중 최고라는데 사랑을 장착한 귀를 활짝 열어두고 감상해야겠다. 무엇을 해주려고 하지 말자. 싸움을 하는 것도 싸움을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이들의 몫이다. 지금은 싸움을 말려 준다지만 언제까지 내가 싸움에 끼어들어 말려 줄 것인가. 아이가 스물이 되고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될 때까지? 싸움의 주체가 누구인지 잊지 말자. 각자가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갈 때까지 현명한 전쟁 생활 파이팅!
주먹은 현명한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부모가 폭력을 행사하면 몸소 폭력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꼴이 된다. 따라쟁이 아이들의 눈과 귀를 가릴 수는 없으니 엄마가 정신 차리자.
아이는 아이의 싸움을 나는 나의 싸움을 하자. 나에게 놓여 있는 많은 싸움들을 피하지 말자. 도망갈 궁리나 하는 나약한 사람이 되지 말자. 고통의 바다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지난 울음의 날을 기억하자. 나는 고통의 바다에서도 승리하는 사람이 되겠다. 비록 헤엄은 못 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