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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Apr 15. 2024

무시당하는 엄마

예스맨은 사절/ 대답 없는 너

예스맨은 사절


집으로 가는 길은 모두의 음악시간이다.


복실이는 음악 감상을 한다. 복실이가 하루 중 가장 조용한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시간이다. 음악을 즐기는 것이 분명하다. 복실이 옆에 나란히 앉은 달복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간다. 비음이 섞인 높은 음의 콧노래는 앞자리에 탄 형들의 신경을 긁는다. 조용히 하라는 나무람이 세차게 날아와도 흥겹다. 중간 좌석에 앉은 복동이는 음악을 켠다. 요즘은 빠르고 요란한 피아노 곡을 듣는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를 최대로 해놓고 틀어놓는다. 아 ~~ 시끄럽다. 빠른 템포의 음악 더군다나 피아노를 부수는 것과도 같은 음악은 내 체질이 아니다. 조수석에 앉은 복이가 음악을 먼저 켜면 복동이는 음악을 켜지 않는다. 두 개의 소리가 섞이면 음악감상을 할 수 없다.



형이 음악을 켜든 말든 복이는 자신의 귀에 스피커를 가져다 대고 듣는다. 귀가 한 순간에 망가진다고 몇 번을 말해도 자신의 음악에 심취해 스피커를 귀에 갖다 붙인다.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엄마를 위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소리에 취약하다. 평소에도 음악 듣기를 즐기지 않는 데다 집으로 가는 길 하루의 피로가 모두 쌓인 몸은 빠른 음악, 큰 소리가 짜증스럽다. 옆에 붙어 앉아 있는 복이는 그걸 배려한다고 귀와 스피커를 딱 붙이고 듣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다. 엄마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너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엄마는 잠자기 전에 들을 법한 조용한 피아노 곡을 좋아한다. 발랄하면서 통통 튀면서도 느릿한 피아노 소리가 좋다. 물론 잠자기 전에는 절대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음악 감상은 차에서 듣는 피아노 소리면 족하다.  그러나 그 소리도 집으로 가는 길에는 안 들렸으면 좋겠다. 귀도 좀 쉬고 싶다. 그러나 입은 말을 하고 싶다.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말을 못 했으니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아이들은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특히 조수석에 앉은 복이는 음악에 더욱 열중한다. 그리고 대답을 해야 할 타이밍을 미처 못 맞추고 만다.


복이는 예스맨이다. ”네.“를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 다만 엄마가 물을 때 엄마의 물음이 채 끝나기 전에 대답을 하는 게 문제다. 1초만 늦게 대답을 해도 완벽할 텐데 아이는 그것을 모르는가 보다. 아니면 일부러 엄마의 말을 끊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물음에 ”네.“라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오늘 밥은 맛이 있었?”

“네.”

“반찬 뭐가 나왔?

”네.”


이런 식이다. 기분이 확 상한 엄마는 핸드폰이고 음악이고 뭐고 다 치우라고 소리를 지른다. 운전 중 화를 내면 안 되는데 성의 없는 긍정으로 말꼬리를 자르는 아들에게 화가 나 그때부터 진정한 잔소리를 쏟아붓게 된다. 가끔 벌어지는 이러한 일상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는 집으로 가는 길이 아이들에게도 쉼의 시간이라는 점에 있다. 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가지만 아이들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음악이라는 쉼을 벗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알지만 엄마의 서운한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다. 도리를 가르쳐주기 위한 잔소리도 매번 반복이다. 피곤은 피곤이고 나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아들에게 무시당하고 사는 엄마는 서글프다. 엉엉

 


아이들도 쉴 시간을 주자. 할 말은 집에서 간단하게 묻자.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자. 내 말을 끊는다면 단호하게 말하자.


말을 끊으면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몹시 나쁘단다. 복아. 예스맨은 사양한다.



대답 없는 너


집에서 당하는 무시 중 가장 무시무시한 것. 엄마는 무시라고 느끼지만 아이들은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불러도 대답 없는 너. 너희들!


”복동아! “

“복아! “

”달복아! “

”복실아! “


대답뿐일까. 대답을 하며 바로 엄마 앞으로 와 정열 하기를 바란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가? 설거지를 하며, 거실을 휙 가로지르며, 청소기를 돌리며. 엄마는 늘 뭔가를 하며 아이를 부른다. 부르는 이유야 뻔하다 집안일을 하라는 것이다. 대답을 하고 싶지 않겠지. 일을 하고 싶은 녀석이 누가 있겠는가. 저도 바쁘다는 것을 안다. 보고 있던 쇼츠를 마저 봐야 하니까. 하고 있던 게임을 끊을 수가 없어서. 만화책을 덮을 수 없어서. 엄마가 일을 시킬 것이 뻔한데 그것을 하기 싫어서. 한 명이 안 오면 다음 타자를 부른다. 미루기 대장들 자신의 이름을 못 들은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엄마의 인내심은 바닥이 난다.


맛있는 걸 준비하면 냄새가 풍기기도 전에, 누가 부르기도 전에 모이는 녀석들. 치사한 자식들. 무시를 당하지 않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다. 맛난 것, 재미난 것을 많이 만들어야 하나? 사춘기 소년, 소녀들에게 재미난 것이란 뭘까. 그저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것. 그리고 가끔 기분을 북돋워주는 사식만 넣어주면 되는 걸까. 아빠가 밖에서 고기 굽는 준비만 해도 젓가락에 쌈장까지 준비해서 나오는 현명한 녀석들에게 일만 부려먹는 엄마의 존재감은 뭘까.




괄시가 아니라서 다행인가. 무시에 무시로 답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 나는 엄마라서 오늘도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래도 할 말은 하자.

말을 끊지 마라.
대답하라 오바!
집안일은 엔 분의 일!


그러나 우리 집 아빠는 집안일에서 제외다. 왜? 바깥일이 너무 많다. 그것 만으로도 아빠는 힘들다. 마음에서 제외된 남편의 자리를 채울 길이 없는 이 허전함. 집안일은 그래서 늘 펑크가 나는 것은 아닐까. ㅋㅋ 자리에 없는 자에게 덤터기는 늘 자연스럽다.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스스로 배운다. 아이들이 집중하고 있을 때는 부르면 안 된다. 시끄러운 일을 할 때는 불러도 안 들릴 수 있다. 무시가 아니다. 아니다. 엄마 스스로 쪼그라든 마음을 챙기자. 맛난 먹거리를 무한 생성하자.


배움의 길은 찬란하다. 엄마의 잔머리는 굴러간다. 굴려 굴려. 어제는 마트에 가서 간식을 많이 사 왔다.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사 왔다. 학교 가면서 챙겨 가라고 초고바, 참붕어빵, 미니과자 6개입도 담아왔다. 달달한 간식을 챙겨 주는 건 할머니 몫인데...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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