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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Apr 29. 2024

편애하는 엄마

오이는 냉장



물을 냉동실에 넣으면 얼음이 된다. 야채를 냉동실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


“복아 오이 좀 냉장고에 넣어줘!”


“복아 김은 냉동에 넣어주고!”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복이. 잘할 수 있을까? 당연히 우리 복이는 잘할 수 있다. 중 1 오빠니까.



엄마의 시선 왼쪽 3미터 앞에 복이가 서 있다. 오이와 김을 들고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엄마의 오른쪽 3미터 앞에는 복실이가 있다. 복이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동안 복실이가 2층 계단에서 내려온다. 아빠가 새로 만든 계단은 계단판이 좁고 경사가 조금 가파르다. 며칠 전 엄마가 넘어질 뻔했다. 가파른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오는 복실이에게 앞을 보며 천천히 내려오라고 하며 온 신경이 가 있었다. 그 사이 복이는 뭐라 뭐라 하는데 엄마 눈은 온통 복실이의 발 끝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아이는 기분이 상했다. 심부름도 시키면서 자신은 늘 뒷전이다. 복이는 재차 묻는다. 오이를 대체 어디에 넣느냐고 성화다. 엄마는 냉장이라고 한마디 해주면 될 것을 복실이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라고만 했다. 동생이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재촉을 하다니. 잠깐을 못 기다리는 녀석의 조급함에 엄마는 짜증 섞인 목소리를 뱉어 버렸다.


복실이가 계단을 다 내려오고 나서야 엄마는 복이에게 다시 물었다.


“뭐라고?”


“오이 어디에 넣냐고. “


“오이를 냉동에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


어이가 없어서 아이에게 재차 오이가 냉동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말해보라 했다. 대답을 할 리가 있나. 복이는 그냥 어디에 넣는지 대답이나 해달라며 짜증을 부린다.


설마 냉장과 냉동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설마 설마. 설마가 맞을지도 몰라. 물, 아이스크림, 얼초도 냉동에 얼려 본 아이인데. 때로는 장바구니 정리도 해 주는 멋진 아들인데 설마 오이를 어디에 넣는지 모를 리가. 야채를 싫어하니 오이의 저장법에 대해 모를 수도 있나? 맞다. 아이는 오이를 싫어한다.


당시에는 복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복실이가 아니꼬워서 그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소중한 자아를 키워가고 있는 복이는 엄마의 시선 앞에 놓인 자신과 동생의 처지를 한 번 돌아봤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그저 복이가 중 1씩이나 되어서 덜 떨어졌나 싶었다. 냉장, 냉동에 들어가는 음식의 종류도 모르냐며 윽박을 지르고 싶었지만 ‘설마... 모를 수도 있지. 오이를 내동에 넣을 수도 있지 뭐.’ 최대로 인내심을 짜내어 간단하게 대답을 해줬다. 이를 앙 물고.


냉장


대답을 들었으나 여전히 불쾌한 얼굴은 펴질 줄 모른다.  





과연 그 순간 일 순위는 안전이어야만 했을까?


왜 늘 복실이가 먼저일까? 오른쪽, 왼쪽 눈앞에 아이 둘을 놓고 한 명을 골라야 하는 상황. 위험 상황을 제쳐놓더라도 나는 막내 아이에게 먼저 답을 했을 거다. 어려서, 여자라서, 예뻐서.


맞다, 나는 편애하는 엄마다.


막내 복실이를 이뻐하는 건 집에서 비밀도 아니다. 주는 것보다 더 크게 돌아오는 사랑에 취해 다른 아이들에게 아픔이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아니면 그냥 외면했던 걸까?


편애가 아이들에게 상처라는 것을 내가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상황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 그래서 그때 복이 표정이 안 좋았구나. 그렇게 퉁명스러웠구나. 불만이 가득했구나.’  


글을 안 썼더라면 몰랐을 테다. 나는 오늘 오이와 냉동실에 관하여 쓸 예정이었으니까.  되짚어 본다는 것은 여러 상황을 다시 살펴보고 상대의 마음을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또 내 마음도 한번 더 다듬어 본다. 복이는 오이가 냉동실에 들어가면 못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고 있을 것이다. 설마 모를 리가. 우리 복이는 똑똑하다. 항상 복실이가 먼저인  엄마에게 화가 났을 뿐이다.


중 1씩이나 되어서 엄마의 사랑을 원한다고? 당연하다. 중 1 복이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단 한 사람이다. 엄마는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만 중요해서 아이의 마음을 외면해 버리는 잘못을 해 왔다.




‘첫째에게 동생이란 남편이 새 여자를 집에 데려오는 것과 같은 충격이다.’

둘째를 복이를 가졌을 때 사람들이 그랬다.  그땐 그런 말이 유행했다. 어느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지만 첫째의 처지를 유난히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그럼 둘째는? 귀가 얇은 엄마는 지금의 막내에게 주는 한없는 사랑을 복이에게 마음껏 주지 못했다. 아이는 엄마의 무한한 사랑을 먹고 자라는데...  


막내 아이가 태어나면서 엄마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하기로 했다. 내 사랑을 내가 퍼준다는데 누가 말릴 것인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마음껏 퍼주자 생각했다. 그 사랑이 동생들에게만 가 버려서 복이는 또 마음이 아팠을 테다. 그게 잘못인 줄 몰랐다. 내 자유로움의 표현이라 생각하고 마음껏 사랑했다. 그게 편애인 줄 생각도 못하고 있던 엄마였다.


부모의 양육 태도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 부모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아이의 인생이 좌우된다. 지난 시간 동안 바뀐 내 양육태도를 보자면 우왕좌왕 갈팡질팡 갈지자를 그리고 있다. 중심 없이 주관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며 내 마음 가는 대로 아이들을 키웠다. 자녀가 커가면서 엄마도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늘 초보 엄마였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철들 것인가. 다행인 점은 이제라도 잘못을 알아채고 돌아보고 있다는 것이다.


네 명의 아이, 누구 하나에게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어떻게 엄마의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비라면 하늘에서 고루 뿌려주면 좋으련만. 비도 오는 곳 안 오는 곳이 있으니 골고루라고 할 수 없을까?   


아이에게 부모의 사랑은 늘 부족하다. 그건 부모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이가 넷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막내에게 쏟아부어 주는 무한과도 같은 사랑도 아이는 늘 부족하다고 한다. 사랑은 갈증과도 같다. 목이 엄청 마를 때 한 컵의 물을 나누어 마시는 경우와 같다. 물 한 컵을 나누어 마시면 갈증이 해소될까? 혼자 한 컵을 다 마신다고 갈증이 가실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엄마의 사랑은 네 명의 아이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게 아닌 것 같다. 아이 한 명 한 명이 자신이 오직 엄마의 사랑을 다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듬뿍 몰아줘야 한다. 컵 속의 물이 철철 넘치게 마셔야 갈증이 가신다. 특별히 너만 챙겨준다는 뉘앙스를 솔솔 풍겨줘야 한다. 너만을 위한 커다란 무한 물통이 옆에 대기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줘야 바싹 마른 사막 같은 환경에서도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야 자신이 마시고 남은 물을 주변에도 나누어 줄 수 있다.


복이에게만 넘치게 주라고? 절대 아니다. 모두가 자기만 특별히 무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해주는 부모의 기술이 필요하다. 모든 자녀가 그렇게 느끼도록 해줄 수 있는 기술. 그것이 있기나 할까? 아~~~ 갈 길이 멀다.



그러기 위해 세심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 줄 수 있을까.


특별히 사랑한다고 말해주기
특별히 간식을 챙겨주기
특별히 용돈을 챙겨주기
매번 ”No."라고 말하는 대신 "Yes."라고 대답해 주기.


복이와 관계 개선을 위해 요즘은 전화 통화 끝에 ”사랑해! “라고 말해준다. 중1 청소년어린이도 싫지 않은지 “응~”이라고 대답해 준다. 절대 다른 형제들처럼 “사랑해~”로 답해주지 않지만 “응”이라는 대답도 괜찮다. 이건 절대 건성이 아니다. 처음에는 부끄러움을 담아 수줍게 말했지만 강력하고 묵직한 음성의 “응”으로 바뀌고 있다.


간식과 용돈은 특별히 챙겨주기 편리하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은 무한으로 해 줄 수 없다. 매일 달달하고 시원한 에이드를 종류별로 먹였더니 당이 과다해질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용돈도 과하면 안 된다. 안 그래도 돈관리를 못해서 흘리고 다니는데 (오늘 한 주 용돈을 잃어버리고 온 아이는 기분이 저조했다) 용돈 계획은 가끔만 써야 효과가 있을 것 같다.


Yes 계획은 엄마도 한 번에 바꾸기 쉽지 않다. 그래도 이제 복이가 자전거 애마를 끌고 나갈 때면 대부분 긍정을 해주는 편이다. 차차 바꿔가고 있다. 건성으로 “네”라고 답하는 아이에게 진심의 “Yes"를 해줘야 하는 엄마는 참으로 억울하다. 아이의 태도도 천천히 바뀔 거라 생각한다.




아이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안다. 세상의 중심에 서서 오롯이 혼자 사랑받기를 원한다. 부모는 그런 자아도취 아이에게 넘치는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잘 전달해 줄 의무가 있다. 임무가 막중하다.


눈앞에 네 명의 아이가 있다. 엄마는 네 명에게 모두 사랑의 눈빛을 쏘아 보낸다. 모두에게 쏘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와 자신만의 유리막으로 된 해저 터널을 만들고 일 대 일로 소통하기를 바란다. 해저 터널을 짧게 뚫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는 여러 곳으로 좀 통하도록 뚫어주기를 바란다. 아니면 물 밖으로 새로운 통로를 만들도록 하자. 그것은 엄마가 뚫을 길일까? 터널도 뚫어야 하니 참 과중한 임무 같다. 그러나 해야한다.


아이가 만든 터널에서 들려오는 신호를 잘 알아채기 바란다. 복이는 오이를 싫어하지만 야채를 야채칸에 넣는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다. 오이는 냉장이라고 먼저 친절하게 말해 줄 것을... 복실이에게 2층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할 것을...




오이를 냉동에 넣으려는 아이에게 화를 내려다 편애하는 엄마를 현장에서 잡았다. 화를 수집하기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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