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복이는 머리가 크다. 어릴 때부터 넘어지면 머리부터 부딪혔다. 운동신경이 남달랐다. 꽝이다. 금세 피곤하여 놀이터에서 조금 놀다가도 힘들다며 엄마 옆에서 쉬곤 하던 아이였다. 소풍을 간 다음 날은 어김없이 아팠다. 일상 속에서 체력이 달리는 아들이었다.
그런 아이도 어릴 적부터 꾸준히 해온 소소한 활동이 있으니 자전거 타기다. 운동이라고 하기에는 속도가 느렸다. 느림보의 대명사 우리 집 마스코트 되시겠다. 네 살, 지금 나이로 세 살. 가장 작은 바퀴에서 시작했다. 두 살 위 형이 속도감을 자랑하며 타면 복이는 천천히 꾸역꾸역 페달을 밟아갔다. 팔, 다리, 머리에 보호장비를 하고도 군소리 없이 자전거를 끌고 다녔다. 자전거 바퀴가 커지면서 아이도 자랐다. 열세 살이 된 아이는 이제 제법 자전거를 탄다. 10년 세월을 탔으니 안 따라주는 몸으로 끈기만은 대단하다 하겠다.
지난해 여름 엄마 차의 깜빡이 보호를 받으며 도로 연수를 받았다. 3.6km 거리에 있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까지 아빠, 형과 셋이서 달렸다. 차가 옆으로 지나가면 비틀거리며 논 밭에 처박힐까 엄마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그 후 복이는 자유로운 자전거 영혼이 되었다. 올 3월에는 홀로 자전거를 타고 마트 나들이를 감행했다. 그 뒤를 가족 모두 따라갔다. 혼자 이루어낸 성과에 아이는 무척이나 뿌듯했나 보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더니 얼마 전 사달을 냈다.
“아들 어디야?”
가게에서 자전거를 끌고 나간 녀석이 소식이 없다. 아빠와 엄마 둘 다 일 하는 와중에도 아이의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하니 집이란다. 가게에서 집까지 15km. 차로 20분이 걸리는 거리다. 해안 길로 달리며 3월 매서운 바닷바람을 뚫고 맨손으로. 게가 어디라고!
화르르륵!
다행히 아빠가 통화를 해서 조심히 갔냐 잘했다로 마무리되었다. 아빠는 아이가 참 대견한가 얼굴에 웃음이 가득이다. 옆에 있으니 나도 약간은 동화되어 아이가 대단하다 싶었다. 그러나 이내 마음 깊숙이 자리한 걱정과 불안을 꺼내 근심 가득 혼잣말 대잔치를 시작했다. 그 사이 남편은? 자전거 장갑을 주문하고 앞, 뒤 자전거 라이트를 여러 개 주문했다. 걱정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빠와 엄마가 참 다르다.
“안전모도 없이 자동차 쌩쌩 달리는 도로를 혼자서 그 먼 거리를 가다니! 혼자서! 말도 안 하고! “ 걱정 어린 생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한편 가족 중 누구도 못 달려본 거리를 혼자 시도해 보다니 멋지다 생각했다. 한번 정도야 뭐 그럴 수도 있지.
한 번이 아니었다.토요일 오전 출근하는 아빠 트럭에 어김없이 자신의 애마를 번쩍 들어 조심히 실었다. 평일에는 하교 후 가게에 들러 자전거를 타고 학원 통학을 하며 심심하면 자전거 놀이를 하고 다녔다. 바닷가까지 나들이는 평이한 수준이었다. 머리 다 큰 아이, 어디를 다니는지 감시를 할 수 없으니 그저 믿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하루는 하교하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이것저것 당부의 말을 했다. (집에 갈 적에는 복이가 엄마 조수석 담당이다.) 아이에게는 집으로 가는 20분이 음악감상 시간이라 음악을 듣는다. 뒷자리에 탄 형의 음악이 마음에 안 들면 자신의 음악을 켜고선 핸드폰 스피커를 귀에 딱 대고 듣는다. 딴에는 운전자가 운전에 집중하도록 배려하는 차원인 것도 같지만 그것 또한 잔소리감 1순위 대상이다.
잔소리를 유독 싫어하는 청소년 어린이 엄마가 자전거 안전 이야기를 시작하자 얼굴부터 찌푸린다.
“안전모를 꼭 써. 도로교통법에도 쓰게 돼 있어. 사고가 나면 꼭 전화를 해야 해. 네가 다쳤든 상대가 다쳤든 상대 차가 긁혔든 네 자전거가 망가졌든 절대 당황하지 말고, 도망가지 말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 해. 네가 다쳐도 말을 안 하면 안 돼. 잔소리 듣고 야단맞을까 봐 다친 걸 숨기면 안 돼. 다친 건 잘못한 게 아니야. 타이어가 펑크가 날 수도 있으니 꼭 전화를 가지고 다녀. “
귀를 막고 있던 아이는 얼굴이 더욱 구겨지더니 음악을 크게 틀어대며 짜증을 냈다.
”됐어! 안 타고 다녀! “
이제와 생각하니 엄마의 주절주절 잔소리가 삐딱한 청소년 어린이를 만드는 것 같다. 한 마디만 할 것을.
걱정만 한 가득인 엄마는 아이의 성장을 막는다. 연습하자.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전화를 해.
안 타고 다니기는 무슨. 지난 일요일 아침 복이는 자전거를 타고 15km를 또 달렸다. 이번에는 집에서 출발해 가게까지. 자유를 만끽한 아이는 요즘 싱글벙글이다. 매서운 봄바람을 맞으며 온 동네를 누비는 멋진 녀석. 뚱하면서도 냉정해 보이는 얼굴은 없어지고 여드름 투성이 헤벌쭉이가 됐다. 우리 멋진 차도남 어디 갔냐.
중학생이 되더니 없던 자발성이 마구 튀어나온다. 자꾸 무슨 궁리를 한다. 엄마는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 걱정이 태산이다. 걱정의 99퍼센트는 일어나지 않는다.(카네기 책에서 그랬다) 걱정을 사서 하지 말자.
불안, 걱정, 잔소리는 화신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선물세트다. 걱정할 시간에 장비를 챙겨주는 남편을 배우자. 잔소리는 한 마디로 강력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