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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화수집 14화

콩나물 복합예술

by 눈항아리

아이는 배가 고프다. 6시가 다 되어 일과가 끝난다. 복실이와 학원 계단을 내려오며 보통 먹는 이갸기를 한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엄마는 밥반찬을 말하는 건데 아이는 간식류나 라면을 말한다. 나오자마자 보이는 와플 가게는 자주 들르는 방앗간이다. 그날은 짜파게티가 먹고 싶다고 했다.


밥을 먹어야 할머니 집에 데려다준다고 으름장을 놓은 다음 가게로 와 콩나물국에 반찬 몇 가지를 차려 줬다. 배가 고팠는지 평소의 식성대로 빨간 고춧가루를 확 풀어 시원한 콩나물국 국물도 후루룩 퍼먹고 한국인 입맛 돋우는 김치도 척척 얹어 밥을 잘도 먹었다.


몇 술 뜨던 아이는 제법 배가 차는지 행동이 느려진다. 재미있는 것을 그사이 발견한 것일까. 콩나물 하나를 포크에 찍어 허공에서 데리고 논다. 식탁 바닥에 눕혔다 다시 찍어 공중제비를 돌린다. 밥을 먹다 예술혼을 발휘하는 복실이. 복합예술의 기틀을 마련할 모양이다. 콩나물로 그림을 그리고 곧 탈춤도 춘다.


화르륵! 정지!



정지의 순간을 잡기 위해 핸드폰을 찾았다. 화수집에 사진만큼 강렬한 것은 없다.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콩나물은 포크에서 해방되어 바닥으로 하염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복실이는 아랑곳 않고 새로운 콩나물 줄기를 포크로 집더니 식탁에 사뿐히 놓는다. 다시 새로운 콩나물을 하나 찍어 십자가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는 듯 식탁 위를 서성거리다 엄마에게 가로막혔다. 빼앗긴 포크. 빼앗긴 예술혼이 빠르게 식어 버렸다. 빼앗긴 콩나물 줄기는 엄마 손에 잡혀 사라졌다. 화수집을 한다며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의 장난을 관찰하는 엄마도 우습다. 밥을 먹다 웬 장난질인가. 평소라면 먹는 걸로 장난친다고 혼꾸녕을 냈을 텐데. 그나마 손으로 멈추어서 다행이다.


혼나는 순간을 아이가 먼저 안다. 복실이는 똥이 마렵다며 밥을 먹다 말고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밥을 반이나 남겨두고 토낀 똥 마려운 강아지 녀석.


10시가 넘어 오빠들이 야식으로 라면을 끓였다. 복실이는 큰오빠에게 자신의 짜파게티를 당당하게 요구하여 한 그릇을 얻어먹었다. 혼자 김치도 척척 얹어 잘도 먹었다. 어디가서 굶지는 않겠다.




밥투정, 반찬 투정 15년 경력이면 이력이 날 법도한데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아이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라 마음을 내려놓기 쉽지 않다. 건강이란 몸뿐 아니라 마음 건강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아이와 짜파게티와 밥의 경계를 함께 정하도록 해야겠다.


먹는 것으로 장난치는 것은 따끔히 가르치자. 배곯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의무가 있다. 농사짓는 부모 밑에서 커 수확의 어려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는 몸소 체험하며 쌀알의 소중함을 배웠다. 지금도 친정집에 가면 밥그릇에 붙은 밥알을 깨끗이 긁어 먹으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는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이란 콩나물로 예술을 한다고 머리를 콩 쥐어박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의 소중함을 몸소 알려주는 것일 테다. 판단은 아이의 몫이다.


그럼 먹는 것으로 만들기를 하는 것은 어찌 이야기해야 할까. 그것은 먹는 분야가 아닌 예술의 분야로 넘기자. 부모가 모든 분야를 섭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콩나물 예술이라는 복합 예술 분야가 생겨날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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