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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화수집 13화

디지털 노마드 복동이

by 눈항아리



디지털 노마드 : 첨단 디지털 장비를 갖추고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일하는 사람. 또는 그런 무리. 출처 : 우리말샘


중3 복동이


PC방을 간다.

닌텐도 게임을 한다.

할머니 집에서 롤을 한다.

핸드폰을 수시로 한다.

핸드폰 게임을 안 하니 다행이나 유튜브, 쇼츠를 무한 반복한다.

집에서 핸드폰 하기 눈치가 보이면 컴퓨터를 켜서 검색질을 한다.

등굣길 차 타고 갈 적 아침에는 예의상 참아본다.

저녁 하굣길에 음악 감상을 한다. 요즘은 피아노 연습곡 쇼팽이다.

참 잘 논다.



시간표를 챙겨 보지 않는 엄마는 아이들의 들고 나는 시간을 잘 모른다. 순전히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니다. 대충 안 오면 전화를 한다. 중학생인 아이들 학교, 학원 일과까지 마치고 나면 기껏 남는 시간이래 봤자 한두 시간이 전부다. 일주일에 두어 번 될까? 저희들 놀 시간도 있어야지. 친구도 만나고 놀아야지. 엄마 국민학교 다닐 적에도 매일 골목길을 누비며 뛰어놀다 깜깜해야 집에 들어왔는데 중학생인 아이들 좀 풀어주는 것쯤이야. 어릴 적 늦게 들어오며 엄마에게 야단맞을까 긴장했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 터라 아이들 들고 나는 시간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멋진 엄마라 생각했다. ‘그저 좀 늦는 것 같은데 왜 안 올까?’ 생각이 들면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아주면 고맙고 안 받아주면 ‘곧 오겠지.’하는 쿨한 엄마. 그런 엄마이고 싶었다.


학기 초에는 시간표가 정착하기까지 1~2주 정도 여유가 필요하다. 3주가 지나가지만 매일 아침 등교 준비 시간에 하교 시간을 재확인한다. 들어도 금방 잊는 하교 시간표 확인해 봤자 별 필요가 없다. 필요하면 그때 가서야 앱을 뒤적거리는 함량미달 엄마. 필요하다는 것은 아이가 사라지거나 아이가 제 시간이 되었는데도 정해진 장소에 없다는 것. 큰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끝나는 시간을 찾아 나선다. 그도 그런 것이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은 밥 먹는 시간부터가 다르다. 끝나는 시간이 다른 것이야 이해하지만 밥시간부터 달라지는 시간표 변동은 아이 넷을 줄줄이 초등학교에 보냈지만 넘지 못한 산이다. 관심 부족일까. 평소에는 필요 없는 시간표도 저학년 아이가 일찍 끝나거나 학원 차량이 안 되는 날은 난감한 경우가 있다. 1시, 2시 얹저리쯤은 알지만 정확한 시간을 모르는 경우 일찍 가서 교문에 죽치고 앉아 있기도 했다. 늦은 첫날 초등 1학년이었던 복실이는 교문에서 울고 있었다. 나중에 적응이 된 아이는 얌전히 기다리곤 했지만 말이다.


스스로 관리가 되는 부모라면 아이 끝나는 시간을 기억하자. 나는 어쩔 수 없는 이 허술함이 좋다. 일 핑계를 여기서 대 본다. 대신 돌봄과 방과 후, 학원으로 연결되는 시스템을 100퍼센트 이용하고 있다. 아이들 신학기 적응 기간이 끝나면서 시스템은 잘 돌아가고 있다. 아프지만 않는다면 제대로 굴러갈 테다.


초등도 이러한데 중학교 시간표를 줄줄이 꿰고 있을 엄마가 아니다. 요즘은 학원도 매일 가는 게 아니다. 매일 가는 학원이 있고, 일주일에 세 번 다니는 학원이 있다. 학기마다 요일과 시간표가 변동이 되니 정리해서 문자로 아이가 전송해 주지 않는 이상 말로 해서는 듣고 흘려버리기 일쑤다. 자신의 시간표를 보내줄 아들도 아니다. 모두 뭉뚱그려 8시쯤이면 다 모이는 아이들. 밥은 오는 순번대로 가게에서 줄줄이 차려주니 이제는 그것도 이력이 난다. 뷔페 상차림으로 보통 반찬 서너 가지를 늘어놓고 식판에 퍼주고, 또 어느 날은 카레밥 같은 일품식단으로 준비한다. 일하며 밥을 챙겨줄 수 있는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렇게 바쁜 엄마에게 시간관리 비서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중학생 큰 아이들은 바쁜 스케줄에 따라 이동하는 길에 간식도 편의점에서 알아서 먹고 다니니 챙겨 줄 일도 없다. 그저 밥시간이 되면 찾게 되는 중학생 아들의 하교시간. 아들이 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안 와 긴가민가 하며 전화를 했다.


아이가 말없이 PC방에 갔다.


“아들 어디야?”


“카톡 보내놨는데?”


어디냐 묻는 말에 카톡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빠직!


소음 속 부산하게 들리는 자판기 두들기는 소리로 보아 PC방이 분명하다. 왜 PC방이라는 소리를 안 하고 카톡 타령일까. 엄마는 카톡을 보지도 않는데. 카톡은 확인을 잘 안 하니 문자를 보내라며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해댄 것 같다.




복동이가 또 말없이 PC방에 갔다.


며칠 후 아이가 올 때가 다 되었는데 안 온다.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는 까맣게 잊고 궁금하여 카톡을 보냈다.


“왜 안 오냐? “

“잉 문자보냈는뎅“


화르르 정지!


우수수 쏟아놓은 잔소리를 스스로도 기억 못 하는 엄마.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어긋나고 있는 거냐. 밥은? 라면으로 먹었다는 아이.

빠직!


기분이 상했다. 저녁밥 챙겨주는 걸 투덜거리면서도 아이가 밖에서 라면으로 해결했다니 그건 그것대로 또 서운하다. 아들에게 밥을 사랑과 정성을 담아 거저 해주어야지 늘 일하느라 바쁜 시간에 와서 밥을 달라는 아들에게 투정을 부렸던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우리의 PC방 약속 시간 9시를 몇 분 남겨두고 돌아온 아이는 핸드폰 삼매경이다.


‘즐겁냐? 배는 안 고프고? 숙제는 없냐? 그 학교는 어떻게 숙제도 안 내주냐?‘


공부는 학교와 학원에서 한다는 복동이.


21세기형 준비된 인재 디지털 노마드로 너를 임명한다. 인재님! 눈은 크게 시야는 넓게! 그리고 밥은 집에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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