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라 늑장을 부리다 가게 오픈 시간을 앞두고 시간이 빠듯해진 우리. 웬일로 남편이 꼬마 둘을 태우고 가겠단다. 아빠 차를 타고 가자니 잠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꼬마들. 세수는 제쳐두고 스스로 외출복 곱게 갈아입고 추우니 두툼한 패딩으로 하나씩 껴입고 숙제 가방까지 챙긴 후 쌩하니 나갔다.
아빠 트럭을 왜 그리도 좋아하는지. 나는 많이 안 타봐서 좋은지 모르겠다. 차체가 좀 높아서 풍경이 잘 보이나? 엄마 차를 타면 뒷자리에 타야 하니 앞자리만 있는 트럭은 경치 구경하기 좋기는 하겠다.
찬 바람이 갑자기 후욱 불어왔다. 도롯가 억새가 밀빛과 은빛으로 나부끼더니 하루 이틀새 하얗게 피었다. 앞차가 지나가며 일으키는 먼지바람을 타고 파도치듯 굽이굽이 물결 바람을 흥겹게도 만들어 낸다. 언제라도 하얀 솜털이 뚝뚝 떨어져 후욱 불면 날아가겠다.
갈대는 갈바람 따라 갈빛의 노래를 준비한다. 초록 들깨는 시름시름 앓는 것 같이 힘이 없다. 폭우에 한 번 누웠고 추위에 연둣빛 누리끼리한 색깔로 변하고 있다. 들깨를 익히려는 계절의 오묘한 변화지만 초록 깻잎이 싱그럽고 좋았는데 아쉽기도 하다. 감나무에 푸르뎅뎅하던 감이 누런빛으로 변하며 존재를 알린다. 건너편 벚꽃은 노랑잎을 열매처럼 매단 지 한참 되었다. 이제는 그 잎을 바닥에 뚜욱뚜욱 떨군다. 은행잎도 노랑 옷 갈아입을 준비를 한다.
수확철 시골길은 가을걷이하는 농부의 트랙터가 길을 막기 예사. 들녘을 가로지르며 벼 베는 손길이 분주하다. 빈 논에 백로가 드문드문 하얀 자태를 뽐낸다. 긴 부리를 진흙밭에 처박고 먹을 걸 찾아내는 모습도, 푹푹 빠지는 논바닥을 느릿느릿 걷는 걸음걸이도 선비처럼 고고하기 짝이 없다.
먼저 지나간 꼬마들은 재잘거리며 이 풍경들을 눈에 담았을까? 엄마 차에 올라탄 큰 녀석들은 가을의 정취는 아랑곳 않는다. 가을이 좋은 줄은 모르겠으나 기나긴 방학과 같은 연휴를 맞아 신바람이 난 건 분명하다. 엄마는 이곳에 차를 세우고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걸 마음에 좀 더 담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은 자신들 세계의 언어로 대화하며 이미 마음은 게임방에 가 있다. 가끔 들리는 한국어조차 의미를 알 수 없다.
억새 아니고?
친절하게 검색까지 하여 뜻을 알려주지만 어디에 쓰는지 도통 모르겠다.
대나무와 들깨를 말하는 걸까?
대체 너희들 정체가 뭐냐.
형 몇 시에 갈 거야?
1시
핸드폰 두드리는 손가락이 바쁘더니 금세 약속 시간이 잡혔나 보다.
엄마 몇 시에 밥 먹어요?
1시
엄마 몇 시에 밥 먹어요?
몰라!
저 소년들의 감성을 하얀 억새꽃 흐드러지게 핀 가을 들판에 붙들어 매 놓고 싶다. 그런데 소년들은 바람과 닮아 어디 한 곳에 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게임방에 가서도 몸은 묶어놓되 세상을 두루 구경하지 않는가. 대체 학교에서는 그 긴 시간 동안 어찌 묶여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1차로 피시방에 갔고 2차로 챙겨 온 게임기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