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차에서는 핸드폰을 잠시 멈추자 했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그러니 몸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자고 했다. 하루종일 제 몸과 같이, 손에 접착제라도 붙여놓은 것 마냥 달려있는 핸드폰을 차에서 못 보게 했다. 조수석 아이는 음악감상을 핑계로 보고,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몰래몰래 보고, 핸드폰을 안 챙긴 아이는 자신만 못 본다며 일러주기에 여념이 없다.
“차에서만이라도 좀 내려놔라. 제발! ”
매일 같은 요청을 반복하는 나는 기계 같다. 차에 음성 알림 서비스를 하나 장착하면 좋겠다. “핸드폰을 몸에 달고 탑승하실 수 없습니다. “ 영어버전은 생략.
푸닥거리와 같은 핸드폰 정리가 끝났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제한 속도 30킬로입니다’ 길을 지나간다. 비 오는 날은 앞이 잘 안 보인다. 차선도 빛이 반사되어 잘 안 보여 신경이 더욱 곤두선다. 핸드폰 불빛에 유독 신경이 쓰이고 소리에도 민감해진다. 아이들에게 안전운전을 위한 당부의 말을 여럿 남긴다. 그리고 끝에는 늘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러니 제발 핸드폰을 넣어. 신경 쓰인단 말이야. “
기승전폰이다.
“엄마는 늘 못 보게 하잖아. ”
달복이의 억울한 변명이다. 형들은 알아서들 보는데 달복이는 아직 그 기술을 습득하지 못했다. 항상 누군가의 눈에 띄고 제지를 당한다. 심지어 동생에게 함께 보자 회유도 하여 같은 편으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동생은 제가 보고 싶은 것을 안 보여주면 심술을 부리며 엄마에게 이르기 일쑤다.
그래서 달복이는 집에서는 제 방 장롱 옆에 숨어서 본다. 엄마의 동태도 살펴야 하니 몸의 반은 숨기고 반은 내밀고 앉아서 본다. 차에서는 숨길 공간이 없다. 아침시간 차에서는 미리 차에 탑승해 엄마가 나올 때까지 짧은 시간을 활용한다. 항상 복실이가 엄마에게 이르기는 하지만 핸드폰을 얼른 넣은 다음의 일이기 때문에 괜찮다. 아침에 정신줄을 놓고 핸드폰을 보고 있다 걸리면 안 된다. 그럼 바로 압수된다. 형은 압수가 안 되는데 달복이만 빼앗는 불합리한 일이 자행되고 있지만 아직 아이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차에서 엄마 가방에 보관하고 내릴 때 챙겨 가야 하지만 잊고 내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며칠 후에 찾기도 한다. 달복이를 보면 정밀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
과연
핸드폰을 우리에게서 떨어뜨릴 수 있을까.
핸드폰과 헤어지기 가능할까 싶다.
나만해도 그렇다. 차에 타기만 하면 손에 붙었던 핸드폰을 차량용 핸드폰 거치대에 올리지 않던가. 내비게이션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오는 전화야 내려서 받아도 될 것을. 아이들에게는 핸드폰을 멀리 치우라고 하고선 차마 핸드폰 터치는 못하고 ‘시리’를 계속 불러대지 않았던가.
핸드폰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오늘은 몸에서 좀 멀리 떨어뜨려 놔야겠다.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