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가을 아침

by 눈항아리

산은 비를 머금었다 천천히 뱉어낸다. 폭우가 지나고 며칠 동안 도로에 흘러내리던 물자욱이 잠깐 사라지는가 했더니 어제 비에 다시 흘러내린다. 다 마른 도로가 무색하게 산 아래 어느 곳은 개울도 아닌데 흐르는 물길을 내줘야 한다. 자연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모습이란 이러하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기 마련이다. 길이 없다면 스스로 물길을 낸다. 인간이 만든 시멘트 도로가 자연의 길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자연과 잘 어우러진 시골길을 달린다.


비 온 뒤 아침 들판에 넘실거리는 풀잎은 더욱 반짝인다. 말끔하게 씻고 나온 가을 아침의 공기가 풀잎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차창을 모두 열어젖히고 상쾌한 공기를 허파에 가득 채운다. 들풀의 이슬 내음이 달리는 차에도 가득 찬다. 출발부터 드러누운 꼬마들 추울까 뒤쪽 창문은 얼른 닫았다. 앞쪽 양옆 창문은 스르르륵 올리다 쪼끔만 남겨두었다. 바람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콧속을 슬금슬금 간지럽힌다. 콧바람 쐬자고 마음을 술렁인다. 실컷 쐬어라. 20분은 쌩쌩 바람 타고 달릴 테니.


이른 시간부터 들녘에 일하러 나온 동네 아낙 서넛이 한적한 도롯가에 둘러앉았다. 참을 먹나 보다. 들판을 풍경삼아 일하다 밭둑에서 먹는 새참이 기가 막힌데. 뭣을 이것저것 싸왔는지 많이도 풀어놨다. 커피 타임인가 보다. 일면식이 없으나 한 잔 얻어먹고 싶으다.


너른 들로 나오니 너른 하늘도 눈에 들어온다. 하늘은 맑은 바람을 닮아 맑기도 하다. 바다 가까운 먼 하늘 끝에 막 피어오르는 구름이 하얀 레이스 띠를 빙 돌아가며 둘렀다. 하늘과 구름의 조화 파랑과 하양의 조화가 사랑스럽다.


굽이진 시골길을 돌아 4차선 쭉 뻗은 국도에 올라타고 속도를 낸다. 그럼 뭘 하나 ‘제한 속도 80킬로미터입니다. ’라고 말하는 여자분이 속도를 줄이란다. 블랙박스 여성분 목소리가 너무 크다. 좀 줄이던지 해야겠다. 달리지 말라니 더욱 달리고 싶다. 바람이 콧바람을 쐬라 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80이 어디인가. 허락된 속도 중 최고다. 쌩쌩 달리니 속이 뻥 뚫리다... 말았다. 신호등이다. 빨강 불에 걸렸다. 빨강불에 서서 파랑 하늘을 감상한다. 빨강과 파랑 사이 어디 즈음 새 두 마리가 분주하게 날아간다. 나비처럼 팔랑 거리며 정지선을 지나 우리가 달려온 방향으로 날아간다. 새에게는 신호등도 정지선도 없다. 하늘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다한들 새가 그걸 지킬 리가. 자유롭게 날던 새가 파랑 하늘을 배경으로 점점이 사라졌다.


파란 하늘이 좋은 가을 아침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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