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 운전 서행만이 답이다

by 눈항아리

캄캄한 시골길로 들어서면 가로등이 드문드문 가뭄에 콩 나듯 보인다. 보인다기보다 그냥 장식인 것 마냥 몇 개 없다. 가로등 불빛이 농작물의 자람에 방해가 되므로 없는 게 맞다. 가로등이 적은 대신 농촌의 밤하늘은 도시보다 밝다. 가로등이 하나 둘 줄어들면서 별빛은 하나 둘 늘어난다. 산으로 산으로 들어갈수록 밤하늘은 더 밝아진다. 어느 순간 길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보며 달리는 순간이 온다.

캄캄한 시골길로 들어서 달리고 있다. 천천히 달린다. 1톤 트럭을 뒤쫓아 시속 25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린다. 속이 터진다. 산불감시 차량도 아닌데 앞서 달리는 트럭은 왜 서행을 하는지 궁금하다. 곧이어 더욱 속도를 줄이는 녀석.

시골길 추월은 하는 것이 아니다.

시골살이를 하며 생긴 나만의 신념이다. 천천히 가도 된다. 시골길은 원래 그런 것이다. 유유자적 여유를 부리며 좌우의 푸르름을 즐기며 가는 것이다. 사위가 어두운 깜깜한 밤이라면 달 한 번씩은 쳐다볼 수 있는 여유로움.

그러나 앞서가는 녀석은 도를 넘었다.

트럭이 지나가고 뭔가 작은 불빛이 번쩍번쩍 움직인다. 작은 불빛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며 흔들흔들 움직인다.


‘뭐지? ’


아무것도 안 보인다. 속도를 더 줄이고 중앙선을 넘어가며 오른쪽 길가로 움직이는 것을 살핀다. 사람이다. 까만 바지에 까만 반팔 티를 입은 사람이다. 어두워 까만색인지 알록달록 옷인지 알 도리가 없다. 보이는 것은 핸드폰 불빛의 움직임뿐이다. 운전 중이라 자세히 못 봤지만 아이들 말로는 손목에도 빛이 나는 시계를 찼다고 한다. 운동 중인 까만 옷을 입은 사람이다. 앞에 가던 속 터지는 트럭이 속도를 내며 달렸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까만 사람이다. 그래도 이번 까만 사람은 불빛이라도 들고뛰니 보인 것이다. 대부분은 아무런 불빛도 없이 씩씩하게 걷는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휙 하고 나타나 깜짝 놀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트럭이 느리다고 욕할 것이 아니었다. 시골길에서는 무조건 서행하자. 까만 사람을 피하려면 천천히 달리는 것만이 운전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

야밤에 까만 옷을 입은 사람을 지나쳐 운전을 해 가면서 항상 아이들에게 말한다. 어두운 시골길을 나서지 마라. 만약의 경우 나가야 한다면 하얀 옷을 입어라. 야광조끼를 입어 자신은 까만 사람이 아님을 밝혀라. 그래야 차도 피해 갈 수 있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제발 불 좀 달고 다니자. 앞에만 말고 뒤에도 불 좀 달고 다니자.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40분을 걸어 등교를 했다. 아버지는 큰길에서도 10여 분 산속으로 더 들어가야 하는 깊은 골짜기에서 몇 년을, 그렇게도 소원하시던 과수원을 하셨다. 집으로 가는 길 산등성이 포장길을 걸어 올라가는데 남자의 고함소리와 함께 급박하게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로등 하나 없던 산길, 달이 없는 날은 암흑 그 자체였는데 소리만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가늠해야 했다. 잠시 후 길을 따라가며 만난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커다란 송아지였다.


남자는 탈출한 송아지를 잡으려고 고함을 치며 쫓아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 네 발로 땅을 박차며 지축을 흔드는 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가로등 불빛도 없던 시골 풍경.

송아지를 만나기는 힘들 테지만 야간 운전 시 가로등이나 차량 불빛에 의존해서 사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고라니가 갑자기 풀숲에서 뛰어나와 길막을 하거나 들개가 서성이기도 한다. 앞을 주시하며 천천히 달리자. 동물을 만난다면 빵!! 클랙슨을 울려주자. ​

어느 날 출근길에는 난데없이 사람 다리를 만났다. 감자를 캐는 농부님들이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아온 곳이 도로 위였다. 흙이 잔뜩 묻어 ‘금방 밭에서 나왔소.’하는 트랙터를 좌측에 세워두고 농부님 세 명이 오른쪽 도로를 반 정도 차지하며 그늘을 점령하고 있었다. 더위에 지쳐 다리는 쭉 뻗은 채로 편히 쉬고 계신다. 농부의 눈에 도로는 농로이다. 여기는 농촌이므로. 그래도 다리는 접으시라.

운전 중 만나는 가장 자주만나는 보행자는 보행 보조기를 끌고 가는 할머니다. 잘 차려입고 시내에 나가시는 듯 보이는 할머니는 가끔 보조기에 앉아 들판을 보며 쉬기도 한다. 평화로운 그녀의 산책은 아름답다. 그러나 도로 가에서. 농촌의 정취는 애매하다. 좀 슬프기도 하다. 할머니 제발 비 오는 날에는 집에 계시면 좋겠다. 비 오는 날 다니더라도 제발 흰 우비는 입지 마시라.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흰 우비는 캄캄한 밤 까만 옷 같은 효과를 준다. 제발 낮에는 비 오든 안 오든 알록달록 평소 입는 옷을 입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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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에 까만 사람, 불 없이 운전하는 자전거, 달 없는 밤 우사를 탈출한 송아지, 자유로운 고라니, 그늘이 필요한 농부, 보행 보조기를 끌고 가는 할머니.

시골길 운전 중 누구를 만날지 알 수 없다. 서행 만이 답이다. 안전을 위해 추월 금지.

앞서가던 트럭은 까만 사람을 지나치자마자 다시 만났다. 숲으로 더 들어갈수록 속도를 더 줄인다. 계속 천천히 간다. 정도를 아는 차다. 시골길은 천천히. 시속 10킬로미터. 추월 차선도 없는 외길. 산속을 향해 달리며 속이 타들어 간다. 시골길 안전운전 서행이 답이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다. ‘제발 좀 달려 주시오! ’


달이 참 밝기도 하다.


2023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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