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본래
한낱 꼭두각시놀음과 같은 것이니,
오직 근본이 되는 부침목을 잡고,
한 가닥 줄도 헝클어짐 없이
감고 펴기를 자유자재로 하여
움직임과 멈춤을 내 맘대로 하고
털끝만큼도 남의 조종을 받지 않고 나서야,
이 꼭두각시 연극에서 초탈할 수 있다.
<채근담>홍자성/김성중옮김/홍익출판사 p.163 후집128
꼭두각시놀음 같은 인생. 내 하루를 사는 것인지 누군가 허락한 인생을 대신 사는 것인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구름 같은 인생. 너와 나는 참 닮았구나. 그래 구름아 너도 바람에 홀려 바삐 움직이는구나. 너는 어디로 가는지 아느냐 모르느냐. 들판을 휘달리며 푸른 창공을 벗 삼아 노니는 너는 나처럼 아슬한 존재구나. 흩어져 파란 하늘이 되어버릴 구름아. 그래도 아름다워 너를 틀에 담았단다. 힘차게 발길질하는 네가 예뻐 길을 따라 들판이 훤히 보이는 여기에 서서 한참 동안 너를 바라보았단다.
“엄마 힘들어.”
오늘 아침 나를 이끌어 준 것은 기말고사를 앞둔 아이의 한마디였다. 실컷 놀더니 밤 12시부터 수학 숙제를 시작하는 아이의 말이다. 머리를 싸매고 확률 문제 하나를 가지고 고민하던 아이는 심각하다. 시험이 코앞인데 숙제에서 막혀서 참, 엄마도 코가 기가 막히다.
‘그래 숙제가 공부이지. 열심히 하여라.’
그러나 엄마에게는 아이의 그 한마디가 버팀목이 되었다. 아들의 ‘힘들어.’ 한마디에 엄마는 힘을 내어 아침을 활기차게 시작한다. 공부인지 숙제인지 아무튼 열심히 하는 아들에게 밥을 해줘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어났다. 요즘 살이 많이 빠져 홀쭉해졌다. 허리가 쏙 들어갔다. 쑥쑥 자라나는 청소년 살이 빠지다니 안될 소리다. 초록 반찬을 먹여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어스름한 새벽을 헤치고 나와 시금치나물을 데쳐 무치고, 단백질 섭취를 위한 계란프라이, 아이 입맛을 돋우기 위해 맛살 부침. 고구마를 깍둑썰기해 앉힌 진밥. 엄마의 사랑 조미료를 듬뿍 넣은 밥 한 그릇을 뚝딱 먹고 아이는 아침 운동을 간다. 지난밤 12시가 가까워 퇴근한 아빠는 아이 등교 시간에 맞춰 대충 씻고 또 집을 나선다. 남편이 출근 모습이 짠하다.
출발 직전 아이는 또 다른 확률 문제로 엄마에게 상담을 한다. 목소리가 커지려는 것을 내리눌렀다. 엄마는 동생들 밥도 먹여야 한단다.
‘꽃단장을 마친 너의 머리는 확률로 가득 차 있구나. 아이야 이 구름 같은 아이야. 아빠랑 가며 잘 풀어보아라. ’
구름 같은 아이와 구름 같은 엄마와 구름 같은 가족들.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마치면 저녁에 또 만나겠지. 서로의 버팀목이 되기도 하며 작대기를 하나 들었다 놨다 하며 오늘을 이렇게 시작한다.
삶은 꼭두각시놀음 같다. 누군가 이 세상을 움직이는지 모르겠으나 한바탕 신명 나게 마당극 한판 벌여보아야겠다.
얼쑤!
들판을 가로질러 불어오던 세찬 바람을 두 뺨으로 맞았다. 당당하게 버티고 서서 양볼을 내어 주었다. 바람이 스치고 스쳐 지나가더라.
아침에 마주한 얼굴이 불그스름하다. 감기 기운인가? 안면홍조? 어제 바람과는 상관없이 아침마다 바쁘다며 열을 내서 그런 것을.
요즘 출근길 짬을 내어 걷는 길.
그 들판에 서서 일 년 전 그날에도 나는 위안을 얻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