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왔다. 좁은 개천에 금방 물이 불었다. 흐르지 않던 물이 흐르는 것 같다. 반반할 것만 같은 시멘트 도로 군데군데 물 웅덩이가 생겼다. 물을 튀기면서 출발한다. 빠르게 굴러가는 바퀴가 만드는 물 분수! 물살을 가르며 수면 위를 항해한다.
마을회관을 지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까만 우산, 빨간 우산을 쓰고 가는 부부를 만났다. 관객에게 분수 쇼를 구경시켜 주고 싶으나 꾹 참고 브레이크를 깊숙이 밟아 속도를 줄였다.
시골 도로에도 상습 침수 구역이 있다. 밭과 논의 가운데 난 도로에 물이 고일 일이 있을까 싶지만 매번 물살을 가르며 가야 하는 아스팔트 도로. 대체 뭐가 문제이기에 그곳은 물이 고일까. 차선이 두 개뿐인 도로에 논물이 넘친 것도 아닌데 왜 물이 고이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운전자는 물길을 항해하는데 꼬마 둘은 신났다. 주말 아침을 즐기는 아이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신경 쓸 일이 없어 좋겠다. 학교를 안 가니 그저 좋다. 학교 가는 날 등굣길은 눈을 감고 잠든 채로 실려가는 게 다반사인데 주말은 엄마보다 먼저 일어나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출근하는 차에 게임기를 싣고 간다. 그것으로 모자라 차 안에서도 게임 판이 벌어졌다. 묵찌빠 게임이다.
빠빠빠!
찌찌빠!
빠빠묵!
묵묵묵!
묵묵찌!
대체 마지막 빠는 왜 더 크게 하는 걸까?
엄마는 수면을 가르며 달려간다. 빗물과 사투를 벌인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놀이 세계에 빠져있다.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우리. 사력을 다하는 아이들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운전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세계를 여는 문은 차라는 작은 공간에서도 열린다. 앞 좌석과 뒷 좌석을 가르는 어느 곳에 차원의 문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문은 운전자와 동승자 사이에 있는 것일까? 어른과 아이 사이에 있는 것일까? 운전자는 묵찌빠의 세계 문턱에 아슬아슬 쫑긋 세운 귀를 데려다 놓고 귀동냥을 한다.
묵찌빠의 세계에도 룰이 있단다. 고수, 중수, 하수가 있다. 달복이 고수가 복실이 하수에게 비법을 전수해 준다. 복실이는 평소 오빠가 아는 체를 하며 말을 시작하면 손바닥으로 양쪽 귀를 두드리며 소리를 차단하곤 한다. 그러나 오늘은 몇 번의 게임으로 계급이 정해졌다. 하수가 인정한 묵찌빠 고수 달복. 고수는 하수에게 말한다. 비법이 뭐였더라. 뭐였더라. 바로 적어 놨어야 하는데 듣고선 그새 까먹었다. 운전하느라 메모를 못 해서 그렇다. 참으로 안타깝다. 운전하는 몸 전체를 묵찌빠의 세계로 보냈다면 더 많이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출근하는 차를 멈출 수도 없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다음번 묵찌빠 세계의 문이 열리면 꼭 신체를 모두 데리고 건너가서 고수의 가르침을 받아야겠다.
반대편 차가 지나가며 물을 튀겼다. 물벼락이 유리창 반을 덮어 버렸다. 얼른 묵찌빠 세계로 통하는 문에 걸쳐둔 귀를 거두어 왔다. 앞서 가는 차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킨다. 와이퍼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우리 차는 이제 4차선 도로 상습침수 구역에 들어간다. 차들이 차례로 번쩍이는 빨간 브레이크등을 켰다. 빨강 신호등 너머 회색 하늘이 보인다.
하늘이 한 가지 색이다. 하늘이 단색인 날도 있다. 회색빛이 먼 산도 바다도 높은 건물도 모두 덮어 버렸다.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은 어스름한 회색빛 하늘 아래에서 더욱 많이 열리는 지도 모른다. 하늘빛이 심심하니 대신 다른 세계의 문을 살짝 열어 봤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