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방울 내리다

by 눈항아리

비 내리는 밤 빗물이 흐르는 도로 위를 달린다. 밤 운전은 눈을 반쯤 감고 하는 것 같다. 비까지 더하면 그 눈을 반은 더 감은 것 같은 느낌이다. 창문에 후드득 떨어지며 작은 점에서 큰 동그라미로 번지는 빗방울 무리를 감상하고 있다 화들짝 놀랐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 안 된다. 달리는 차에서 무엇 하는 것인지. 신호를 보고 도로를 보고 좌우를 살펴야 한다. ‘매직 아이’에 빠졌다 현실 세계로 돌아온 것 같다.


“조용히 해. 엄마 앞이 안 보여. ”


출발하며 네 명의 아이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앞이 안 보이니 집중할 수 있게 신경 안 쓰이도록 조용히 가자는 말이다. 그런다고 조용히 할 아이들이 아니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피곤한 녀석들은 좌석에 머리를 기댄다. 밤이 되면 다시 살아나는 녀석들도 있다. 그런 녀석들은 이야기 마당을 펼친다.

아이들에게 주의를 줄 것이 아니라 운전자 스스로에게 주의를 줘야 한다. 빗방울에 현혹되지 말고 정신차렷!


비 내리는 밤 어둠을 품은 빗방울은 빛을 더욱 눈부시게 한다. 젖은 도로는 잔잔한 호수가 된다. 호수는 화려한 빛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반대편 차량의 은색 빛줄기가 줄줄이 창으로 들어온다. 신호등 빨강 불빛도 두 줄기 유리창으로 비쳐 들어온다. 빛은 직진만 하나 보다. 나의 창으로 다들 돌진하니 정신 사납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니 초록불이 직진해 들어온다. 교차로를 지나 저 멀리 4층 건물의 번쩍이는 간판 불빛은 더 멀리서 긴 직선 빛줄기를 쏘아 보낸다. 이런 와중에 와이퍼는 젓가락 행진곡에 맞춰 물기 어린 창문 위에서 춤을 춘다.


빛 때문에 도로 바닥에 보여야 할 차선이 안 보인다. 가끔 보이는 선을 따라 대충 어림짐작으로 운전해 간다. 바짝 긴장한다. 잘 안 보이니 속도를 낼 수 없다. 줄인다고 줄인 속도에도 물웅덩이를 만나면 순간 붕 뜨는 기분이 들어 속도를 더 줄인다. 평소 느림보 우리 차를 따라오는 차는 없다. 비 오는 날은 차선 변경하기 귀찮은가 우리 뒤꽁무니를 쫓아오는 차량이 있다. 우리 등 뒤에서 불빛을 환하게 비춰준다. 내 차는 불이 안 켜진 것 같다. 도로에 빛이 많으니 구분이 안 된다. 켜진 거 맞을까? 내 차의 불빛은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들처럼 불빛을 발사하지 않는 걸까? 왜 레이저 불빛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가지 않는 걸까. 발사! 발사! 안 나간다. 아쉽다.


차를 달리며 나에게로 달려드는 빛방울을 실컷 맞았으니 괜찮다. 유리창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던 그것이 빛의 방울인지, 비의 방울인지 잘 모르겠다. 빛을 머금은 빗방울이니 빛방울이라고 할까?


빛방울 발사는 연습을 좀 더 해봐야겠다. 레이저 물총을 하나 준비해 차에 달아볼까?

이전 24화달복이의 소풍날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