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가방 전달 사건
평탄하기만 한 삶은 재미가 없다. 그러니 아침의 롤러코스터를 타보자. 7번 국도에 올라 달리기 시작했다. 시속 8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리는 해방감이란, 한적한 시골 털털거리는 경운기를 뒤따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비가 주루주룩 내려도 좋다. 비가 내리니 과일은 오늘 말고 내일 사러 가자고 마음먹었다. 오늘 오전은 좀 한가하게 커피도 마시면서 시작해 볼까. 한가는 무슨, 좋기는 무슨.
달리면서도 엄마의 더듬이는 아이들 옆에 늘어져 있는 가방과 준비물을 챙긴다. 룸미러로 빠르게 뒤를 한 번 훑어본다. 휙! 없다. 수영가방! 생존수영 2회 차 수업이 있는 날인데 현관 앞에 준비해 놓고 그새 잊어먹고 몸만 챙겨 나온 달복이 자쉬익! 매일 잊고 뭔가를 하나도 아니고 두 개, 세 개 집에 놔두고 오는 엄마가 할 말은 아니지만, 수영 가방은 미룰 수도 대체할 수도 없으니 어쩌냐.
빠르게 묻는다.
“수영 언제야? ”
“3교시. ”
일체의 잔말을 들어줄 여유가 없다. 차를 돌릴 것인가 말 것인가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집으로 되돌아갔다 학교에 가면 지각 확정이다. 늦게 출발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출발했어? 달복이 수영 가방 안 가지고 왔대. “
“집으로 갈까? ”
남편의 소리에 아빠 트럭을 얻어 탄 큰 녀석들의 고성이 난무한다. 아빠도 안 되고 엄마도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달복이는 풀이 팍 죽어 목소리가 쭈글쭈글해졌다.
“엄마 나 수영하기 싫은데 그냥 안 가지고 가면 안 될까? 어떤 친구는 안 가지고 와서 수업 안 했는데? ”
아이의 진심이 담긴 수영 거부 사태, 엄마는 최선을 다해 아이가 수업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머리를 굴려 쥐어 짜내야만 했다. 사실 수영 한 번 정도 빠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 앞에서 모범적이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게 부모인가 보다. 그냥 물구경 하며 쉬라고 할 걸 그랬나. 우리 때와는 또 달라서 물이 무서워 수업을 안 하는 아이도 있고, 작년엔 복이도 한 번이었지만 비염이 심해서 의사 선생님의 권유를 들먹이며 수업을 빠졌다. 엄마는 짧은 시간 마음을 정했다.
“무슨 소리! 엄마는 수영도 못하고 몸이 무거워 물에 뜨지도 못하잖아. 생존 수영이 어느 순간 물속에서 네 생명을 구할지도 모르는 일이야. 엄마는 배우고 싶어도 이제는 기회가 없잖니. 최선을 다해 배워야 해. 알았지? “
말하고 나니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정말 미래의 어느 순간 요긴하게 쓰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멋지다고 스스로 칭찬도 해 주었다. 내심 짜낸 머리가 대견한 엄마는 열심히 액셀을 밟았다.
“1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에 수영복 갈아입어야 한단 말이야. 엄마 수영 안 할래. “
이것은 고수의 엄마 굴리기 작전은 아닌가 순간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너의 준비물이니 너의 책임이고 수영을 못 해도 수업을 못 받아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때로는 나도 그렇게 말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다. 가게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라거나 예약이 있어 바로 출근을 해야 한다면 또 다른 문제다.
“엄마 시간 많아. 마침 과일 가게 가려던 걸 내일로 미뤘지 뭐니. 걱정 마, 엄마가 너희들 학교에 내려주고, 바람과 같이 날아 다시 집에 다녀올게. 1교시가 몇 시에 끝나? “
“9시 50분. ”
아이와 수영 가방 전달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약속했다. 제시간에 혹시 못 맞출까 싶어 교문이 아닌 인도가 있는 곳까지만 데려다주었다. 헤어져 다시 집으로 달려갔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비가 와서 과일을 안 사러 간 건데, 과일을 안 사러 갈 마음을 먹어서 다행이다. 과일을 사러 가려고 했다면 아침 일이 틀어졌다고 한 번 더 쓴맛을 보고 체념을 하고 억지로 아이의 준비물 배달 했을 테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달렸다. 약속 시간 5분 전에 다시 학교에 도착했다. 보안관실에 수영가방을 들어 보여주고 출입증을 받아 들고 교실로 달렸다. 멀기도하구나. 4층이다. 엘리베이터는 막아놨다. 나는 노약자인데 승강기 사용이 어찌 안 될까요? 묻고 싶었지만 물어볼 시간에 올라가겠다 마음먹었다. 약속 시간 2분 전 교실 앞문 앞에 수영 가방을 살포시 내려두었다.
아이들 등교 수송작전 완료!
준비물 수영가방도 전달 완료!
아침이 참 길기도 하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 준비물 전달식을 안전하게 마쳤음을 보고했다.
‘여보 나는 커피가 고파. ’
비 온 뒤 다음날 강풍이 불었다. 몸이 날아갈 정도로 강력한 바람이었다. 운동장에 설치한 거대한 간이 수영장이 춤을 추며 날아가려고 했다. 곧 무너지리라. 지난해에도 강풍에 무너졌다. 그리고 그 후 수영 수업은 없었다. 아이들도 그걸 기억하는 걸까?
바람을 헤치고 교문에 도착한 달복이와 친구들은 만세를 불렀다. 그들은 두 손을 하늘 향해 쭉 펴고 흔들었다. 땅을 구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환호하며 소리를 질렀다. 승리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뒤돌아서서 교실로 들어가던 달복이의 발걸음이 오랜만에 힘찼다. 강풍은 아이들의 강한 염원이 만들어낸 결과는 아니었을까.
마지막 생존 수영 수업은 취소될 것 같다.
나는 왜 기를 쓰고 수영 가방을 배달했을까. 부모라는 의무와 책임감으로 무장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
게임
꿈이 뭐야?
게이머
게임의 ‘게’ 자가 달복이의 입에서 쑥 들어갈 때까지 당분간 강요를 해야 할까 보다.
출퇴근 시간 20분 더하기 20분은 짧다. 달리면 더 짧아진다. 달리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바람처럼 휙 지나가 버리고 만다. 그냥 길에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천금 같은 내 시간, 그런 짧은 시간들이 모여 하루를 만들고 일 년을 만들고 인생 전부를 만든다. 그 순간들을 길거리에 버릴 것인지, 누릴 것인지는 내 마음이다. 모든 순간이 그렇다.
순간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 하나에 인간 사 모든 삶이 들어있다. 불어오는 바람에, 차 안에 풍기던 파향에, 플라타너스, 감나무 가로수 길에, 산에 피어오르던 하얀 산안개에,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싸움 속에, 내리는 비 속에, 가을의 논과 밭 너른 들녘에, 내 눈에 비치는 타인의 모습에, 흐르는 구름 속에 삶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짧은 출퇴근 시간 인생의 모든 맛을 음미한다. 충분히 즐기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견뎌라. 매일 용기 내자. 매 순간을 누리자. 매일 감사하자. 그건 매 순간 나를 다독이는 말이기도 하다.
출퇴근 일기 끝!
그동안 많은 사랑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