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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주부공감 01화

사 남매 방학 합체 완성

by 눈항아리

길고 긴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중학생은 이미 시작된 방학이다. 초등학생이 합치면 더욱 완벽하게 완성되는 것이 우리의 방학이다.


방학 합체 완성.

사 남매의 시끌벅적한 겨울나기의 출발점에 섰다.


9시 등교한 꼬마 둘을 10시 30분에 교문에서 기다린다. 등교인가 아닌가. 방학식, 졸업식의 날이다. 교문 앞에 선 꽃 장수는 연신 ‘꽃 사시오!’를 외친다. 이만 원짜리 조화가 꽤나 근사하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되는 날이다.


교문 앞 학부모님들의 훈화 말씀이 있었다. 일동 삼시세끼 님께 경례! 차렷! 쉬면서 독감 이야기 등이 잔잔한 목소리에 버무려지며 추위 속에도 훈훈한 말 동산을 만들었다.


곧이어 춥다고 벌벌 떠는 아이들이 엄마들 무리를 가르며 나온다. 어깨를 한껏 웅크리고 입에서 하얀 김을 내뿜으며 새까만 녀석들이 달려온다. 열에 열 지퍼를 열어젖히고 발갛게 웃는 얼굴을 하고 교문으로 뛰쳐나온다. 개중 얼굴 아는 몇몇은 손수 세워 놓고 지퍼를 올려주었다. ‘목 하늘’을 하는 녀석도 있다. 다들 입이 찢어진다. 얏호! 추위도 아랑곳 않는 즐거운 방학이다. 아이들은 늦은 방학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남매의 방학은 교문에서 시작되었다. 12kg 등짐을 짊어지고 나타난 녀석 하나, 등짐은 곧 내 등으로 옮겨졌다.금메달을 목에 걸고 나타난 또 다른 녀석 하나, 금메달 초콜릿을 먹을 생각만 하고 있다. 멀리 세워 놓은 차량에 탑승해 얼른 가게로 왔다. 점심 준비와 점심 장사 준비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나만의 과업이다.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방학, 나에게는 시린 겨울의 시작이다. 나는 내 공간을 내어주고 내 시간을 내어주어야 한다. 공간을 공유하고 시간을 함께한다. 아아악!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 아이들은 이제 영리해졌다. 즉각적인 반응을 해온다. 아이들의 엄마로 슬기로운 방학을 보내기로 하자. 그리고 이 겨울 온전한 나를 지켜내기 위해 방학아 우리 잘 지내보자.


그럼 우선 점심밥을 해 볼까?


십수 년 방학을 보냈지만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생각했다. ‘처음처럼’ 이 딱 맞는 말이다. 처음과 같다. 처음이 언제였는지 생각은 안 나지만, 지난여름과 다르지 않다. 지난해 겨울 방학과도 다르지 않다. 하는 일이 달라지지 않으니 그렇다. 갈수록 아이들이 자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먹성이 좋아지는 것이 다를 뿐. 옷이 커지고 신발이 커지는 것이 다를 뿐. 아이들 챙기는 일이야 별 다를 것이 없다.


투정은 이제 그만. 밥을 해야지.


나를 내려놓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한다. 주부인 나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사소해 보이는 그러나 가장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일을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나를 위로하고 내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 가족이 유독 야멸찬 건 아니다. 우리 가족은 꽤나 화기애애하다. 그건 주부의 노동, 일과는 또 별개인 것 같다.


방학이란 주기적으로 돌아와 나를 시험하는 삶의 시련 중 하나일 뿐이다. 삶이 내게 내려주는 작은 시련. 매일 쏟아지는 빨래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자.


결국은 밥은 늦어지고... 나는 뛰는 걸 넘어 날아다닌다.

12kg 달복이의 등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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