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주부공감 04화

밥 하기 싫지만 잘하고 싶었다

by 눈항아리


밥 하기 싫다.
그런데 잘하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심지어 잘하는 줄 알았다.
아주 잘했다.
영혼을 왕창 갈아 넣었다.


밥, 하기는 싫지만 잘하고 싶은 그 이상한 심리는 뭘까. 그게 문제였다. 청춘과 영혼을 버무려 밥상을 차렸다.


공부도 그랬지, 하기는 싫었지만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기 싫다는 말 한마디 못해보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싫다 ‘ 는 말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저 학생이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밥도 그랬다. 잘하고 싶었다. ‘싫다’는 생각은 해 볼 겨를이 없었다. 그저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신혼 때는 뭐든 잘 몰랐다. 뭐든 열심히 노력하면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최선을 다했다. 소임을 뛰어넘어 밥에 나를 갈아 넣었다.


첫째, 둘째는 백일을 거쳐 돌상까지 손수 차렸다. 없는 음식 솜씨를 모두 새로 갈고닦았다. 인터넷의 온갖 레시피를 섭렵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 손님 접대를 했다. 못하는 음식이 뭐란 말인가. 칼질도 서툴렀던 새댁이었지만 뭐든 하면 잘하는 애기 엄마였다. 잔치가 시작되면 레시피를 연구하고 프린트해 파일에 끼워 놓고 며칠 전부터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도 이틀 사흘에 걸쳐 계획적으로 착착 진행했다. 면단위 시골이라 없는 재료가 그렇게 많았다. 운전은 못하는, 그때는 유모차를 끄는 시골 아줌마였다. 동네 슈퍼와 시장, 읍내 슈퍼와 식육점, 인터넷을 뒤지고 다녔다. 생물, 냉동식품 택배를 처음 시켜봤다.


잔칫상의 면모를 살펴볼까? 삼색전은 사소하다. 전도 아름답게 둥근 어묵에 고추 꼬치 전, 파프리카 전, 오징어 전, 연근 전을 두루두루 부쳤다. 오색산적, 수제 동그랑땡, 고명 올린 호박전 기본이다. 내가 좋아하는 새우튀김도 가끔 했다. 요리를 살펴볼까. 소고기 무쌈말이, 때로는 연어 무쌈말이 더하기 수제땅콩겨자소스, 따끈한 꽃빵 곁들인 고추잡채, 단호박 매운 갈비찜, 훈제오리 부추볶음, 빨간 오징어 야채무침, 새우튀김, 연어샐러드 더하기 수제 드레싱, 각종 샐러드, 코다리찜, 잡채, 불고기, 구절판 등 생각 나는 걸 줄줄이 나열만 해도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린다. 과일에 떡까지 주문하면 완벽한 한상이다. 참 케이크가 빠졌다. 케이크를 안 만들 수 없지. 어르신들 입맛에 딱 맞게 밥솥 약밥 케이크!


다음 잔칫상에는 같은 음식은 피했다. 새로운 음식을 연구하고 선보여 드시는 모든 분들에게 늘 찬사를 받았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칭찬에 어깨춤을 출 것이 아니라 의심해 봐야 했다. 내가 정말 손맛이 끝내주는 줄 알았다. 음식 솜씨 때문이 아니라 정성에 박수를 받은 줄 몰랐다. 차라리 아예 잘 못했거나 타박을 받았다면 상 차리는 게 무서워 서성거리거나 뒷걸음치거나 했을 테다. 그럼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그러나 주부는 춤추다 골병이 든다. 잘한다, 맛있다 어른들이 칭찬과 격려를 해주니 기고만장하였다. 아주 조금만 더 영혼을 갈아 넣었더라면 지금쯤 출장 뷔페 사장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잔칫날은 가끔이었다. 일 년에 두어 번뿐이었다.



잔치 상차림 남들도 다들 그렇게 준비하는 거 아니었나? 아직도 그게 의문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보고 배우는 거라곤 인터넷에서 찾아본 휘황찬란한 레시피뿐이었다. 그땐 몰랐다. 인터넷이 전해주는 정보의 진실을 알아채기에 나는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인터넷이 사람들의 관심을 얼마나 반영하는지 모르지만 다 믿다간 나처럼 골병든다. 그뿐이겠는가. 새댁이 하는 생활의 모든 요리는 인터넷이 가르쳐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시피 없이 하는 요리는 매일 꽝이었으니까. 음식만 참조했겠는가. 손으로 만드는 모든 것을 참조했다. 퀼트 바느질, 5월의 카네이션 만들기 등등.


그런데 왜 매일 만든 반찬은 생각이 안 날까? 반복되는 일상이라 그런 걸까? 오늘 먹고 내일 먹고 또 해 먹어도 먹을 게 없고 만들 게 없는 게 ‘매일밥’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온갖 레시피를 탑재해 밥과 나는 일체형이 되었다. 이제는 밥이 별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억 속에 없는지도 모른다. 이제 만능주부가 된 나는 마음먹고 손만 걷어붙이면 밥 한 상 뚝딱 만들어낸다. 경력 17년 차 주부 탄생! 경력 주부의 관록이란 대단하다. 이제는 신들린 칼질을 한다. 맛을 안 보고 맛을 짐작한다. 장금이의 후예다. 음식 재료의 양을 대충으로 정의한다. 소금 얼마나 넣어야 하지? 아이들이 묻는다면, 조금, 약간, 한 꼬집, 적당히 등의 단위를 사용한다. 설탕을 얼마나 넣어 야할까 묻는다면 한 숟가락 듬뿍이라 말한다.

“물은 얼마나 넣어? “

적당히. “

“후추는 얼마나 뿌려?

톡톡.”

“고춧가루는 얼마나 더 넣을까? ”

넉넉히, 빨갛게. ”

“간장은? ”

“두세 숟가락 넣고 나중에 소금 간 대충 맞추면 돼. ”

“전분은 얼마나? “

적당히 걸쭉하게.

“얼마나 끓여? ”

한소끔.”

이게 무슨 외계어란 말인가. 아이들은 두통을 호소하며 계량컵을 꺼내고 계량스푼을 꺼낸다. 얘들아 이런 게 엄마 손맛이란다. 호호. 경력직 주부만이 알아듣는 전문 용어다.

(경력 주부의 전문 용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모든 주부님들! 당신이 진짜 전문직, 경력직입니다.)



매일 상차림 대신 또렷이 기억나는 건 대량 재료 준비의 현장이다. 마늘이 유명한 고장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마늘 철이 되면 마늘을 깠다. 마늘이 줄줄이 새끼줄에 꼬여 대롱대롱 매달려 왔다. 10접 마늘 들어나 봤나. 절구에 찧어서 냉동에 보관했다. 냉동실이 마늘로 가득 찼다. 어쩐지 어머님 댁엔 냉동고가 있더라니. 산촌 마을엔 더덕이 유명했나 보다. 더덕을 접으로 사 와 흙투성이 더덕을 깠다. 산수유가 몸에 좋다고 했다. 빨간 산수유가 나오는 계절이면 포대 자루에 따왔다. 산수유를 반쯤 말려 과육보다 큰 열매를 발려냈다. 도라지는 마트 야채코너에 가면 하얗던데 산촌의 도라지는 흙과 껍질을 붙여 나온다. 그것도 접으로 가져와 깠다. 까라면 깠다. 안 까도 되는지 몰랐다. 농촌 산촌에는 그렇게들 밥을 해 먹고사는 줄 알았다. 아니,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이 둘을 낳고 갑상선에 이상이 왔다. 어쩐지 매일 피곤하더라니. 둘째가 아장아장 걸을 무렵이었다.


keyword
이전 03화주부의 탈을 쓰고 밥 하기 싫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