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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주부공감 05화

밥 먹이기가 제일 힘들었어요

by 눈항아리

갑상선 결절을 제거했다. 간단한 시술이었다. 멀쩡하다는데 그래도 계속 잠이 쏟아졌다. 그 무렵부터 힘에 부치는 일이 생기거나 잠이 오거나 하면 몸이 쉬라는 신호라 생각하고 쉬었다. 잠이 쏟아지니 안 잘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갑상선 이상도 ‘밥 하기’를 말리지 못했다. 밥 하기는 이미 나와 합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주부에게 밥 하기보다 더 힘든 것이 많다. 기본 탑재라는 말은 다른 기능이 많다는 얘기다. 밥 하기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전문 직종으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밥 하기보다 힘든 것, 그중 가장 고난도는 밥 먹이기다. 아이 밥 먹이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다. 아이는 안 먹고, 흘리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씹지 않고, 삼키지 않고, 돌아다니고, 뱉기도 하며, 심지어 토를 한다. 잘못 먹으면 왕창 싸고, 변비에도 잘 걸리고, 장염에 걸리는가 하면, 감기도 달고 살아 이유식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아기 숟가락은 얼마나 작은지 먹이는데 한 나절이 걸린다. 미니 철숟가락으로 바꾸기까지 주부의 팔을 잘 보존해야 한다. 떠먹이려면.


포크에서 젓가락으로 넘어간다면 이제 아이 스스로 밥 좀 먹는다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젓가락질 가르치는 것이 또한 큰 산이다. 예전에는 부모가 좀 곤란하였으나 요즘은(?) 연습용 젓가락이 단계별로 잘 나온다. (10년 전도 더 된 이야기이니 요즘은 더 좋은 젓가락이 나올 테다) 손가락을 끼우는 고무링 3개에서 1개까지 단계별로 쓰면서 아이 스스로 젓가락질을 배웠다. (왼손 젓가락도 있다는 것을 아이가 다 크고 나서 알았다. 우리 집은 넷 중 세 명이 어릴 적 왼손을 사용했다.) 그러나 아이 중 어떤 아이는 단계를 뛰어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배우기 젓가락’을 던져버린 셋째는 아직도 제 멋대로 젓가락질을 한다. 젓가락질을 좀 못하면 어떤가 잘 먹으면 최고다.

밥 잘 먹는 아이가 제일 효자.


아기 밥을 먹이며, 말이 안 통하는 아이에게 윽박도 지르고, 호소도 하고, 살살 구슬려도 보고, 텔레비전을 보여줘 보고, 시간을 정해 보기도 하고, 요리놀이도 하고, 식판채로 개수대에 처박기도 하며 홀로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지. 안 먹으면 내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리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밥에 집착을 했을까. 첫째, 둘째를 각각 유아식탁에 앉혀두고, 보행기, 어떤 날은 범보 의자에 가둬두고 제발 밥을 먹으라고 애원하던 날들. 앉혔던 식탁의자 종류만 몇 가지던가. (셋째와 넷째는 그나마 아기 때 잘 먹었다) 그리고 대체 왜 아기들은 밥을 먹다 말고 배변활동을 하는 걸까.


말이라도 안 통하면 차라리 체념을 할 텐데. 말귀를 알아듣는, 심지어 말도 하는 그러나 나의 애타는 심정은 전해지지 않았던, 그 어린 날들의 아장거리던 아기들. 홀로 분을 삭이며 낮잠을 청할 때가 가장 좋았고 밤에는 시도 때도 없이 깨던 아기들. 아침은 왜 아기들에게 그렇게 빨리 오는 것이었는지.


나는 그 시간들을 낯선 곳에서 홀로 보냈다. 남편 하나 아는 사람이었던 그곳, 가장 친근한 사람은 옆집 사람이었던 그곳. 말을 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아이들과 온종일 밥이라는 전쟁을 치르며 낯선 도시의 우리 집이라는 감옥에서 ‘나 홀로 육아’라는 지루한 시간을 견뎠다. 길고 긴 시간이었다.


나와 밥 전쟁을 치르던 아기들은 이제 중학생, 예비 고등학생이 되어있다. 시간은 쏜 화살과 같고, 아이들은 시간만큼이나 빨리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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