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터널을 지나오며 17년을 ‘주부’라는 막연한 이름으로 살았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당당한 주부가 되었다. ‘주부’라는 이름의 역할을 조금은 터득했다 말할 수 있다. ‘서당 개 님’의 도움을 좀 받았다. 무엇도 시간의 무게를 비껴갈 수는 없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정말 나와 합체가 된 ‘주부’라는 이름. 나는 이제 좀 내려놓을 줄도 알고, 좀 미루기도 하며, 안 하기도 하는 너그러운 주부가 되었다. 가끔 도망 궁리도 하고, 가끔 집안일에 눈을 감기도 한다. 그리고 집안 어느 구석에서 지금도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살림도 그렇고 나를 발견하는 일도 그렇다.
자잘한 살림이라는 녀석과 늘 한판승을 벌인다. 소파 위의 빨래 개기 100일을 완수했고, 지금은 매일 이불 개기에 도전하고 있다. 삶을 활기차게 가꾸기 위해 운동 습관도 키우고 있다. 아직도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나는 늘 밖에 나갈 궁리만 하고 있었는데 활기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차츰 알아 가고 있다. 내가 움직이는 곳에 활력이 따라붙더라는 간단한 진리를 나는 몰랐다. 내가 가만히 서 있는데 활기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이제는 온 가족이 운동에너지를 주고받으며 활기차게 실내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터넷 세상의 문을 여전히 들락날락 거린다. 다른 문을 두드려볼 날이 나에게도 올 것이라 믿는다. 내가 움직인 발걸음 따라 바람이 일듯, 내가 나갈 문의 손잡이를 돌린다면 자연스럽게 문이 열릴 테다. 사회도 가족도 아닌 내 손으로 나는 그 문을 찾아 열고 나갈 테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글이라는 세상을 만나서 또한 좋다. 글을 통해 나만의 세계를 다시 짓고 있다. 누구도 침입하지 않는 나만의 세계. 나는 이런 것을 원했다. 맞다. 나는 누군가의 간섭이 없는 공간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글 속의 세계에서 힘을 키워 그 힘을 현실 세계로 데려 나오고 있다. 가족들에게 내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자신감이 늘고 있다. 내 삶을 타인이 아닌 내 중심으로 다시 가져오고 있다.
그렇다고 ‘엄마’나 ‘주부’가 어디로 가지는 않는다.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아침 시간 활용이다. 이부자리에서 일어나며 하던 생각들, ‘밥 하기 싫다, 나가야지, 일어나야 하는데, 아이들 깨워야 하는데...’ 나는 없던 아침이었다. 이제는 밥먹이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이 아닌 내 사색과 독서, 삶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며 일상을 많이도 바꾸어 놓았다.
밥은 부수적인 것이 되어 때론 좀 미안하기는 하다. 그러나 삶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것은 정말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7시 알람이 울려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들을 깨우지 않아도 부담이 없다. 늦으면 늦으라지. (흐흐)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으므로 바쁘다.(미안하다 얘들아) 아침부터 글로 내 수다를 풀어놓아야 하루가 시작된다. 내가 여는, 나로부터 시작되는, 내가 중심이 되는 하루 열기. 맞다. 내가 원한 내 삶의 방식을 하나씩 이루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