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기억했다!
검정콩을 물에 불렸다. 지난밤, 콩을 씻어 물을 부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퇴근했다. 가게에서 점심밥을 하려고 검정콩을 꺼냈다. 이번에는 쌀이 없다. 쌀을 사러 가야겠다.
어제는 김치가 없었다. 김치는 잊으면 안 되는데 또 잊고야 말았다. 언니가 미역무침을 아침에 가져다줬다. 하얀 미역무침에 고춧가루를 팍팍 뿌렸다. 얇은 무채가 들어 있어 아삭아삭 식감도 좋았다. 김치 대용으로 맛있게 먹었다.
아침에 남편이 출근길에 전화를 했다. 수평계를 잊었다며 꼭 가져다 달란다. 책상에 앉아 필사를 하던 중 전화를 받았다. 들고 있던 펜으로 수평계와 수평계가 있는 위치까지 통화 내용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 당연하게 잊었다. 차를 출발시켜 시골길을 한창 달리고 있는데 번뜩 생각이 났다.
생각이 났다는 게 참 중요하다. 출근 중이었지만 아직 출발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차를 돌릴 수 있는 적당한 곳에서 생각이 났다는 것도 참 장한 일이다. 그건 메모의 힘이다. 메모는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꼭 메모장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내 손과 눈과 뇌와 몸이 기억한다. 전화로 들려온 음성이 다시 들려오고, 손글씨로 적은 정확한 이름과 물건의 위치가 되살아났다. 중학생이던 시절 빽빽이가 그런 중요한 의미였다니! 기록의 힘이 무엇보다 강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꾸 잊기만 하다 기억을 되살리고 보니 메모가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잊지 않기 위해 메모 습관을 들이자.
그런데 콩을 불렸다고 메모를 해야 할까, 쌀을 챙기라고 메모를 해야 할까. 검정콩 불린 것은 지난번처럼 잊을 수 있으니 구석 말고, 냉장고의 늘 같은 위치에 두기로 하자. 쌀, 김치, 반찬 등 챙길 것을 메모하자. 그리고 퇴근할 때도 집으로 챙겨 갈 것을 메모하자. 메모지의 위치를 특정해서 테이프로 딱 붙여두자.
잊지 말자.
쌀과 김치.
메모하자.
쌀과 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