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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고등학생 픽업 서비스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by 눈항아리 Mar 22. 2025

늦은 밤 깜깜한 공원에 차를 주차했다. 낯선 동네, 번화가 뒤편 후미진 골목길이었다. 밤 운전에 서투른 나는 주차 공간이 좁은 곳은 무조건 지나쳐 큰아이 가 다니는 수학 학원과 조금 떨어진, 한적한 놀이터 앞에 차를 세웠다.


캡 모자를 쓴 젊은 여자가 한쪽 귀에 전화기를 갖다 대고 통화 중이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 여자는 공원을 둘러 빠르게 걷고 있었다. 운동을 하는 여자는 왠지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작은 놀이터의 어두운 그늘이 확대되어 보였다. 어둠이 그녀를 위협이라도 하는 듯 불안했다.


놀이터 반대편 불 꺼진 상점들 사이로 까만 골목길이 서쪽으로 비탈을 이루며 쭉 이어졌다.  두건을 쓰고 긴 포장과 같은 앞치마를 펄럭이며 어둠을 헤치고 장화 발의 남자가 다가왔다. “저벅저벅.” 남자는 식당 영업을 막 끝냈는지 묵직한 음식 쓰레기를 실은 바퀴 달린 작은 수레를 끌고 지나갔다. 그저 지나갔다.


건물 하나를 지나면 편의점이 작은 골목길 교차로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뒤쪽으로  3, 4층 건물 서너 개를 지나면 골목 어귀에 또 편의점이 있다.


“놀이터잖아. 우리 내려요. ”


“엄마 저기 편의점 보이는데, 우리 편의점 가요. ”


그래도 모르는 동네 낯선 땅으로 초등학생 둘을 데리고 내리기는 망설여졌다. 세상이 무서워 차 문을 열고 나가지 못한 나는 급기야 차 문을 걸어 잠그고 시동을 껐다. 늦은 밤, 시간은 9시 30분을 넘어 10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편의점은 내일 꼭 가기로 약속하자. ”


핸드폰으로 지도를 찾아 우리의 위치를 캡처했다. 화살표로 오는 길을 설명해 큰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이는 몇 개의 문자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수업 중에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30여 분 차에서 대기했다. 고등학생 아들 녀석의 수업이 끝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나는 무서워서 차에서 문을 잠그고 기다리면서 아들은 걸어오라고 하다니  참 매정한 엄마였다.


초등 꼬마 둘을 태우고 낯선 골목에서 늦은 밤 고등학생 아들을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을 테지만, 가게 마감 청소가 늦어지면 어쩔 수 없이 내가 달려야 한다. 가족은 운명 공동체니까.


그렇게 몇 번 낯선 동네 골목길에서 아들 녀석을 태웠다. 우리의 연락은 좀 더 긴밀해졌다. 낯선 도로 주행도 익숙해져 가고 있다. 가는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 ‘빠른 길 찾기’는 유용했다. 어제는 20분 걸리던 거리를 8분 만에 주파했다. 아이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길거리에서 배회하지 않고 대체로 학원에서 대기한다. (첫날은 편의점에서 태웠다. 동생들 모두 얼마나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는지 모른다.)


고등학생을 태우고 집에 간다. 우리의 퇴근은 ‘낯섦‘에서 다시 ’익숙함‘으로 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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