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되겠다

핸드폰을 이기자

by 눈항아리

요즘 핸드폰 출근지에서 살짝 빗겨 나 태블릿 속으로 출근한다. 가게 카운터에는 커다란 태블릿이 구비되어 있다. 남편은 그것으로 열심히 유튜브를 보며 농사 공부를 한다. 치우라고 못 한다.


태블릿이 핸드폰과 닮기는 했으나 블로그나 브런치 앱이 안 깔려 있어 글을 쓰거나 올릴 수 없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지금 나에게는 장점이기도 하다) 통계를 확인할 수 없다! 나에게는 가장 강력한 치유책이다. 조회수 확인을 참을 수밖에 없는 슬픈 태블릿, 그 속에 그래도 책이 있어 많은 위로가 된다. 중독자들을 위한 책도 열심히 읽고 있다. 알코올 중독과 핸드폰 중독의 닮은 점이 많다는 데 놀랐다.


자칫 무료하고 심심한 일상이 그럭저럭 채워지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다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을 읽고, 워즈워스의 시를 읊어보기도 한다. 책은 읽을 책을 낳아준다. 그렇다고 하루 온종일을 책으로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핸드폰 속 숫자에 집착하던 나는 이제 현실 세계로 천천히 눈을 돌리고 있다. 한 가지에 집중하던 관심을 분산시키는 중인 것 같다. 우선 살림의 세계에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새벽 빨래를 최대 3회까지 돌려봤다. 이제까지 건조기를 두 번씩 돌려 세탁을 마무리했는데 건조를 절반 정도만 하고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놓고 출근하는 것이다. 집안일의 효율과 정리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인 듯하다. 열정이 남아 돌아서!



열정을 쏟고 있는 분야가 또 있으니 식물 분야다. 나는 뭘 심고 가꾸고 키우는 것에 소질이 없고 관심도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핸드폰에 한꺼번에 쏟아붓던 열정을 나는 일상 속 이곳저곳에 뿌리고 다닌다. 남편은 나에게 갑자기 웬 꽃에 꽂혀서 그러는가 묻는다. 오늘은 남편과 씨앗 말고 모종으로 알아봤다. 육묘장에 전화를 해 6월에 심을 수 있는 꽃이 있나 물어봤다. 남편은 달리아에 관심을 보이는데 봄에 나온다고 했다. 달리아는 구근이 고구마처럼 마구 달리는데 그걸 겨울이 되기 전에 파서 실내에 저장해 뒀다가 봄에 다시 나눠 심으면 된다고 한다. 몇 년 후면 달리아 꽃 부자가 될 것 같은 상상을 해보았다.


퇴근 후 일상도 조금 바뀌었다. 집에만 오면 글쓰기인지 조회 수 중독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증상으로 책상에 앉아 핸드폰에 매달려 있던 나였는데, 이제는 핸드폰은 거들떠도 안 본다. 핸드폰에는 브런치도 블로그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나의 귀한 태블릿에 들어가 글을 올린다.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린 태블릿에게 짧은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괜찮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또 만날 수 있다.


복잡한 삶을 모두 한꺼번에 정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위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집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 어제는 심지어 가게 나의 부엌 앞 작은 마당을 비질했다. 실은 작은 마당을 둘러가며 블록을 걷어내고 식물을 심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벌인 일인데 빗자루질과 정리만으로 깨끗해졌다. 여러 곳에 관심을 보일수록 더 나은 방법이 보이고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



핸드폰을 아예 안 사용할 수는 없다. 꾸준히 2시간에서 3시간 정도의 사용 시간이 찍힌다. 쇼핑을 하기도 하고 메모장에 글을 쓰기도 한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싶어 어떤 날은 100개가 넘는 문자를 정리하기도 했고, 100개가 넘는 광고 메일을 정리하기도 했다. 핸드폰 속에도 정리할 것이 많았다. 나는 이러다 정리의 신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날은 ‘통계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다시 브런치 앱을 핸드폰에 깔기도 했다. 9시가 넘어 10시가 가까워 오는데 퇴근을 못하는 날이면 또 핸드폰에 앱을 깔고 로그인했다. 글을 올리고 바로 삭제했다. 또 필요한 날이면 삭제했던 앱을 깔고 로그인하고 삭제를 반복하는 ‘기행’을 벌이곤 했다. 나는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다. 핸드폰을 버리지 않는 한 조회의 유혹은 계속해서 나에게 마수의 손길을 뻗칠 것 같다. 심지를 굳건히 하자.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 멀쩡한 사람이 되자. 통계를 보려고 앱을 깔고 로그인을 하고 삭제를 하는 건 조금 번거로워지고 있다. 다행이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핸드폰과 거리를 두고 있다. 핸드폰 속에 필요한 것이라곤 가장 기초적인 연락기능일뿐이다. 슬프게도 심취해서 들여다볼 것이 이제는 거의 없다.


얼마 전에는 핸드폰 쇼핑에 또 열을 올리는 나를 발견하고 쿠팡 멤버십을 과감히 탈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필요한 물건을 습관적으로 담았고 무료배송이 안 된다는 안내에 19800원이 될 때까지 장바구니에 넣어놨다. 그러나 장바구니에 넣어놨던 상품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필요 없는 물건이 되는 신기한 현상이 발생했다. 하하, 나는 현명한 소비습관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지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조회 수는 어느 날 아침 일의 자리 숫자로 바닥을 찍었다. 블로그는 벌써부터 그랬다. 망하고 있는 나의 공간들을 보며 슬픔에 잠겼다. 그러나 블로그처럼 조회 수가 바닥을 찍자 마음이 조금씩 변했다. 중독자들에 관한 책들을 볼 때면 한 목소리로 하는 말들이 있다.


바닥을 쳐야 올라갈 수 있다.


나는 정신을 차렸을까?



나는 가장 낮은 곳에서 작은 물고기, 납작한 물고기가 되어 기어 다닌다. 언젠가 글 속에 써넣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땐 , 내려간다. 저 바닥으로 ~~ , 이런 노래 가사를 첨부했던 것 같다. 나를 미꾸라지에 비유했던가? 지금은 그리 절망적이지는 않다. 나를 도와주는 많은 장치들이 있어 낮은 곳에서 일상에 관심을 가지며 삶을 조금씩 정리하고 꾸려나가기로 했다. 그러던 중 7월의 멤버십 발표가 났다. 고민하는 많은 작가님들이 부러웠다. 자기 자신의 글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다는 걸 뜻할 테니까.


그리고 오늘 크리에이터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확인했다. 근무 중 핸드폰에 앱을 깔고 로그인하고 확인하고 환호하고 삭제하는 기행을 또 펼쳤다. 크리에이터 안내 메일에는 의미심장한 문장이 들어 있었다. 독자와 소통하는 작가가 되라는 것 하나, 그리고 글을 열심히 안 쓰면 크리에이터 배지를 뺏는다는 경고였다. 왜 못하는 것만 눈에 들어오는지 원. 핸드폰 절약에 관한 결과물이 없어 방황하고 있던 나는 연재글은 생각도 않고 있다가 있다가 이렇게 ‘핸드폰 기행’을 일삼는 우스운 글을 올리게 되었다. 받은 것을 뺏기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연재는 모두와의 약속이니 앞으로 신중히 결정해야겠다. 내 글의 무게가 무거워져 더욱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기행’을 꾸준히 일삼고 있으나 분명 작은 성과는 있다. 다음 주에는 더욱 뚜렷이 확 눈에 띄는 성과를 들고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


핸드폰을 이기고 나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되겠다.


나는 핸드폰이 아니라 나의 삶 속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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