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렬 독서를 시작했다

책이 답이 되고 있다.

by 눈항아리

핸드폰 속에 들어있는 블로그 앱과 브런치 앱과 유튜브 앱을 삭제했다.


방황하던 나는 다시 책 읽기에 몰입하고 있다. 한 권이 아닌 좀 어수선하지만 여러 권 독서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근래 가게 카운터에서 문학동네 <톰소여의 모험>을 읽었다. 그리고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기 시작했다. 하루키의 <먼 북소리> 여행 에세이를 읽은 후라 계속 이어서 여행하는 느낌이다. 카운터 아래 한쪽은 대여섯 권의 책이 꽂히며 책꽂이가 되어가고 있다. 카운터뿐만이 아니다. 내가 앉는 곳, 잠시 서는 곳 어디에나 책이 놓이고 있다.


카운터에서 대기 중 종이책을 펼칠 여건이 안 되면 밀리의 서재를 읽는다. 밀리의 서재에서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읽고 있다. 2편 동로마제국의 몰락을 읽으며 전투 장면이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이 책은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적벽대전 같은 거대한 전투 장면을 좋아한다. 이상한 여자다. <반지의 제왕>에서도 잔다르크가 나오는 영화에서도 늘 전투 장면에 푹 빠진다. 4편의 헨델, 제목을 보고선 ‘헨젤과 그레텔’의 그 헨젤인가? 했다. 음악을 모르는 나인데 높낮이 흐름이 있는 콸콸 흐르는 계곡물을 타면서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으로 읽었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읽으면 역사를 마구 공부해보고 싶어진다. 한때 역사학도를 꿈꾸었던 내가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만났더라면 참 좋았을 책이다. 하루 고민하고 바로 책을 주문했다. 책을 기다리는 건 기쁨이다.



집에서 잠자기 전에는 마크트웨인의 <허크베리 핀의 모험>을 읽는다. 잠자리 독서를 다시 시작한 것도 큰 성과다. 예전에는 늘 아이들에게 읽어줬는데 추억의 잠자리 독서다. 요즘은 아이들과 잠자기 전 누워서 조용히 읽기도 하고 소리 내 읽기도 한다. 듣는지 마는지 복실이는 만화책을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리 내어 읽으면 책이 나에게 쑥쑥 흡수되는 듯하다. 마크 트웨인의 모험은 어른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개구쟁이 아이들의 영혼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장난기 많은 아들들의 다음 행로를 파악하는데 좋다.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나란히 누워 읽으면 또 좋다.


혼자 있는 공간에도 책을 배치했다. 가게 주방 핸드폰 거치대 옆에는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을 펼쳐놨다. 조목조목 따지며 신이 없다고 말해준다. 옳은 말을 정말 똑 부러지게 말해주니 아주 속이 시원하다.



주방 탁자에는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뒀다. 한 블로그 이웃님은 집 앞 월든을 자주 거닌다. 이웃님의 사진과 글로 나도 함께 그 길을 거닐며 언젠가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꼭 읽어야지 생각했었다. 드물게 서점에서 정가 주고 고심해서 샀다. 꼰대 어르신이 젊은 나를 가르치려 드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내가 시골에서 풀과 벌레와 힘겹게 적응 중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옳은 말을 가르치려 드니 조금 거북할 때가 있지만 다 맞는 말이라 때로는 참으면서 읽고 있다. 대신 <월든>은 새기고 싶은 좋은 구절이 많다. 필사하기 좋다. 조만간 집 책상으로 데리고 와 아침, 저녁 필사 책으로 쓸까 한다.


차에는 제인 구달의 책 <희망의 밥상>을 뒀다. 복실이의 책도 나란히 있다. 화장실에도 책 한 권이 있다. 밀란 쿤데라의 단편 소설집이다.


읽는 양은 많지 않다. 빨리 읽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냥 천천히 생각하며 읽는다. 나는 한 권 독서를 계속해오며 여러 권을 한꺼번에 읽는 것은 어수선하고 정신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권 독서는 꽤 매력이 있다. 책 한 권 진도가 지지부진해도 다른 책을 읽으며 만회할 수 있다. 사유가 겹치며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가령 <만들어진 신>과 <여행의 기술> 구름 위를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본다. 시점의 변화를 느낀다. 하늘을 나는 매도 신도 우리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굽어 살펴보는 신의 존재를 그냥 넘길 수 없다. 나는 <만들어진 신>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멈추게 된다. 신의 개념에 대해 더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한 번에 접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가장 좋은 건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곳곳에 책을 배치해 두니 그냥 아무 데서나 집어 들면 된다는 점이다.



핸드폰을 적게 사용하자며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곳곳에 책 배치하기’가 나에게 병렬 독서를 시작하게 해 줬다. 책이 답이 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차피 책 읽기 아니면 글쓰기다. 종일 글쓰기의 반응에 귀를 쫑긋하고 있느냐 아니면 내실을 다질 것인가의 문제다. 나는 나를 이끌고 가는 사람이 될 테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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