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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May 22. 2024

님아 그 라면을 사지 마시오

불량주부 탈출 미션 첫 번째


라면을 퇴출시켜라.


라면 퇴출을 결심했지만 이미 쌓인 라면이 너무 많다. 수를 헤아려 보지 못했지만 무릎 높이까지 쌓였다. 가게에도. 집에도. 저 먹을 것을 버리지도 못하고 흠. 먹긴 먹어야지.


그런데!


남편이 다음 날 마트에 갔다 또 새로운 라면을 사 왔다. 길 하나만 건너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데 왜 20리터 종량제 봉투 한가득 담아 오는 걸까. 스파게티면 한 묶음과 비빔면 두 묶음이 새로운 식구로 들어왔다.



비빔면은 있는데 왜 사 왔소?


30프로 할인을 하길래.


스파게티는 못 보던 거네?


스파게티는 복실이가 잘 먹을 것 같아서.


맞다. 복실이는 특히 토마토 스파게티를 좋아한다. 어린이 외식 코스는 대개 비슷하다. 중국집이거나 돈가스집이거나. 중국집에 가면 자장면 한 그릇을 폭풍 흡입하고, 돈가스집에 가면 토마토 스파게티를 게눈 감추듯 먹는다. 나가서 밥 먹을 때마다 입가에 묻혀가며 볼을 부풀리고 맛있게 오물오물 씹어 먹는 아이가 눈에 밟혔겠지. 그래서 스파게티를 사 왔겠지.


그런데 왜 세 묶음이나 사 왔어?


3개를 사야 30프로 할인을 해 준다잖아.


오뚜기 제품은 교차 할인이 된단다. 장사를 잘하는 오뚜기다. 오뚜기 할인 행사 덕분에 라면 12개가 순식간에 더해졌다.


님아 라면을 사지 마세요.



일요일 점심은 신나는 스파게티 라면! 늦은 아침을 먹은 터라 살짝 점을 찍는 느낌으로 조금씩 나눠 먹으면 되지 않을까?  면을 삶고 물을 따라 버리는 조리법엔 손잡이가 긴 냄비가 제격이다. 작은 냄비에 하나씩 끓인다. 새로운 라면이라면 라면 본연의 맛을 위해 하나씩 끓인다. 4개 조리 시간은 참 길다. 시간이 꽤 걸린다. 꼬마들부터 하나씩 끓여준다.


달복이와 복실이 스파게티 하나 끓여서 반반 먹어. 모자라면 또 끓여줄게. 우선 먹고 있어.


복동이도 스파게티?


응!


복아 뭐 먹을 거야? 비빔면?


비빔면 먹을까?


그래 비빔면 먹어.


아니야 스파게티 먹을게.


달복아 복실아 다 먹었네? 짜파게티 더 끓여줄까?


아니 스파게티.


맛 좀 보려고 했는데 칫.



다른 라면으로 유인해 봤지만 걸려들지 않는 아이들. 스파게티 라면 4개는 빠르게 모조리 소진되어 버렸다. 남편은 진즉 스파게티 생각은 안 하고 있었단다.


우리 부부는 비빔면을 먹었던가? 왜 생각이 안 나지? 아~~ 스파게티!


 6인 가족 라면을 순서대로 끓이면서 긴 시간 스파게티 생각을 너무 골똘히 했나 보다. 안 먹고는 못 배기겠다. 꼭 사 먹자 마음먹었다. 30프로 할인이라니 끝나기 전에 얼른 가서 더 사 와야겠네. 먹고 싶은 건 먹고 봐야지. 맛은 봐야 할 것 아닌가.





라면을 사러 간 것은 아니지만 가게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가는 김에 스파게티 라면을 사 오려고 했다.  그러나 고맙게도 마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하얗게 변해버리고 마는 치매형 머리 덕분에 필요한 것 한 가지만 얼른 사서 돌아왔다. 왜 계산을 하고 문을 나서 길을 건너면서 다시 생각이 나는 걸까.


할인행사 끝나기 전에 사야 하는데...


그렇게 스파게티 라면 맛은 못 봤다. 아이들에게 아주 긍정적인 반응이라 다음번에 눈에 띈다면 꼭 집어와야지.


님아 그 라면을 사지 마세요.
엄마까지 그러면 아니 되오.



밥 구상을 미리 해놔야 한다. 뭐 먹을래? 하고 물어볼 때 답을 안 하면 순간 끼니가 라면이 된다. 밥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귀찮은 나머지 라면을 먹자는 의견에 뜻을 더한다. 맛있는 라면도 자꾸 생기고 큰일이네.


짜장 라면 한 묶음은 맛보지 못한 채 처음 사온 그 모습 그대로 선택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번 사온 짜장 라면의 존재를 아시오?


구매자 본인은 짜장 라면을 잊은 것 같다.



어린이 입맛 보장, 부드러운 식감.


라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주말에 마트에 가서 먹을 것도 잔뜩 사 왔다. 음식에 필요한 채소도 구비했다. 월요일, 화요일 이틀 라면을 안 먹고 잘 버텼다.


오늘 점심은 시금치랑 당근 가득 넣은 김밥 어때요?


그럼 컵라면에 물 부을까?


못 말린다.


컵라면을 사러 갈 시간은 안 되고 하나 남은 짬뽕 라면을 끓여 반반 나눠 먹었다.


김밥도 당분간 금지!


라면을 몰아내는 그날까지  


님아 그 라면을 생각하지 마세요.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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