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대가」 ③
이른 아침 휴게실은 자리를 정리하는 사람들로 어수선했다. 레자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밤에 찜질한 효과가 있었는지 오래 자지 않았는데도 컨디션이 훨씬 나았다. 예비 변호사는 보이지 않았다. 누워 있던 머리맡에 맥반석 달걀 두 알과 영수증이 담긴 나무그릇이 놓여 있었다. 영수증에는 먼저 가 봐야 한다는 말과 함께 예비 변호사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파란 펜으로 적혀 있었다. 영수증을 주머니에 넣고 달걀을 이마에 부딪쳐 깼다. 이제 달걀껍질 같은 또 하나의 이름을 까서 버려야 할 시간. 여행 첫날의 흥분을 떠올리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달걀노른자가 퍽퍽하게 씹혔다.
찜질방 건물을 나서자마자 멈춰 섰다. 축축하고 두터운 안개가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예비 변호사가 아침이면 볼 수 있다고 했던 해무는 예상 밖으로 도시를 압도하는 정도였다. 길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안개를 바라봤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배기음로만 존재감을 드러내며 귓가에 다가왔다 멀어졌다.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고 편의점에서 값싼 포켓사이즈 위스키를 한 병 샀다. 차를 기다리며 안개 입자가 미약한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것을 지켜봤다.
택시 안에는 무겁고 축축한 침묵이 흘렀다. 해무는 내가 탄 택시를 힘껏 빨아들이고, 이따금 우리 앞에 다른 차들의 뒤꽁무니를 뱉어냈다. 나는 뒷좌석에서 술을 몇 모금 마셨다. 기분 나쁜 조바심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심장이 아프도록 맥박이 세게 뛰고 입술이 말랐다. 눈을 감았다. 목적이 불분명한 충동과 알기 싫은 욕구가 안개가 뱉어내는 차들처럼 자꾸 얼굴을 디밀었다.
호텔 유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본 도시는 해무에 점령당한 듯 보였다. 멸망한 세계를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고요한 복도를 지났다. N이 묵고 있는 방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에어컨은 오한이 들 정도로 세게 켜져 있었다. 응접실과 화장실, 드레스 룸, 침실에까지 널브러진 간밤의 흔적사이를 종군기자처럼 지나갔다. 예상과 달리 N은 아직 인호였다. 옆에 로키를 낀 채로. 둘 다 알몸으로 이불과 엉킨 채 뻗어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와인색 커튼을 걷었다. 햇살이 단박에 어둠을 쪼갰다. 인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아직까지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손톱에 땀이 묻어났다. 나는 인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이불을 로키의 목덜미까지 끌어다 덮었다. 이불을 놓고 로키를 돌아봤는데 자는 줄 알았던 그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짓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좀 일어나라.”
나는 태연한 척 N에게 그렇게 말하고 미니 바로 갔다. 바 테이블 위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반쯤 남은 와인을 병째 몇 모금 마셨다. 소파에 앉으려 몸을 돌렸다. 탁자에 핏자국이 엷게 남은 주사기와 술잔, 물병, 알약 몇 알이 나뒹굴고 있었다. 뱃속에서 와인이 아까 마신 위스키와 따로 놀며 요동쳤다. 곧장 N에게로 돌아갔다.
“너 뭐하자는 거야?”
“왔어?”
몸을 일으키려는 N에게서 거칠게 이불을 걷어냈다. 팔뚝 안쪽 정맥이 바늘자국을 간직한 채 검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이런 미친.”
“비켜.”
N은 성가시다는 듯 손사래를 치고 욕실로 가 문을 닫았다. 나는 소파로 돌아가 엉망으로 어질러진 탁자를 내려다봤다. 샤워기 소리가 들렸다. 이걸 언제 다 치우나 싶었고, 전날 했던 생각들, N이 마약에 손을 댔다면 여행은 이미 끝장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메웠다. 나는 그대로 소파에 앉았다. 탁자에 다리를 올리고 와인을 마셨다. 좆됐지 뭐. 술이 거의 다 비어 가는데도 병은 몹시 무거웠다. 탁자에 흐트러진 몇 정의 알약이 눈에 들어왔다. 서규찬을 연기하기 위해 공부한 향정신성의약품들을 떠올렸다.
“오빠.”
기척도 없이 다가온 로키가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다리를 접어 내렸다. 로키는 샤워가운을 두르고서 풀린 눈으로 잠시간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갑자기 목에 키스하려 들었다. 샤워가운 속 알몸이 그대로 보였다.
“왜 이래요?” 그를 살짝 떠밀고 떨어져 앉았다. 그런데도 다시 몸을 붙이기에 다급히 일인용 소파로 옮겨가 앉았다.
“저 싫어요?” 로키가 물었다.
“아니요.”
“그럼 왜 피해요?”
나는 말없이 술을 몇 모금 마시고 소파 옆에 병을 내려놨다.
“부끄러워요? 귀엽네.”
“헛소리 마세요.”
“아님 헤픈 년 같아서 싫어요?”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갑자기.”
“나같이 헤프고 골 빈 애들 한심하죠? 인생 밑바닥 같고.” 로키가 다리를 뻗어 탁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 몸을 숙여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 손가락으로 쓸어 올렸다. “근데 진창을 구르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진주는 하늘이 아니라 땅에 있으니까. 오빤 똑똑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다.”
로키의 목소리가 나른했다.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한때는 골 빈 인간들을 혐오했다. 딱 보면 생각 없이 사는 새끼들인지 분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개개인의 철학이 있다는 것, 적어도 모두 내 생각만큼 골 빈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땐 수치심에 휩싸였다. 나는 입술을 축이며 공연히 울대를 감싸 쥐었다. 입이 말라왔다.
“이거 하고 싶어요?” 로키가 내 무릎 위에 사뿐히 앉더니 약 한 알을 집어 자기 혀에 올렸다. “하고 싶죠?”
“왜 이래, 비켜요.”
그가 내 목을 감싸 안았다.
“키스 한번이면 되는데.”
얼굴과 가슴께로 뜨거운 숨결이 쏟아졌다. 작은 이성과 큰 이성.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아. 로키가 손을 뒤로 뻗어 탁자에 있는 약 한 알을 혀에 또 얹었다.
“한 번만.”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았다. 로키가 약 한 알을 더 혀에 올렸다.
“선생님, 나 이거 다 먹으면 죽는데? 응?” 그는 부드러운 손으로 내 턱을 쥐고 자신을 보게 했다. 예쁘게 깜빡이는 눈. “오빠도 하고 싶잖아.”
이런 상황에서 나의 정신은 아득해지기는커녕 어느 때보다 명징하게 나의 욕구를 직시했다. 전날 종일 기분이 안 좋았던 이유는 아이러니했다. 나는 내심 N이 마약에 취했기를 바랐고 내게도 권하기를 바랐다. 얼토당토않게도 N을 걱정한 게 아니라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 해 보지도 않은 탈선에의 강한 욕구. 이미 중독자인 마냥 강렬하게 약을 원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윤리와 탈선 사이의 시퍼런 칼날 위에서 나 자신을 속이고 싶어 했다. 매혹적인 로키에게 홀렸다고, 유혹에 정신이 아득해졌다고, 내가 원한 건 약이 아니라 성애였다고. 극도로 경멸하는 대상을 원해본 적 있나요?
“무서워요?”
아니.
“나도 하잖아. 같이 취해요, 응?”
한 번만 더.
“키스 한 번이면 되는데.”
이명.
그래 씨발, N도 했는데.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로키의 목덜미를 감싸 당겼다. 입 속으로 불쑥 들어오는 따뜻한 혀. 그리고 알약. 로키는 혼이 빠질 듯 진한 키스를 해주고는 혀로 약을 나눠가지며 입술을 떼었다. 로키가 한쪽 팔을 뒤로 뻗어 반쯤 채워진 물컵을 가져다 내 입에 대주었다.
“물 마셔야지.” 컵을 기울였다. “더, 더, 다 마셔요. 옳지.” 그는 내 무릎 위에 앉은 채로 물 한 잔을 더 따라서 줬다. “입 헹구고.”
로키는 내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물을 입 속에 흘려 넣었다. 그 물을 다 마시자 다시금 나를 끌어안고 진하게 키스했다. 풀어지는 샤워가운. 감촉으로 느껴지는 나신의 따스한 실루엣. 숨 쉴 틈 없는 진한 키스. 입술, 목, 쇄골, 가슴.
한참동안 키스를 나눈 로키가 입술을 뗐다. 그리고는 여전히 풀린 눈으로, 신나고도 달뜬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예쁘다. 사랑스러워. 로키가 짧게 몇 번 더 입을 맞췄다.
“어제는 무슨 약 했어?”
“궁금해?” 로키가 귀엽게 웃었다.
“인호는 무슨 약 맞았어?”
로키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한 번 더 입술을 맞추고 일어났다. 샤워가운을 고쳐 입으며 그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저 오빤 약 안 했어.”
“주사 자국 있던데?”
“아, 그거.” 로키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진절머리 치는 표정을 지었다. “피 뽑은 자국이야. 이어폰 꽂고 음악 들으면서 옷 다 벗고 주사기로 자기 피 뽑는데, 처음엔 완전 변태 싸이코인줄 알았다니까?”
“뭐라고?”
나는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너무 무거웠다.
“그 영화 있지, <아메리칸 사이코>? 거기 주인공 같더라니까.”
“먹지도 않았어? 약을? 아예……”
입이 바짝 말라서 목소리가 잘 안 나왔다. 인호는 약을 먹지도 않았다고 로키가 말했다. 소파가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며 나를 삼키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인호가 앞에 서 있었다.
“진정제만 먹은 게 아니야, 너.” 인호가 말했다.
뭐? 목소리가 안 나왔다.
세상이 천천히 가라앉아. 눈이 천천히 깜빡여진다. 블러. 블러 처리. 머리가 무겁다.
탁자에 앉아 나를 보는 인호. N.
“네가 마신 물이 GHB라는, 그……”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물뽕이야.”
암전.
좆도 하나도 기억 안 나.
“뭐?”
“좆도 씨발, 하나도 기억 안 난다고.”
“이야, 정말 그렇구나. 나는 발정난 줄 알았잖아.”
N이 웃으며 다가와 침대 발치에 걸터앉았다.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창가에 커튼이 걷혀 있었다. 해무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는, 죽여주는 도시 야경.
“너, 팔에 주사 자국은 뭐야?” 내가 물었다. 입이 바싹 말라서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피 뽑았어.” N이 소매를 걷어 보여 줬다. “혈액순환에 좋대서.”
“개소리하지 마.”
“도와준 거잖아.” 그가 침대 옆 협탁에 있던 물병을 건넸다. 받지 않았다. “생수야, 생수.” 그가 몇 모금 마시고 다시 건넸다. 나도 마셨다.
“뭘 도와줘?”
“약 해 보고 싶어 했잖아. 기회를 줬지.”
“미친 새끼. 부추길 게 따로 있지.”
“핑계 대는 거야?” N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난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야.”
“편파적이었잖아.”
“편파적이었었지. 약도 없는데 어떻게 약을 해? 네가 이때까지 약을 안 한 건 엄밀히 말해서 선택이 아니었지.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선택할 수 있었고, 결과는?”
N은 담배를 문 채 신난 듯 양팔을 저울마냥 올렸다 내렸다 반복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지러웠다.
“날 탓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기꺼이 핑계되어 줄 생각이었으니까. 어때? 공범 의식이 마음먹는 데 도움이 됐어? 네가 약을 했으니 나도 한다, 뭐 그런 운명공동체 같은 생각이었어?”
“닥쳐 봐. 정신 하나도 없으니까.”
“넵. 그럽죠.”
N이 입술을 앙다물며 미소를 머금었다.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뜨거운 인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불쾌한 두통. 자괴감. 극도로 경멸하는 것을 원한, 닥쳐.
“어제 그 약쟁이는 어디 가고 둘이 있었어?” 내가 물었다.
“아, 여자애가 거래를 제안했거든.”
“거래?”
“진작에 눈치 깠더라고. 우리 변호사도 의사도 아닌 거.”
“뭐?”
“너 가자마자 나한테 그러던데? 사기 치는 거 눈 감아줄 테니까, 뽕쟁이새끼한테서 약만 빼앗고 얼씬도 못하게 만들라고. 그리고 날 샐 때까지 변호사 행세도 계속 하고.”
“변호사 행세는 왜?”
“모르지. 근데 눈치 깐 사람 앞에서 계속 연기하는 것도 재밌더라.” N이 일어나서 창가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너도 알잖아. 사람들은 우리가 누군지 신경 안 써. 하룻밤 노는 사인데 돈 많고 재밌으면 장땡이지, 의사건 건달이건 뭔 상관이야?”
나는 땀에 젖은 얼굴을 감싸 쥐고 잠시 숨을 골랐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고개를 들어 N에게 물었다.
“뭐가?”
“눈치 깐 사람 앞에서 연기하는 게 재미있었다고? 남들을 속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오롯이 살아보는 게 목적 아니었어?”
나를 바라보는 N의 눈빛이 조금씩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침대로 다가와 앉았다.
“네 말이 맞아. 중요한 건 타인으로 사는 거지. 근데 내가 왜 실존하는 사람들의 명함을 쓰겠어? 남들 속이는 재미는 덤이야. 원래의 목적이 틀어졌다고 덤으로 얻을 재미까지 잃을 필요는 없잖아?” N이 다시 우정 어린 눈빛을 띠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두 번 다시 들킬 일 없어. 애초에 우리가 허술해서 당한 것도 아니었고. 어제 그 여자랑은 재미있게 놀았어? 찜질방에서 달걀도 먹고 그랬어?”
“아이씨, 달걀.”
나는 다시 얼굴을 감싸고 침대 헤드쿠션에 머리를 기댔다. 주머니에 예비 변호사의 전화번호가 적힌 영수증이 있었다. 의사선생님, 나 이거 다 먹으면 죽는데? 씨발. 로키는 대수롭지 않게 친구에게 간밤의 일을 얘기할지 모른다. 예비 변호사에게 모든 진실을 농담하듯 까발리면 끝장이었다. 기억에 없는 로키와의 섹스도 문제겠지만, 예비 변호사와 밤새 나눈 대화 때문이 더 크다. 아무리 거짓과 진실을 잘 섞었다고 해도, 일말의 거짓이 드러나면 모든 게 거짓이 되어 버리니까.
“뭐야, 달걀껍질이라도 씹었냐?” N이 웃었다. “아무튼 즉흥여행인데도 꽤 괜찮았어.”
“이젠 어쩔 거야?”
“좀 쉬어야지. 나흘 뒤에 보자. 하룻밤 푹 자고 체크아웃해.” N이 침대를 빙 둘러서 나가다가 소파 앞 탁자에서 멈췄다. 그는 탁자 위에 놓여 있었을 검정색 가죽 파우치를 집어 들어 내게 보여 주었다.
“이건 선물이다.”
그는 파우치를 다시 내려놓고 룸을 나섰다. 멀어져가는 걸음소리와 문소리에 집중했다. 잠시 후 협탁에서 휴대폰을 찾아 셜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나간다. 동선 따.”
“오케이.”
푹 쉬라고? 그럴 수는 없지.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