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메시아」 ①
농가는 산간지방인 북쪽 어딘가라고 했다. 지도로만 봐도 토 나오게 먼 곳이었다.
기차 좌석에 앉아 발치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덤으로 얻는 재미라고? 애초에 N은 타인으로 사는 것만큼이나 남들을 속이는 데에도 만만찮게 신경 썼을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녀석이니까. 세 마리까지도. 간만에 쓴 캡모자가 갑갑해 벗었다가 다시 눌러썼다. 조금 전 옷들을 새로 살 때 함께 장만한 모자였다. 여행할 때 입었던 옷은 기차역 근처 헌옷수거함에 넣었다. 예비 변호사의 연락처가 적힌 영수증은 잘게 찢겨 지금쯤 기차역 화장실 정화조를 맴돌고 있을 것이다.
셜록은 N이 절벽 아지트 쪽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그 말은 남쪽으로 향했다는 것이고, 지금이야말로 농가의 정체를 알아낼 절호의 기회라는 뜻이었다. 나는 N이 혼자 다니는 자유시간 동안 세 번째 토끼를 사냥하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절벽 아지트는 나도 알고 있는 장소이므로 사냥터에 적합하지 않았다. 남은 곳은 그가 주기적으로 드나든다는 농가뿐이었다.
셜록과 긴밀히 연락하며 N의 행적을 추적해 왔지만 뒷조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N은 무엇을 물어도 대답을 피했다. 그러니 내가 알아내는 수밖에. 여행에서 쓴 물건과 옷가지를 중고로 팔아 추적자금으로 사용했다. 기차표 예매 앱을 켜서 출발지가 같은 기차표 두 장을 확인했다. 농가로 가기 위한 기차표는 내 명의의 체크카드로, 엉뚱한 행선지로 가는 내일 자 기차표는 N의 신용카드로 끊었다. 내친김에 내일 그 지역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티켓도 예매했다. N이 유추하는 나는 오늘밤 호텔에서 푹 쉬며, 다음날 생뚱맞은 도심 한복판에서 뮤지컬을 볼 생각에 행복해하고 있을 것이다.
도심을 벗어나자 검은 거울 같은 차창에 얼굴이 비쳤다. 기차와 함께 흔들리며 진정을 찾자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N의 뒤를 밟는 것은 내 상황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명명백백히 알아야 안심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아님 혹시 모를 그의 비밀을 캐내어 녀석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는 걸까. 비열한 짓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발치에 둔 가방을 쏘아봤다. 따지자면 파우치에 마약을 챙겨준 N도 비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코 쉽사리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쉽사리는.
휴대폰 알람이 울려 선잠에서 깼다. 새벽 두 시. 미어캣처럼 고개를 내밀어 객실을 둘러봤다. 네댓 명뿐인 승객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다섯 시간 넘게 앉아있던 터라 온몸이 찌뿌듯했다. 곧 다음 역에 정차 예정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가방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고 짐을 챙겨 나섰다. 객실 간 통로를 지나다 무심코 본 세면대 거울 속에는 썩은 두부 같은 얼굴이 모자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플랫폼에 내린 사람은 나 혼자였다. 더위도 곧 한풀 꺾일 모양인지 공기가 선선했다. 역사는 간이역을 연상시킬 정도로 몹시 작았다. 내가 역사를 나서자 역무원은 불을 끄고 문손잡이에 밀대 손잡이를 끼웠다. 콜택시를 부르고 처마 아래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대기시간 십오 분. 후드집업을 입고 지퍼를 올렸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정신을 또렷이 하려 애썼다. 따지고 보면 여행을 시작하고서 N을 마주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함께 있을 때는 늘 여행을 준비하거나 여행 중이었는데, 준비과정에서부터 우리는 명함 속 인물에 빠져들기 때문에 서로 마주하는 동안에는 대부분 다른 사람인 셈이었다. 지금이야말로 N의 민낯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일지 몰랐다. 세 번째 토끼. 그것은 아마 자금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까지 쓴 여행 경비를 얼추 계산해 보면 이 생활의 끝도 머지않았을 텐데 N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농가. 팔만 평 땅을 사서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곳에서 벌어질 일들은 감히 짐작조차 어려웠고, 어쩌면 생각지 못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마른 입술을 축이고 창밖을 보았다. 최근에는 여행보다 N을 추적하는 데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좋지 않은 조짐이었다. 혹시나 어떤 위험을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했다.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산과 가장 가까운 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택시는 곧장 불법유턴을 하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텅 빈 거리를 둘러보았다. 서늘한 바람이 몸을 샅샅이 훑고 지나가 어떤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도로를 따라 걸으며 셜록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
“아니.”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도착했어?”
“아랫동네야. 위치추적 가능하다고 했지?”
“잠깐만.” 이것저것 만지는 소리가 들렸다. “응. 보이네. 근데 이거 불법이야.”
“네가 뭘 그런 걸 따져.” 나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갈림길 앞에 섰다. “갈림길이야. 어느 쪽으로 가야해?”
“산으로.”
“그럼 바다로 가겠냐? 엄밀히 말하면 내가 서 있는 데도 산이야.”
“아무데로나 좀 걸어봐.”
나는 왼쪽 길로 갔다. 아무리 걸어도 아직 모른다기에 계속 걸었다. 십 분쯤 지나고서야 길을 잘못 들었다고 했다. 나는 다시 원점으로 뛰어 돌아갔다. 숨이 턱 끝에서 깔딱거렸다.
“너 씨발, 일부러 똥개훈련 시키지?”
“졸려 죽겠구만 왜 그런 뻘짓을 해? 닥치고 가, 빨리.”
오른쪽 길로 갔다. 마찬가지로 십 분쯤 지나고서야 제대로 가고 있다고 일러주었다. 애초에 산중턱에 외따로 있는 농가라 일반적인 인터넷 지도로는 길을 찾아갈 수 없었다. 갈림길이 나오거나 길이 없는 곳을 맞닥뜨릴 때마다 셜록이 방향을 잡아주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더워져 후드집업을 벗고 가방도 한쪽 어깨로 멨다.
“너는 N이랑 계속 연락했던 거야?” 내가 물었다.
“아니.”
“그럼 어쩌다 다시 만났는데?”
“네가 뭔 상관이야.”
“심심하잖아. 한참 걸어야 하고.”
“뛰어, 새끼야.” 셜록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큰돈 필요할 때 N을 만났어. 그거뿐이야.”
“큰돈?”
“알려고 하지 마. 짜증나니까.”
“그래.”
나는 조용히 계속 걸었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셜록이 갑자기 톤을 높여 물었다. “전에 사무실 왔을 때 봤던 포주 기억하지?”
“그건 왜?”
“심심하다며 새꺄.”
“응. 야, 근데 이 방향 맞아? 여기 밭이야.”
“질러가.”
“젠장할. 포주는 왜? 드럼통에 들어갔어?”
“돈이 썩어빠졌냐? 처리하는 데 드는 돈이 얼만데.” 셜록이 성가시다는 듯 말했다. “그 자식이 사채를 쓰긴 했지. 근데 처음엔 사실 사채 건이 아니었어.”
“뭔 소리야?”
“살인청부.”
“살인청부?”
“일 년 전쯤에 중학생 여자애가 어떻게 모았는지 현금 오십만 원을 가져왔더라고. 그래서 혹시 나한테 채무 있냐고 물어보니까 아니래. 그럼 왜 왔냐고 물었지.”
“왜 왔대? 사람 죽여달래?”
“응. 지 삼촌을.”
“삼촌을? 왜?”
“존나 싫었나 보지. 사연까지 알아야 돼?”
“안 물어봤어?”
“씨발, 상담사냐?”
“하긴. 애 삼촌이 그럼 포주새끼야?”
“응.”
“죽였어?”
“그날 뭐 귀신 보셨어요? 돈 오십에 사람을 왜 죽여?”
돈 오십인 게 중요한 거야? 물론 생각만 했다. “그래서?”
“잘못 찾아왔다고 했지. 여긴 돈 빌려주는 데지 사람 죽이는 데가 아니라고. 근데 애새끼가 우물쭈물하면서 안 가. 귀찮아서 맥주 한 캔이랑 명함 한 장 주고 돈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했지.”
“미친놈.”
“그니깐. 너처럼 애새끼도 덜떨어진 게, 그럼 사람 죽이는 데 얼마 필요하냐고, 모자란 만큼 돈을 빌려달라는 거야. 똘똘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존나 김샜지. 그래서 그냥 내쫓았어.”
“이런 씨발.”
“뭐?”
“아니, 소똥 밟았어.”
“추임새 좆같이 넣네, 진짜.”
나는 신발 밑창을 흙에 비벼댔다. 한참 계단식 밭을 올랐더니 숨이 가빴다. “……그러고 나서 그 삼촌이라는 작자가 온 거구나?”
“너도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네.”
“칭찬 고마워.”
“꺼져. 두 달쯤 뒤에 포주새끼가 왔더라고. 돈 꿔줬지. 시간이 좀 지났어. 이자가 제법 붙었는데도 돈 갚을 생각을 안 해. 복날 됐다 싶어서 애들 시켜다 집에 가 보랬지. 없대. 그놈 업장 뒤져 보라 했더니 애들이 쫄았는지 망설이더라고. 내가 애들 몰고 직접 갔지.”
“오, 조폭영화 같다.”
“씨팔 누군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업장에서 놈 찾아내가지고 머리통 좀 쥐어박고, 응, 살살 어르고 달래면서 돈 갚을 여러 방도를 일러줬지.”
“어떤 방도?”
“궁금하면 빌리세요. 이자 싸게 해드릴게.”
“세상만사를 다 알 필요는 없지. 그래서?”
“알아들었다 싶어서 돌아가려 했지. 근데 이자라도 까 볼 셈인지 새끼가 여자를 대려 하데? 좆까세요, 하고 가려는데 미리 준비했나 봐. 여자가 왔어, 발도 존나 빨라. 근데 거기서 내 눈을 의심한 거야. 여자가 낯이 익어. 삼촌 죽여 달라던 애새끼랑 똑같이 생겼어. 나이만 좀 더 들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씨발.”
“세상이 그래.”
“인생 밑바닥이라 해도 그렇지, 어떻게 지 혈육을 파냐, 드러운 새끼.”
“거 봐, 순진한 새끼. 더러운 건지 교활한 건지 네가 어떻게 알아?”
“뭐?”
“이래서 사연이 중요하지 않은 거야. 네가 이 바닥 구르다 애새끼 사연 들었어 봐. 오십만 원이 아니라 오십 원만 줘도 포주새끼 담갔겠지. 씨발, 신이냐? 판사야? 판단은 내 몫이 아니라고. 뭐, 당장 그날 어린애가 설익은 머리 굴리는 건지 알 수도 없고.”
머리를 굴려? “애가 거짓말했다는 거야? 그런 구라를 왜 쳐?”
“말 존나 안 통하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돈만 주면 사람 죽이는 청부업자는 널렸어. 프로 아니더라도 막말로 그런 일 하겠다는 인간? SNS에서도 쌔고 쌔. 왜 사채업자를 찾아왔겠어? 세상물정 몰라서? 앗, 저 아저씨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로 무서운 사람이야! 하고 왔겠냐?”
“그럼 뭔데?”
“그따위 사정이라면 누구든 나서줄 거라고 생각했겠지. 아는 사람한테 얘기해 봐야 지 면상에 똥칠하는 격이니,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다 이미 씹창난 일에 익숙한 인간을 찾은 거라고. 마침 그게 사연도 안 묻고 사람도 안 죽이는 나라서 일이 이렇게 풀린 거지.”
“그게 말이 돼? 설령 거짓말이었다고 해도 그만큼 절박했겠지.”
“절박? 남의 사정에 마음 끓어서 제 방식 바꾸는 게 등신이지.” 셜록이 빈정거렸다. “진짜 사정이 그랬든 이빨을 예술로 깠든, 난 사람은 안 죽여. 빌려준 돈 받아내고, 안 갚는 새끼 팔 할쯤 조지는 게 내 일이지.”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몰랐다. 결과적으로 셜록은 자기 방식대로 아이를 도와준 거나 다름없었다.
“근데 너 진짜 사람 안 죽여?” 내가 물었다.
“뭔 소리야, 사람을 왜 죽여?”
“아니 뭐, 너라면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내가 웃었다.
“튀어와, 새꺄. 죽일 수 있는지 시험해 볼라니까.” 셜록이 길게 하품했다. “걷는 동안 계속 통화해 줘야 돼? 사십 분째야, 새꺄.”
“친구 좋다는 게 뭐야.”
“그러게. 뭐가 좋다는 건지 존나 모르겠네.”
“야, 여기로 가는 거 맞아? 온통 풀숲이야.”
“질러서 못 가? 둘러서 가.”
“말이 쉽지.”
둘러가기도 막막했다. 후드집업을 다시 입고 풀숲을 헤치며 걸음을 내딛었다. 열 걸음마다 제대로 가는 게 맞느냐고 확인했다. 빌어먹을 풀벌레들이 사방에서 울어대 방향을 잃기 일쑤였다. 이십 분쯤 풀숲을 헤쳤을까. 셜록은 거의 근처라고 했다. 흙길의 가파른 오르막을 기다시피 오르자 웬걸, 시멘트 길이 깔려 있었다.
“뭐야? 도로, 이거 산 밑에서부터 깔려 있는 거 아니야?”
“맞아.”
“미친 새끼, 진작 알려주지!”
“네가 간 게 지름길이야.” 셜록이 웃었다. “닥치고 가기나 해.”
“지름길은 무슨. 길도 아니었구만.”
낮이었으면 시야가 확 트였을 법한 풍경이었지만, 당장 보이는 것은 간격이 넉넉한 가로등 불빛 두 점에 어렴풋이 비치는 길뿐이었다. 산중턱을 깎아 만든 곳이라 길은 평평했다. 일단 멀리 있는 가로등을 향해 걸으면서 셜록에게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냐 물었다. 그는 잠시 지켜보더니 그렇다고 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농가가 보였다. 시멘트 벽돌로 담장을 두른 파란 슬레이트 지붕의 단층 주택이었다. 가로등이 비추는 지붕 한쪽 귀퉁이에 녹물이 흐른 흔적이 있었다.
“여기 같은데.”
“빙고.” 셜록이 약간 고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맙다. 이따 다시 전화할게.”
“사양할게. 등신처럼 바로 앞에서 담배 피우다 걸리지 말고.”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요. 끊는다.”
전화를 끊고 집 가까이 다가갔다. 주변의 소리라고는 풀벌레가 울음소리뿐이었지만, 사냥터에 근접했다는 긴장감에 맥박이 더욱 크게 들렸다. 까치발을 들고 담 너머를 살폈다. 불빛 하나 없이 썰렁한데다 이상할 정도로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발소리를 죽이고 대문 앞에 갔다. 녹색으로 페인트칠된 대문도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문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문고리를 살짝 들어 올리는 기분으로 열었다. 조용히 들어서서 대문을 문틀에 살짝만 끼워 닫았다. 마당은 풀 한 포기 없는 시멘트 바닥이었다. 건물 외관을 돌아다봤다.
“이게 뭐야……”
현관의 나무문은 손대면 부서질 듯했다. 벽에는 창문으로 쓰일 공간만 남아있을 뿐 창틀도 유리창도 없었다. 흉가나 마찬가지였다. 휴대폰 플래시라이트를 켜서 손가락 틈새로 뻥 뚫린 창가에 빛을 가늘게 흘려보냈다. 꼭 철거하다 만 건물처럼 부수다 만 내벽과 잔해들, 공사 자재들이 콘크리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당연히 사람도 없었다. 플래시라이트를 끄면서 셜록이 잘못 알려줬나 생각했다.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N의 전화였다. 황급히 대문을 열고 나가 농가 담벼락 모퉁이를 지나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뭐해, 안 들어오고?”
“응?”
뒤에서 대문이 캉, 캉, 캉, 캉하고 울렸다. 기겁해서 돌아보니 대문 앞에 N이 가는 쇠막대를 쥐고 서 있었다.
“안 들어오고 뭐하냐고.”
N이 웃으면서 쇠막대를 던져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길을 봤다가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다시 농가를 봤다.
“셜록, 이 개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