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메시아」 ②
대문과 마당을 지나 N이 열어둔 현관으로 들어갔다. 희미하게 들어오는 가로등 빛을 받으며 녀석은 잔해 가운데 서서 담뱃불을 붙였다. 그의 얼굴이 라이터 불빛에 붉어졌다가 금세 어둠 속에 묻혔다.
“눈치 챘겠지만 그래도 사실을 짚어 보자면, 첫째, 여긴 내 자금줄이고, 둘째, 네가 여기 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셋째, 당연히 내 뒷조사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뒤 밟은 건 신경 안 써도 돼. 너만 재밌었으면 됐어.”
“언제부터 알았어?”
“그게 중요하니. 옷들은 왜 팔았어? 현금 필요하면 말하지.”
“네 뒷조사에 쓸 돈을 너한테 달라고 하겠냐.”
창가로 들어오는 빛에 N이 뿜는 담배 연기가 홀연히 비쳤다. 실루엣과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그의 태도는 너그러움보다 무신경에 가까웠다. 나는 휴대폰 플래시라이트를 켜서 주변을 살폈다. 멀쩡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가 자금줄이라고? 철거용역이라도 뛰는 거야?”
“응.”
“뭐?”
“농담이야. 저기.”
N이 가리킨 곳을 플래시라이트로 비췄다. 벽돌 잔해 사이로 칠팔 센티미터쯤 되는 두께의 커다란 철판이 엎어져 있었다. 다른 잔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저게 뭐냐고 묻자 N이 그쪽으로 다가가 철판을 밀었다. 귀 아픈 마찰음과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것처럼 어떤 벽과도 평행을 이루지 않던 철판은 문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여기가 우리의 금고야.” N이 연극적으로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나는 비밀통로에 다가가 플래시라이트를 비췄다. 스무 칸은 족히 넘는 시멘트 계단이 보였다. 철판은 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아래에 미닫이 레일이 달려 있었다. N이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 물면서 창가 아래로 다가가 무언가를 가져왔다. 캠핑용 랜턴이었다. 그는 랜턴을 켜고 바닥에 앉아 계단이 난 공간으로 다리를 내렸다.
“작년에 주식시장 크게 흔들렸던 건 알지?”
N이 담뱃불을 붙이며 물었다. 나도 휴대폰 플래시라이트를 끈 뒤 담배를 한 개비 꺼냈다.
“그건 왜? 우리 망하는 데 크게 일조했잖아.”
“자세히 알아?”
나는 잠시 생각하다 입가를 일그러뜨리고 담뱃불을 붙였다. “그다지.”
“꽤 흥미로워. 한 삼사 년 동안 작전세력 밑에서 암암리에 일하던 주식관련 전문가 셋이 있었어. 작전을 설계하거나 인력 섭외는 좀 더 윗선에서 하니까 얘들은 말단,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하청쯤 되겠네.”
“뭐하는 사람들인데?”
“차트 관리하고 작전세력 통정거래도 해 주고, 고객 몇몇 차명계좌 관리도 하고, 찌라시 뿌려서 장에 활기도 불어넣어주는, 그런 일.” N이 담배를 들고 능글맞게 웃었다. “근데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 일은 잘하는데 대우 못 받는 부류들. 얘들이 딱 그랬어. 세력들이 필요할 땐 불러 써먹고선 노비 취급한다, 이거지.”
“열 받았겠네.”
“그래서 한 녀석이 제안을 했어.” N이 엄지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우린 이따위 대우를 받을 사람들이 아니다, 차라리 크게 한탕하고 해외로 뜨자. 다른 두 놈도 어지간히 불만이 많았는지 흔쾌히 승낙했어.”
“한탕이라니?”
“작전하는 애들인데 주식시장이야 도박판과 다름없지. 투자고 나발이고 개미들도 한탕 치려 몰려드는 판인데 오죽하겠냐.”
“작전을 먹겠다?”
“그런 셈이지. 해커 한 명을 섭외해서 그룹으로 활동을 시작했어. 일명 메시아. 평소처럼 작전세력 밑에서 하청을 받되, 커다란 작전 하나 물고 슈킹할 속셈이었지.”
“말처럼 쉽지 않을 텐데.”
“그렇지. 근데 요 리더란 자식이,” N이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면서 다른 손으로 엄지를 또 까딱거렸다. “난놈이거든. 녀석의 절친한 대학 선배가 작전 판에서 유능한 설계자로 이름 날리던 펀드매니저였어. 세력의 하청을 녀석에게 맡긴 것도 선배였지. 통정거래라는 게 타이밍이 정말 중요한데다 큰돈 오가는 작업이라 원래 다른 사람한테 절대 안 맡기거든. 믿고 맡긴 선배도 뒤통수 제대로 맞은 거지. 메시아 소속 해커가 선배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 다니는 펀드사 내부정보까지 해킹했어.”
“회사도? 금방 들통 나지 않아?”
“맞아. 펀드사는 다음날 바로 해킹 사실을 인지했어. 하지만 어디까지 정보가 털렸는지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 핑계로 고객들에게 관련 공지하기를 미뤘어. 피해규모는 비교적 많지 않은, 물론 사측 입장에서 말이야, 고객들의 개인정보와 펀드사의 투자 계획 정도였어. 피해규모를 파악하는 며칠간 해커들에게선 협박도 없었고, 그들의 움직임이라고 볼 만한 것들도 없었지.”
“설마.”
“고민하던 사측은 사건을 그대로 묻어버렸어. 손이 많이 가더라도 투자 계획을 아예 새로 짜는 게 신용적인 측면에서 낫겠다고 판단한 거야.” N이 손바닥을 천천히 비볐다. “메시아는 작전세력과 펀드사의 정보를 취합해서 큰 규모의 작전을 추적했어. 작업할 회사는 기술특례상장을 한 바이오 벤처 기업. 좋은 기술을 가졌는데 돈이 없는 벤처 기업들은 모험 자본이 필요해. 그런 기업들이 죽지 않도록, 당장은 수익이 미미해도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기술특례로 상장을 시켜주는 거지. 당장 모험 자본이 필요한 벤처 기업이다 보니 작전세력과 결탁해서 주가를 끌어올리는 경우도 있어. 메시아가 고른 기업이 그랬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정리하자면 메시아는 기존에 진행 중이던 작전에 작전을 건 거야. 그런데 페이퍼 컴퍼니가 아니라 실제로 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보니 작전세력이 아닌 투자자들도 있긴 했어.”
N은 바이오 벤처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을 줄줄이 읊었다. 나는 깜짝 놀라 한발 다가섰다.
“그거 씨발, 다 우리 투자자들이잖아?”
“그래. 그중엔 작전세력에 가담한 사람들도 있었을 거야. 회사 돈까지 횡령해다가 투자한 인간들도 있더라고. 메시아가 짜놓은 판에 재수 없게 우리 쪽 투자자들이 엮인 거지. 작전의 통정거래를 쥐고 있던 메시아는 간단하게 타이밍을 치고 들어갔어. 세력의 예정보다 일찍 매도가 시작됐고 주가는 폭락했지.”
“세력 투자자들도 발목 잘렸겠네.”
“빙고. 그간 메시아가 이름값하면서 뿌려댄 찌라시 탓에 모여든 개미들도 이걸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팡질팡했어. 누가 봐도 폭락이니까. 그런데도 개중에 덥석 문 어리버리한 놈들도 많았어.” N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렇다고 해도 주식을 산 개미들이 장기적으로 손해 볼 건 없어. 실제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주가가 오를 수 있는 회사였으니까. 근데 기막힌 게, 그 벤처 기업도 사기였어.”
“사기였다고?”
“그래. 신기술 같은 거 없었대. 벤처 기업 대표가 작전 세력을 등쳐먹을 생각이었나 봐. 그러니까 기업 대표도 물먹고 세력, 개미들 다 물먹은 거지.”
“우리 투자자들도.”
내가 낮게 읊조리자 N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파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어. 메시아가 찌라시랑 언론, 유튜브, 리딩방 등등으로 하늘까지 띄워놨던 건실하고 유망한 벤처 기업이 폭락에 사기래. 바이오 관련 주가부터 시작해서 시장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어. 상상 이상으로. 메시아를 알던 사람들, 모르던 사람들, 죄다 정체 모를 불안에 휩싸여서 주식을 던지기 시작한 거야. 기둥 하나 뽑았더니 건물이 다 무너진 셈이지.”
이는 ‘메시아 사건’, ‘코리아 블랙 먼데이’라 불리며 신문 경제면에 대서특필되었다. 뒷이야기도 있었다. 동료들을 부추기고 해커를 영입해 메시아를 꾸린 리더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땅히 나눠 가져야할 수익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고, 스스로도 갖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물었다.
“모든 돈이 전산 상에서 공중분해 됐어.” N이 두 팔로 허공을 가르며 말했다. “리더가 수익을 잘게 조각내서 전국에 회생 불가한 기업들, 페이퍼 컴퍼니, 전망 없는 중소기업 등의 주식을 매우 조금씩 사는 데 뿌린 거야. 수익을 낼 수도 없고 수수료 생각하면 팔고 나오지도 못할 곳들에 말이야. 아마 해외에도 뿌렸을걸. 세력뿐만 아니라 메시아 팀원들도 개빡쳐서 녀석을 찾으려 전국을 이 잡듯 샅샅이 뒤졌는데, 이미 꽁꽁 숨어버린 뒤였어.”
나는 휴대폰 플래시라이트를 켜서 지하를 비췄다. “그 새끼가 지금 저 아래 있다는 거잖아.”
“어떻게 알았어?”
“그 정도로 눈치가 없겠냐?” 나는 성큼성큼 지하로 걸어 내려갔다. “무슨 수로 데려왔는지는 모르겠다만, 어떻게 생겨먹은 개새낀지 상판대기나 좀 보자.”
그 시절은 아직 생생했다. 사업만 망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제대로 살 수 있었다. 열등감과 술로 피폐하긴 했어도, 사업이 조금만 더 안정적인 궤도로 들어섰다면 모든 것이 올바르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 포니테일과 어그러지지도 않았을 테고, 무엇보다 상처를 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위기를 견디지 못한 책임은 나에게도 있었지만, 빌어먹을 상황 역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뒤에서 N이 철문을 닫고 따라왔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가며 그간 잃어버렸던 것들을 떠올렸다. 문 앞에 다가섰다. 수많은 인생을 나락으로 몰아넣은 인간. 마른침을 삼키며 주저 없이 레버형 문손잡이를 돌려 잡아당겼다. 순간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헤비메탈 음악이 거세게 나를 떠밀어 뒷걸음질 쳤다. 뒤따라온 N이 나를 방 안에 밀어 넣고 들어와 문을 닫았다. 사방이 방음벽이었다. 정면에 모니터 다섯 대와 컴퓨터, 노트북, 벽걸이형 TV 두 대, 그리고 회전의자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음악소리에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고 다가가 개자식이 앉아 있는 회전의자를 홱 돌렸다.
“씨발, 놀라라.” 의자가 돌아가며 음악소리가 툭 꺼졌다. 개자식이 날 보더니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이.”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는 내가 자신을 알아볼 때까지 능글맞게 웃으며 기다렸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내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