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메시아」 ③
“네가 왜 여기 있어?”
내가 물었다. 그랬다.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쌀 한 석쯤은 금세 만 석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던 녀석, 어머니가 부동산 투기로 유명했던 녀석, 중학교 동창 만석이가 눈앞에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는 질문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녀석들은 모니터에 증시현황을 띄워놓고 지들끼리 분석내용을 지껄여댔다.
뭐해? 멱살이라도 잡으려던 거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N을 돌려세워서 설명을 종용했다.
“유능한 사람을 우리 편으로 만든 거지.” N이 태연하게 말했다.
“고용했지, 정확히는.” 만석이 정정했다.
“언제부터? 둘이 계속 연락했어?” 내가 말했다.
“연락하지. 여기가 우리 자금줄이라니까?” N이 말했다.
“씨발, 말장난하지 말고. 언제부터 연락했냐고.”
“알았어. 왜 정색을 해?” N이 미소 지었다. “우리 사업 엎어졌을 때 세무사가 주식시장이 흔들렸네 어쩌네 하길래 무슨 일인지 알아봤었어. 그랬더니 배후에 메시아 사건이 있었고, 더 파고들었더니 얘 이름이 튀어나온 거야.”
나는 대꾸 없이 N을 응시했다. 그걸 믿으라고? 메시아 사건에 대해 들을 때부터 의구심이 들었었다. 우리 투자자들이 우연히도 하나의 작전주에 줄줄이 엮였다는 게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내가 정말 따져 묻고 싶었던 것은 그러니까, 우리 사업을 말아먹은 데 네가 일조한 것 아니냐고, 애초에 만석과 판을 짜고 우리 투자자들에게 찌라시를 뿌린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N이 왜? 이따위 여행을 하려고? 말도 안 되는 우연의 가능성과 소설 같은 음모의 가능성 가운데 천칭은 어느 쪽으로도 확실히 기울지 않았다. 나를 응시하는 N의 텅 빈 눈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죽일 듯 노려보는 내 눈빛에 대한 의구심조차 없는 그의 눈빛은 기묘한 공포심마저 들게 했다.
나를 지켜보던 N이 눈을 깜빡였다. “졌네, 젠장.”
“뭘 져?” 만석이 물었다.
“몰라. 갑자기 눈싸움을 하네.”
N이 구석에 놓인 소파로 갔다. 낮은 탁자엔 막걸리와 해물파전이 차려져 있었다.
“다들 와서 먹어.”
나는 가방을 소파 옆에 기대어놓고 캡모자를 벗어 얹어두었다. 만석은 한 달 전에 사들인 해외기업 주식이 앞으로 두 달여간은 상한가를 칠 거라 예상했다. 투자금의 세 배는 회수할 수 있다나. 브리핑이 끝나자 스피커에서 헤비메탈 음악이 벼락처럼 쏟아졌다.
“단기투자의 귀재야.” N이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초기자금보다 돈이 몇 배나 늘었는지 알아? 열한 배야, 열한 배.”
눈도 깜빡하지 않고, N을 쳐다보지도 않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가방에서 위스키를 꺼냈다. N의 돈은 줄지 않는다. 미친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막걸리를 마시는 녀석들을 두고 위스키를 마셨다. 왜 기쁘지가 않지? 더 마음껏 놀고먹을 수 있는데, 안도감을 뒤덮는 지긋지긋함은 뭐지? 청양고추가 들어간 해물파전은 내 입에 너무 매웠다. 화끈거리는 입에 위스키를 쏟아 붓고 일어났다. 잇몸이 얼얼해 이가 몽땅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가방을 챙겨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지하실을 나섰다. 문을 닫자 세상이 거대한 침묵에 휩싸였다. 위스키를 병째 몇 모금 들이키며 어둠에 잠긴 계단을 올랐다.
덜떨어진 새끼. 빌어먹지도 못할 새끼. 제발 잠자코 있어. 능력도 없으면 거머리처럼 착 붙어 있을 요량이나 하란 말이야.
자조에 빠져 걸어 올라가다 철판에 정수리를 처박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홧김에 이마로 철판을 한 번 더 치받고 열어젖혀 올라갔다. 건물에 난 구멍들 사이로 어슴푸레한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한쪽 벽에 가방을 던져놓고 기대어 앉았다. 담뱃불을 붙이고 머리를 젖혀 벽에 댔다. 가시지 않은 통증이 머리에서 맥박과 함께 울렸다. 방금까지 귀를 괴롭힌 강렬한 록 사운드가 환청처럼 귀에 맴돌았다.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고등학생 때 카니발을 떠올렸다. 멍청이들. 아직도 나는 그 한심하고 혐오스러운 무리에 끼고 싶나. 눈을 감고 그때처럼 발을 까딱거리며 떠오르는 대로 흥얼거렸다. 좆같았다. 그런 무시무시한 일을 벌일 능력 있는 놈이 내 동창이라는 게, 그 녀석을 고용한 놈이 내 친구라는 게,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학교에서 수업 받고 놀던 놈들이었다는 게 좆같았다. 녀석들의 유능함이 나의 무능을 부각시켜서, 그게 너무 좆같았다. 감은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관자놀이에서 부드럽고 분명한 맥박이 울렸다. 나는 우는 대신 실실 웃었다. 가방을 열고 파우치를 더듬어 찾았다. 약이 든 작은 병. 물뽕을 술에 살짝 부었다. 위스키 병을 휘젓고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다음날 N은 다른 곳으로 떠났다. 나는 금고에서 만석과 며칠을 더 있기로 했다. 만석의 성격만큼이나 정갈하게 정돈되어있는 금고는 지하벙커처럼 보였다. 낮에는 나 혼자 산책하거나 주식 서적을 훑어보았고, 밤에는 만석이 바삭하게 잘 부친 전에다가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그와 나는 서로의 삶을 신기해했다.
“넌 메시아 사건 계획했을 때 주식시장 박살날 줄 알았어?” 내가 물었다.
“알았겠냐?” 만석이 핀잔을 줬다가 입맛을 다셨다. “그 정도로 박살난 거 보면 다들 어지간히 불안하셨나 보지. 한동안 주식 재테크가 유행처럼 번졌잖아. 남들 다 주식으로 돈 번다는데 혼자 안 하면 바보된 것 같고. 그렇게 남들 따라 주식 샀다가, 갑자기 다들 던지기 시작하니까 불안해서 너도 나도 다 던진 거지.”
“불안해서 그런 거라고?”
“주식 역사 돌아보면 이유 없는 불안 때문에 시장 위기를 겪은 게 태반이야. 근데 사실 불안이 경제의 동력이기도 해. 외발자전거 같은 거지. 다들 불안하니까 취업해서 돈 벌고, 불안하니 집 사고 보험 들고 그러는 거잖아. 너도 사는 게 불안해서 N 옆에 있는 거 아니야?”
“미친놈이 갑자기 팩트로 싸대기 때리네. 메시아 사건으로 번 돈은 왜 다 날렸냐?”
“주식은 모니터에 떠다니는 숫자에 불과해. 돈의 상징일 뿐이지, 미술관에 걸린 작품들처럼. 예술이네 사업이네 하면서 널리고 깔린 게 돈의 상징들이야. 포화상태라고. 이 시대에 필요한 정의는 유를 무로 만드는 거야.” 만석이 두 손바닥을 쫙 펼쳐보였다. “쾅, 하고 모든 걸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거지.”
“왜 그래야하는데?”
“왜 안 그래야하는데?” 만석이 뚱한 표정을 짓다 웃었다. “그냥 하는 거야. 있는 놈들 돈 뺏어다가 공중분해 시키는 거. 누구에게도 이득이 없는.”
“아나키스트, 뭐 그런 거야?”
“그게 뭔데?”
“아니다.” 나는 지하를 둘러봤다. “여기서 살면 안 지겨워?”
“잘하는 일 하고, 좋아하는 음악 듣고, 원하면 나가서 사람도 만나고, 돈도 존나 펑펑 쓰고, 개쩌는 삶이지. 방음벽 보이지? 여자들 엄청 좋아해. 맘 놓고 소리 지르거든.”
“미친 새끼.”
만석이 낄낄거렸다.
“네가 보기엔,” 그는 막걸리를 한잔 따르며 웃음기를 지우더니 자못 진지하게 운을 띄웠다. “이 생활이 얼마나 갈 거 같아?”
“네 생활?”
“우리 생활.”
“음.” 나는 소파에 등을 묻고 배 위에 두 손을 깍지 꼈다. “N이 싫증낼 때까지?”
“그래. N이 지루함을 느낀다? 그럼 우리 다 팽 당하는 거야. 너, 나, 셜록, 싹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만석과 셜록은 N이 필요로 하는 전문가들이다. 반면 내 입지는 너무나 약했다. 당장이라도 버려질 수 있었고, 나 또한 이따금씩 N이 나를 버렸으면 좋겠다는 비이성적인 충동을 느끼곤 했다. 막걸리 잔을 비우고 입가를 닦은 만석이 살 궁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N이 필요와 상관없이 대하는 사람들이 있어. 너 빼고.”
“어떤 사람들?”
“걔는 웬만해선 남한테 큰 손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해. 그래서 남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면 꼭 갚지.”
“N한테 그런 말랑말랑한 구석이 있다고?”
“이제까지의 행적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래.”
나는 막걸리 병을 흔들어 그의 잔에 따라주었다. “자세히 말해 봐.”
“N은 난놈이야. 그놈 재능이면 사기를 쳐도 최소 전국구 스케일로 먹힌다고. 근데 그런 재능을 가지고서 너랑 여행하는 데밖에 안 써. 왤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한테 주는 손해가 적어서야. 가짜 신분으로 여행하는 게 문제되진 않잖아.”
“하룻밤 잠깐 노는 사람들……” N의 말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누구라도 신경 쓰지 않을 사람들.”
“맞아.”
“그럼 너랑 주식으로 장난치는 건 뭔데?”
“얘가 큰일 날 소리하네.” 만석이 발로 바닥을 살짝 밀어 회전의자를 뒤로 뺐다. “나 손 씻었어. 지금은 합법적인 단기투자로 알차게 돈 불리는 거야.”
“정말이야?”
만석은 당연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건 됐고, 또 있어. 세상에 널리고 깔린 게 인쇄소야. 명함 따위 아무데서나 죽죽 뽑아다 쓰면 되는데, 굳이 네 친구 인쇄소까지 인수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것은 나도 궁금했다. 만석이 말을 이었다.
“사업 파트너와 아이디어를 가져갔으니 나름대로 보상해 주겠다, 이거지. 너랑 같이 사업했을 때 불러들인 후배들 있지? 걔들한테도 사업 망한 뒤에 너 몰래 사비로 돈을 더 얹어줬다고. 아버지 돌아가시고서 회사 넘긴 것도 그렇고.”
“회사?”
“몰랐어? N이 아버지 회사를 찌의 형한테 넘겼잖아.”
“뭐라고?”
찌? 찌의 형? 그 인간은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찌의 형은 N 아버지의 회사 창립멤버였어. 신임을 받는 유능한 인재였지.”
N의 아버지가 찌의 형을 직장 후배로 뒀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찌의 형이 펜션 사건 이후에도 N의 아버지 밑에서 일을 했다고?
“N이 너도 알 거라던데. 예전에 본 적 있다고.”
“내가? 본 적 없는데?”
“J재단 장학행사. 고등학생 때 같이 갔다고 했었어.”
“장학행사……?” 카니발. 그때 운전했던, “경주마, 그 미친 새끼?”
“그렇게 말하면 난 모르지.”
나는 소파에 몸을 묻으며 아는 사람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퍼즐이 자꾸만 이상한 데서 끼워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들어보니 그럴싸하지? 믿을 만한 사람의 심리분석이라고.”
“믿을 만한 사람?”
“셜록.”
“미친.” 난 언제나 너보다 나아. 씨발새끼. “신뢰감 확 떨어지네.”
“걔가 지금 처지가 안 좋아서 그러고 있지, 간 쓸개 다 빼줘도 머리 하나는 빼어난 놈이야. 잘 알잖아.”
셜록과 만석, 그리고 N. 이들은 서로의 능력을 믿고 있다. N의 주도 하에 하나의 신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뭐지? 손발도 될 수 없는 나를 계속 데리고 다니는 이유는 뭘까? 셜록의 분석처럼 N이 내게 마음의 빚이라도 진 걸까. 그럴 리가. 이미 머릿속에선 단 하나의 답을 정해놓고 있었다. 나는 N의 사치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팔뚝을 가만가만 두들겼다. 내가 아는 한 찌는 N이 가장 먼저 손댄 인생이다. 어쩌면 펜션 사건 이후 다시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석에게 찌의 근황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여기저기 봉사 다닌다고 했던 거 같은데, 잠깐만.” 만석이 바닥을 박차며 회전의자를 팽그르르 돌려 책상 앞으로 갔다. 나는 그의 뒤에 다가섰다. 모니터에 한 봉사단체의 인터넷 카페 화면이 떴다. “찌가 소속돼있는 봉사단체야. 여러 곳에서 봉사한다고 들었는데, 다 근처니까 몇 군데 돌아보면 직접 만날 수도 있을걸. 궁금하면 다녀와.”
이마를 문질렀다. 궁금한 마음과 굳이 가야할 필요까지 있을까 싶은 마음이 씨름했다.
“할 것도 없잖아. 바람 쐴 겸 다녀와.”
“바람 쐬는 것도 집 가진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나는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