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부력」 ②
“서규찬?” 가물가물하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나는 돌아서서 찌와 악수를 나눴다. 얼굴의 흉터가 사진에서보다 더 크고 진했다. 그는 다른 손에 떡볶이를 담은 일회용 종이그릇을 들고 있었다.
“전도사님께 들었어. 중학교 동창이 찾아왔었다고. 너였구나.”
“응. 잘 지냈어?”
찌는 장난스럽게 코를 찡긋거리며 대답을 피했다. 콧잔등부터 이어지는 흉터도 함께 움찔거렸다. 그가 떡볶이를 건넸다. 나는 권할 게 술과 담배뿐이었다. 그는 술은 안 하고 담배는 가지고 있다며 한 개비 꺼내 물었다. 우리는 교회에서 좀 떨어진 곳, 아까 내가 있던 교각 근처까지 내려가서 담뱃불을 붙였다. 그가 왜 왔느냐고 묻지 않아 침묵 속을 한참 헤맸다.
“괜찮아? 안색이 안 좋은데?” 찌가 물었다.
“괜찮아.” 나는 혀로 입술을 축이고 눈짓으로 교회를 가리켰다. “다들 요한이라 부르던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내가 원한 이름은 아니야.”
“누가 지은 건데?”
“전도사님. 나는 다른 이름 하려고 했거든.”
“어떤?”
“유다.”
“그게 훨씬 낫다야. 전도사가 뭘 알겠어?”
찌가 웃으면서 일단 떡볶이부터 먹으라고 했다. 속이 안 좋아서 먹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입에 대기 시작하자 걸신들린 듯 먹어치웠다. 양념만 남은 종이그릇을 구기며 한숨 돌렸다. 불현듯 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녀석과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F시엔 안 갔어.” 찌가 난데없이 말했다. “연락하는 사람도 없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담뱃불을 붙였다. 적막 가운데 등 뒤로 차 한 대가 지나갔고, 소음이 가라앉은 뒤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다. 찌는 소년교도소를 나온 뒤 검정고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딱히 합격을 목표로 둔 것은 아니었고 달리 뭘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찌의 형은 매달 아주 적은 돈을 보내주었고, 찌는 그 돈으로 연고 없는 지역의 허름한 고시원에 들어갔다. 용돈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미성년자라 써주는 데도 잘 없고, 뻑하면 알바비 떼이고……. 그래도 잠깐이지만 열심히 살았어. 한 일이 년쯤 아등바등 애쓰다가 죄다 때려치웠지. 손쓸 도리 없는 인생 애써 봤자라고.”
가출청소년 보호시설을 들락거리고 유치장에 들어가기도 했다. 형과는 유치장에서 딱 두 번 만났을 뿐이라고 했다. 형은 찌를 데려가지 않았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 일월에 검마 동생이 찾아왔어.”
검마의 동생은 찌가 사는 고시원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빼다 박았다 싶을 정도로 검마와 닮은 동생을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검마의 동생이 꾸벅 인사했다.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어색하게 서 있던 두 사람은 곧 근처 카페로 갔다. 검마의 동생이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아서 찌가 아메리카노 두 잔과 조각케이크 하나를 시켰다. 두 사람은 자리를 잡아 앉았다.
선배라고 부를게요.
그래요. 근데, 어떻게 알고…… 왔어요?
선배 유명해요, 아직도. 우리 동네에서.
그렇구나…….
“한참을 둘 다 말없이 있었어.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 그냥 기다릴 뿐이었지.”
우리 오빠가 선배 많이 괴롭힌 거 알아요.
…….
저도 봤어요, 선배 맞는 거. 거의 매일.
먹고 얘기해요. 먹어 봐요.
솔직히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내가 선배였더라도 죽였을 거라고, 가끔은…….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
네?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걔들한테 괴롭힘 당한 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그날 그 자리에 나 아닌 그 사람이 있었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겁니다.
…….
……죄송해요. 사과가 늦었습니다. 찾아봬야 할까 고민도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괜히 얼굴 비추면 모두 더 힘들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변명할 생각은 없었어.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나도 모르게 줄줄 쏟아내고 있더라.”
아쉬워요. 오빠가 사과하지 않았던 게.
…….
선배는 사과 받아 마땅했잖아요. 사과했다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고.
미안해요.
우리 오빠는 절 많이 아꼈어요.
“그런데 참 웃기지. 자꾸 우리라는 말이 거슬리는 거야. 그 말이 슬프고 아픈데, 막 화도 나. 우리 형이랑 할머니가 생각나서. 어쩌면 검마와 나는 서로의 우리를 박살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 하지만 아니라고, 모두 내가 박살낸 거라고 되뇌어야 했지.”
저한테는 좋은 오빠였어요. 엄마아빠한테는 오죽하겠어요? 미우나 고우나 자식인데.
용서하지 말아 주세요.
못 할 거예요. 그러니 선배도 우리 오빠를 용서하지 마세요.
이미 그런 일을 저질렀는데, 용서할 자격이 있나요.
피에로 선배 부모님도 뵙고 오는 길이에요. 모두 선배를 용서할 수 없으시긴 하지만, 그렇다고 선배가 망가지는 걸 원치는 않으세요.
“거짓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순간적으로 말이야.”
……저 또한 선배가 망가지는 걸 원치 않고요.
왜요?
선배는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
부디 좋은 사람으로, 건강하게 살아요. 망가지지 말고.
……내가 뭐라고…… 애써 여기까지 와서 그런 말을 해 줘요?
우리가 안 보는 데서, 다른 곳에서 좋은 사람으로, 잘 살아 줘요.
“눈물이 나더라. 펑펑 울었어.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몇 번이나 연거푸 얘기하고 도망쳐 나왔어. 그리고 짐을 싸서 더 먼 곳으로 떠났지. 그렇게 옮겨 다니면서 살고 있어.”
우리는 담배를 한 대씩 더 피웠다. 나는 N에 대한 이야기를 삼켰다. 찌는 과거의 과오만을 짊어진 채 그 시절의 모든 것과 절연했다. 굳이 과거의 악연을 상기시켜 현재로 끌어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헤어질 때까지도 찌는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묻지 않았다. 그 질문 없음이 한때 무관심에 기초했던 나의 질문 없음과는 질과 결이 너무도 달라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찌가 휴대폰을 달라더니 자신의 연락처를 찍어줬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나 만났다는 얘기 하지 마라.” 그는 씩 웃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이제 들어가 봐야 한다는 찌를 데리고 동네 슈퍼마켓에 들러 음료수 한 박스를 샀다. 극구 사양하는 그의 손에 억지로 음료수를 들리고 교회로 떠밀었다. 멋쩍게 인사하고 멀어지는 찌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가 묻지 않은 게 또 있다고, 내 이름을 몰라서 화제 삼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합실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됨에 대해 생각했다. N과 나, 셜록, 그리고 만석 중에 누가 스스로 사람답게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죄를 잊지 않도록 애쓰는 찌 앞에서 누가 떳떳하게 자신의 사람다움을 주장할 수 있을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생각하다 몸을 숙여 머리를 싸맸다. 사람다움. 사람다움. 자리를 박차고 대합실 안을 서성였다. 생각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바짝 마른 입술을 깨물고 정처 없이 서성이다 주먹으로 허벅지를 내리쳤다. 이내 바닥을 한번 세게 딛고 조급하게 역내 편의점에 가 생수를 샀다.
화장실 좌변기 칸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약을 꺼내 생수에 탔다. 물병 입구를 보며 망설이다 머리카락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다리를 달달 떨었다. 그러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친 게 아니라 미친 척했다. 사람됨을 생각하는 순간에도 몸은 약을 갈구했다. 아니, 찌를 만나기 전부터 갈망하고 있었다. 제정신으로 그런 욕구에 휘둘리는 나를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야. 정신 차리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애써 찌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날카로운 욕구가 그의 얼굴을 찢어발겼다.
마셨다. 어느새.
눈을 감고 손끝과 발끝으로 퍼져가는 환하고 무른 기운을 기다렸다.
환한 웃음.
전화가 걸려왔다. 물속에서 움직이듯 느리게 전화를 받았다.
“누구, 세요?”
“누구긴. 번호 저장 안 했냐?” 만석이었다. “찌 만나봤어?”
“응.”
“잘 살디?”
“나보단.” 나는 웃음을 질질 흘렸다. “좋아 보이더라.”
“좋아 보여?”
“그냥. 조금은.”
“부러워?”
“조금은.”
“너 약 했냐?”
“조금은.” 나는 흐물거리며 웃었다.
“미친 새끼, 괜찮아?”
“조금은.”
“대화가 안 되네.” 만석이 한숨을 쉬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정신 차려. 너도 제대로 살고 싶지?”
“뭐?”
“너 지금처럼 살기 싫잖아. 내가 도와줄게.”
나는 웃음을 그쳤다.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았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