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탐 장편소설 『TRICK OR TRIP』 38화

3부 「부력」 ①

by 윤아무개

요한. 그곳에서 찌는 요한이라 불렸다.

교회 별관에 위치한 봉사단체 사무실은 비좁았다. 장식이라 할 만한 것도 벽에 걸린 십자가가 전부였다. 전도사는 얼음이 없어서 죄송하다며 뜨거운 캐모마일 차와 다과를 내왔다. 그는 찌와 육 년째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중학교 동창이시라고 했죠?” 전도사가 물었다.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이름은 서규찬이라고 했다.

“그럼 규찬 씨도 요한의 이야기를 대략 알겠군요.”

“알죠. 친하진 않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워낙에 큰 사건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요한이를 찾으시죠?”

“아, 그건……” 제기랄. 당연한 질문이잖아? 이런 질문도 예상 못 했어? 그냥 왔어, 그냥. 할 일이 없어서.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머리가 뇌까리는 말들을 무시하려 했다. “환생하지 않으려고요.” 뭔 개소리야?

“환생이요?”

“환생하지 않으려면 이번 생에서 꼬인 인연들을 다 풀어야 할 것 같아서요.”

“이번 생이라……” 전도사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꼬였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별거 아닙니다. 근데 그런 걸로 또 태어나면 열 받잖아요.”

“재밌는 분이시네.”

전도사가 찻잔을 내 쪽으로 밀며 웃었다. 나는 찻잔을 당겼지만 김이 펄펄 나서 마실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나기 어려울까요?” 내가 물었다.

“글쎄요, 따로 말씀은 전하겠습니다. 잠깐만요.”

그는 보여줄 게 있다며 책장에서 뭘 꺼내왔다. 파란 벨벳 표지에 금색실로 <실로암>이라 수놓은 양장 앨범이었다. 식지 않은 찻잔을 옆으로 살짝 치우고 앨범을 받아 펼쳤다. 한 페이지 당 한 장씩 사진이 꽂혀 있었고, 장마다 상하좌우의 여백이 일정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앨범을 넘기면서 과연 찌를 알아볼 수 있을지 자조했으나, 기우였다. 단체사진 속에 분명 찌가 있었다.

“알아보시겠어요?” 전도사가 물었다.

“네.” 나는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이 흉터는 뭐죠?”

“소년교도소에서 다친 흉터라고 하더군요.”

나는 다시 사진을 보았다. 찌의 얼굴에 콧잔등부터 오른뺨 광대뼈 아래까지 길게 흉터가 나 있었다. 그래도 표정은 제법 온화해 보였다.

전도사는 육 년 전, 독거노인 무료급식봉사에서 찌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봉사센터에 유독 성실한 청년이 있었다고, 얼굴에 난 상처 때문에라도 유난히 눈에 띄더라고 꾸밈없이 이야기했다. 전도사는 곧 청년이 주말마다 봉사하러 온다는 것과 평일에도 틈날 때마다 센터 일을 거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알맞게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닫힌 문을 힐끗 쳐다본 전도사는 오른손 주먹을 왼손으로 감싸며 두 팔꿈치를 무릎 위에 올린 채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상한 건, 누구도 요한의 개인사는 물론 신상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거예요. 당시 저는 급식봉사를 주관하던 센터장과 친분이 있었는데, 센터장도 매주 오는 청년이라고만 알 뿐 자세히는 모르더라고요. 다른 봉사자나 간부들도 마찬가지고.”

“아무도 흉터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나요?”

전도사가 천천히 허리를 펴면서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는 느닷없이 교회를 다녀본 적 있냐고 되물어왔다. 나는 어릴 때 다닌 것이 전부라고 했다.

“봉사는 해 보신 적 있나요?”

“자의는 아니었죠. 별 감흥이 없었고요.”

“그렇군요.” 전도사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풀썩 기댔다. “성경말씀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 흘림과 부활을 믿는 자녀들은 의롭고 선하게 살려 노력하죠. 하나님을 믿지 않음에도 분명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갑자기 설교를 한다고? 전도사가 씩 웃었다.

“그 때문에 이런 곳엔 선을 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대부분 좋은 의도지만 간혹 강박적으로 비칠 때도 있죠. 그런 강박이 불편할 정도의 위선적인 행동이나 맹목적인 공격성으로 발현하는 경우들도 있고요.”

나는 전도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흉터, 당연히 다들 궁금해했죠. 하지만 묻지 않았어요. 실례여서 그러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겉만 보고 판단하지 않으리라는 다짐들이 컸을 겁니다. 물론 간혹 물어본 사람들도 있었지만요.”

“뭐라던가요?”

“말없이 웃기만 했다더군요. 사진 보세요, 요한이 인상 참 좋잖아요. 이렇게 환한 미소 앞에서 더 캐묻는다면 조금이나마 요한이를 의심한다는 건데, 그런 사람이 되긴 싫었던 거죠.”

“위선일까요?”

“어쩌면요.”

“전도사님은 뭐가 달랐죠?”

전도사가 눈썹을 문지르며 눈을 내리깔더니 이내 풀썩 웃었다.

“웃는데도 계속 물어봤거든요.”

찌는 전도사에게 모든 걸 다 얘기했다. 학교폭력과 펜션 사건, 소년교도소 출소 이후 중학교 정원 외 관리자가 되어 검정고시를 치른 일. 할머니와도 형과도 더는 만나지 않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삶에 대해.

찌의 고백을 들은 전도사는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며칠 뒤 센터장에게 찌의 사연을 전했다. 찌를 단죄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상황을 의논하고 찌를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근데 정말 그런 이유뿐이었을까요.” 그가 씁쓸하게 말했다.

보름 간 타지에 세미나를 다녀온 전도사는 다시 봉사센터를 찾아갔지만, 이미 찌는 사라진 뒤였다. 센터장을 탓할 수는 없었다. 잠재적 위험을 예방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니까. 전도사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찌가 자신의 과거를 밝힌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한곳에서 일정 기간 봉사를 하다가 스스로 전과를 밝히고 내쫓기기를 반복했다. 낙인을 감추기는커녕, 주기적으로 뜨겁고 날카로운 낙인을 직접 사무치게 새기며 살았다. 그러나 전도사의 마음에 그늘을 드리운 죄책감은 찌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전도사는 수소문하여 찌를 찾아냈다. 그리고 함부로 센터장에게 사연을 전한 것을 사과했다.

“오히려 당황해하면서 미안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전도사는 찌를 돕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봉사단체 <실로암>을 만들어 찌를 초대했다. 녀석만의 고유한 속죄 의식을 해치지는 않았다. 여러 봉사단체를 찾아다니는 것과 거부당하는 생활을 지켜보았다. 단지 공백의 기간 동안 찌가 쉴 수 있는 곳, 마음을 다해 봉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육 년 동안 찌는 모두가 우려하던 짓 따위는 저지르지 않았다.

“절 만나고 싶어 할까요?”

찌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나는 고개를 숙이고 손톱을 매만졌다.

“그럼요. 사실 요한이 한 말도 있어요.” 전도사가 맑게 웃었다. “혹시 어디서든 누가 자신을 찾아온다면 연락해달라고요.”

전도사는 당장 내일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교회 앞뜰에서 열리는 행사에 오면 찌가 떡볶이를 만들고 있을 거라고 했다. “요한이가 보기보다 앞치마가 잘 어울리거든요.” 하지만 찌의 연락처는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돌아갈까? 모텔 방에 누워 생각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N의 행적을 추적하고, 관심도 없던 찌를 찾아내고, 이런 짓들이 다 무슨 의미지? 단순히 하릴없는 인생이라 온 것 아닌가. 이불을 끌어당겨 덮었다. 나는 벌거숭이일지 모른다는 생각. 손에 잡히는 이런저런 시간의 헝겊조각들로 삶이라는 누더기를 기워 입으려는 벌거숭이. 휴대폰이 울렸다. 찌를 만났냐는 만석의 문자 메시지였다. 내일 만날 것이라 답장했다. 제기랄.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생각이나 하다니. 모로 누워 가방을 쳐다보다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다음날, 교회 앞뜰은 <실로암>이라 적힌 조끼를 입은 봉사자들로 붐볐다. 행사 직전이라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앞뜰에 들어서지 않고 기웃거리고만 있다가 발길을 돌렸다. 일찍 만나 찌의 기분을 잡치지 말고 기다리는 게 나을 듯했다. 교회에서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근처 강변으로 이어졌다. 스피커로 들려오는 찬송가를 뒤로 하고 걸었다. 강변에 다다르자 억새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저지대로 내려갔다. 교각 아래 그늘에 커다란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었다. 구조물에 올라앉아 담배를 피웠다. 물가에는 억새풀이 군락을 이루었고 풀벌레가 여기저기서 울어댔다. 다른 애들은 뭘 하고 있을까? 가을에는 또 어디를 다닐까. 단풍이 들면 지역축제를 돌 수도 있겠다. 그때는 귀뚜라미가 울어대겠지. N은 정월대보름에 달집태우기를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터무니없이 낭만적으로 들리는 소원이었다. 가방에서 위스키를 꺼내 마셨다. 불현듯 속이 메스껍고 식은땀이 났다. 멀미하듯 머리가 어지러워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나는 헛구역질을 해대다 콘크리트 구조물 위를 기다시피해서 아래에 구토를 했다. 먹은 게 없어 위산만 쏟아져 나왔다. 토사물 위로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멀리 행사장에서 찬송가가 들려왔다. 나는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쓰러져 신음을 쏟아내다 의식을 잃었다.

세 시간 가량이 지나서야 눈을 떴다. 목이 칼칼했다. 흐느적거리는 몸을 애써 가누며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내려왔다. 신발 밑창에 물컹한 게 밟혔다. “씨팔.” 나는 구조물에 양손을 포개 얹고 이마를 댄 채, 토사물이 묻은 신발 밑창을 벽면에 닦아댔다. 찬송가는 들려오지 않았다. 병약한 걸음을 가능한 한 재촉했다. 아직 몇몇의 아이들이 간식을 들고 교회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앞뜰에 들어서니 봉사자들이 행사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찌와 닮은 사람은 없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는데 기부함을 든 봉사자가 다가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혹시 요한이 여기 있나요? 제 친군데.”

“요한이 형이요? 아마 분식 재료 정리하고 있을 거예요.”

봉사자가 노골적으로 눈을 빛냈다. 지폐를 꺼내 기부함에 넣자 그는 요한을 데리고 오겠다며 교회 안쪽으로 사라졌다. 강변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만해도 만나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막상 만나려니 뻘쭘했다. 교회 밖으로 나가 찌를 기다렸다.

“서규찬?” 가물가물하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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